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학이론가 미하일 바흐찐은 주인공(hero)은 작가로부터도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주인공이 서사에서 자율적인 존재이며 작가가 통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주인공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언뜻 과장된 주장 같다. 그럼에도 바흐찐의 말을 헤아려 보게 되는 까닭은 무언가.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가상의 인격조차 자유로운 존재라고, 그러니 실제의 인간은 어떻겠느냐고 묻는 이론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성격이란 용어를 싫어했다고 한다. 성격이란, 멈추어진, 틀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인간이란 그렇지 않다. 변하는 것이 인간이고, 누구도 그 변화를 막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가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소설이고, 진정한 대화란 일방향의 독백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주고받는 것이라는 바흐찐의 또 다른 통찰도 새삼 떠오른다. 그렇다면, 소설의 주인공 역시 작가와 독자처럼 대화의 한 중심축이리라. 어떤 소설들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장소나 지역이 될 수 있다. 역시, 바흐찐의 사유를 따르자면, 주인공이 된 장소는 고정된 성격을 지닌 바윗덩이 같은 것일 리가 없다. 살아있는, 움직이는, 너와 나의 자리를 바꾸어 보자고 말을 건네는 장소.
그러므로 김도일의 어룡이 놀던 자리의 주인공은 포항이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가 포항이었던 내게, 이 소설집이 펼쳐 놓는 포항의 이야기들은 큰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 소설집이 그려내는 포항의 역사, 문화, 자연, 경제의 서사들은 짧았던 지난 여행이 남긴 단편적 이미지들에 풍성한 의미와 감정을 부여해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멈추어 있는 글자들이 부리는 이야기의 마법이 아닐까. 바흐찐적인 의미에서, 김도일이 그려내는 포항은 살아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된다.
(노대원 문학 평론가의 비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