학문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할 수 있는가
4차 산업 혁명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2018년, 고등학교에서 문이과의 구분이 사라졌다. 하지만 각 대학이 문이과 선택 과목을 지정하면서 문이과 통합 정책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문과와 이과의 진정한 융합은 불가능한 것일까.
『뉴턴과 마르크스』는 문이과 구분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 도이 히데오는 문학과 역사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문과인이었으나 갑작스럽게 난독증 증상을 보이며 혼란을 느낀다. 이후 뉴턴과 마르크스를 만나고 경제학을 전공하며 문과와 이과의 분리가 상당히 인위적이었단 사실을 깨닫는다. 저자가 말하는 하나 된 학문은 무엇일까.
문이과를 하나의 논리에서 바라보다
문과와 이과의 골을 메우기 위해 저자는 뉴턴 역학의 형성과 마르크스 가치론을 하나의 논리로 묶는 시도를 한다. 이를 위해 법칙의 적용과 발명의 관점에 주목한다. 객관적 법칙성의 적용을 노동수단의 본질로 보는 적용설, 이과적 관점은 발명을 영원한, 초역사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발명이 생산실천에 활용되어 기술이 된다면 역사적 개념이 된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노동수단의 체계를 기술의 본질로 보는 체계설, 문과적 관점의 도입을 주장한다. 발명은 체계설의 관점에서 볼 때 인류사에서는 발명가의 행위, 자연사 에서는 발명된 인공물 즉 제2의 자연이다. 이와 같이 제2의 자연을 주체로 본다면 인류사에서 인간의 주체적 실천은 ‘제2의 자연’의 ‘운동’에 포함되어 객체가 되고 체계설과 적용설이 하나의 논리에서 이해된다. 저자는 이러한 논리를 바탕에 둘 때 문과적 기술관과 이과적 기술관의 모순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도입이 아닌
쌍방의 발전이 가능한 기술관
문과와 이과의 융합을 위한 또 다른 예시로 상향법과 하향법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문리융합은 수리적인 수법이나 물리학 방법을 인문사회에 적용하거나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법적 대응을 말한다. 그러나 물리학과 수리학을 도입할 수 있는 인문사회 분야는 한정되어 있으며 공학 윤리 등은 윤리학과 법률학의 대상 확대일 뿐 본질적인 융합은 아니다. 이 책은 마르크스가 인문사회과학을 염두에 두고 제시한 과학관을 통해 문리를 융합시키고자 한다.
저자는 하향법을 포함하는 상향법을 제안한다. 하향법이란 거대한 원리를 단순한 요소로 분해하며 이치를 파악하는 연구 방식이고 상향법은 단순한 요소로 분해한 과정을 거꾸로 돌려 원래의 형태로 환원하는 서술방식을 의미한다. 자연과학은 주로 분석과 관측을 통한 하향법을, 인문사회과학은 공통의 특성을 추출하는 추상력을 하향의 수단으로 삼는다. 인문사회과학이 상향법으로 소재의 관념적 반영을 이끌어 내는 것에 비해 자연과학에서는 상향의 결과를 찾기 어렵다. 이에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시사했던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대응관계를 발전시킨 하향법을 포함하는 상향법을 제안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인간을 문과에서는 계급관계, 이과에서는 물질대사의 객체로 바꿀 수 있으며 주체가 행하는 발명이나 선택 같은 활동을 제2자연의 운동이라는 객체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문과와 이과가 공통된 기술관을 가질 때 인문과 과학의 세계는 더 깊어지고 발전된다.
학문의 씨가 말라버린 대학원을 위해
지금의 대학은 학문 아닌 취직을 위한 등용문이 되었다. 인문사회학과학은 자리를 잃고 있다. 이과라는 외눈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뉴턴과 마르크스를 통해 문과와 이과의 시선을 모두 가질 때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뇌는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두 부류로 나눌 수 없다. 어느 쪽을 더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활성화되는 곳이 달라진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이과적, 문과적 기술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앎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