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1. ‘펠라, 우리 집에 오다’ 중에서
펠라의 공간이 있는 거실에 매트를 깔았다. 당분간은 가족 모두 다 같이 거실에서 자기로 했다. 무늬는 쿨해도 너무 쿨했다. 마치 펠라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익숙하게 남편의 다리 근처에 자리를 잡고 누워 금세 잠들었다. 많은 일이 있었던 오늘 하루가 고단했는지 남편의 숨소리도 나직하게 잦아들었다. 펠라는 자고 있을까? 고개를 들어 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자고 있는데 깨울지도 몰라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훅 하고 낯선 지역의 흙냄새가 날아왔다. 펠라가 가져온 향이었을까. 조만간 펠라 몸에서도 우리 가족과 비슷한 냄새가 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시간을 두고 아주 천천히 스며들어도 좋으니.
p141. ‘무늬는 우리에게나 완벽한 강아지’ 중에서
일상생활에서 불안을 줄여 나가는 중이고 밥도 잘 먹는 무늬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대체로 매우 건강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몸무게도 1kg 늘어 6kg를 유지하고 있다. 나와 남편과는 서로를 완벽히 믿고 있기에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지난가을 무늬와 우린 무려 비행기도 함께 탔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부족한 무늬지만 우리에게는 완벽한 강아지다. 무늬가 ‘누구에게나’가 아니라 ‘우리에게나’ 완벽한 강아지라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면을 맞대고 채워 더 꼭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p195. ‘기적처럼 나타난 달이의 가족’ 중에서
달이는 처음 왔을 때처럼 맨몸으로 떠났다. 리드줄을 건넸다. 함께 걷는 줄 알았던 우리가 가만히 멈춰있자 달이는 동그란 눈으로 연신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차 뒤로 숨었다. 차장 너머로 달이의 모습을 훔쳐봤다. 주춤주춤하는 듯싶더니 이내 새로운 가족과 발걸음을 맞춰 신나게 걸어갔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달이가 종종 깨물어서 벗겨진 문지방 몰딩을 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안도감과 미안함, 허탈함, 부끄러움, 후련함, 아쉬움과 같은 다양한 마음이 둥둥 떠다녀 머리를 어지럽혔다. 짧은 기간 달이는 매 순간 멈춤 없이 온 마음으로 애정을 다 쏟아놓고 갔다. 그래서 걘 그렇게 훨훨 날아갈 수 있었나 보다.
p293. ‘라이스는 하면 해! 드디어 가족 품에 안기다’ 중에서
라이스의 보호자가 될 분들과 집 근처에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라이스 역시 우리와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는 분들을 경계하지 않고 일행으로 받아들였다. 함께 걷다가 조심스럽게 리드줄을 새 가족분께 넘겼다. 뒤를 돌아본 라이스가 조금 의아해했지만, 같은 속도로 걷는 우리와 옆에 나란히 있는 무늬 누나가 있어서 그런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렇게 다 함께 20분가량 집 근처를 걷다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라이스의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앉아서 라이스가 머물 자리와 용품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라이스가 잘 먹던 간식과 옷, 리쉬, 반다나, 라이스가 쓰던 용품 이것저것을 드렸다. 그리고 별다른 인사 없이 스르륵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눈치를 드린 후 무늬를 안고 잽싸게 집을 나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나왔고, 급하게 따라 나오려는 라이스를 의식한 남편은 조금 머뭇거리다 나왔다.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면 라이스가 당황할 것 같아서 아무 말 하지 않고 남편을 가만히 안고서, 똑같으리라 확신한 두 마음을 포갰다. 안녕, 라이스.
p.303. ‘에필로그-이 개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중에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유기견, 구조견, 펫샵의 귀여운 퍼피, 파양견, 번식장의 종견과 모견, 우리 집 털북숭이 막내. 다 같은 개다. 한번 버림받은 경험이 있어 상처가 있는 개, 사람 손을 타지 않고 공격성이 있는 개, TV에 나오는 유명인이나 인플루언서가 기르는 개와 비슷한 외모의 품종견, 밝은 조명 아래 유리장 안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인기 많은 어린 강아지. 인간의 편의와 상황에 맞게 영역을 나누고 이름을 붙인다 한들 모두 같다. 외모와 성격은 다르지만 다들 마음속에, 인간의 상상으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든 무한한 사랑을 품고 이 세상에 온 아이들이다. 그러니 부디 어떤 아이들만 슬프고 불쌍하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영역으로 쓱 치워버리지 말자. 내 발아래 마당만 깨끗하게 치워 꽃밭을 가꾼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한 발짝만 나가 보면 마당 밖 세상은 악취 가득한 폐허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