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흑구는 「나무」, 「보리」, 「노목을 우러러보며」 등 시적이면서 철학적인 작품으로 한국 수필문학의 독특한 경지를 연 문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수필집은 오래전에 절판되었고,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한흑구는 한국 문학사에서 사실상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부터 미국과 평양, 서울에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던 그가 1948년 포항에 정착한 후로 1979년 작고할 때까지 ‘은둔의 사색가’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문인이 책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는 후배 손춘익(2000년 작고)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수필집을 엮게 되었다.
『동해산문』과 『인생산문』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83편의 주옥 같은 수필이며, 둘째는 이효석, 유치환, 조지훈, 서정주, 김광주 등 당대 문인들과의 교우록이다. 여기에는 죽마교우(竹馬交友) 안익태와의 미국 시절 이야기도 포함된다. 셋째는 수필론이다.
두 권의 수필집에 담긴 한흑구의 수필은 그의 표현대로 “자연과 인간 속에서 미를 찾은 것”이다. 한흑구는 자연 속에서 성스러움을 찾고 사명을 깨달았으며, 이러한 자세는 그의 작품 속에 일관되게 투영된다. 그는 “모든 예술은 진선미 가운데 미를 찾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런 맥락에서 “참된 것이 아름다운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 참된 것.” 이라는 존 키츠(John Keats)의 문학관을 신봉했다.
「수필론」, 「수필의 형식과 정신」에서는 수필에 관한 수준 높은 담론이 펼쳐진다. 한흑구는 수필이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흑구는 이러한 수필론과 이에 바탕한 수필 창작을 통해 수필이 한국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