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가 막혔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나한테도 큰 바지가 왜 나바다한테 맞는데?”
그러자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긴 왜야! 바다가 키가 컸으니까 그렇지!
하늘아, 동생 바지가 너한테 딱 맞으니까 이참에 둘이 바꿔 입어!”
화딱지가 난 내 코에서 콧김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아, 몰라! 싫어! 그 바지가 내 바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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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다 좀 불러 줄래?”
그러자 그 아이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누구?”
“나, 바, 다!”
나는 이름을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교실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더니 외쳤다.
“바다야! 네 동생 왔어! 근데 얘가 나한테 반말 써!”
나는 갑자기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동생?’
내 어디가 어떻다고 동생으로 보이나 싶어서 짜증이 훅 치밀었다. 하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바다의 얼굴도 못 보고 부리나케 복도를 뛰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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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유전자가 다 결정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하늘이 말대로 우리 큰이모랑 이모부도 작으신데 사촌인 쌍둥이 형 중에 한 명이 엄청 크거든.”
제하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잠깐만! 쌍둥이인데도?”
정말로 내가 찾던 질문의 답을 얻은 기분이라 무척 반가웠다.
“그래. 쌍둥이인데 한 명은 크고, 한 명은 작더라고. 신기하지?”
정말 신기했다. 쌍둥이라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유전자가 같을 텐데, 한 명은 크다는 것은 어떤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비밀은 키가 크는 비법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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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속임수를 쓰다니!’
바다는 나보다 더 빠른 손놀림으로 음식을 집어먹었다. 그걸 막으려고 젓가락을 휘휘 젓다 보니, 밥상에서 칼싸움이라도 난 듯 ‘칭칭’, ‘챙챙’ 하는 소리가 났다. 밥풀이 공중을 날아다니고, 김치 국물이 툭툭 식탁 위로 떨어지고, 멸치도 공중에서 식탁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밥을 꼭꼭 씹지도 않은 채 또다시 소고기 불고기를 집었더니 바다가 빼앗아 갔다. 나는 바다의 젓가락을 팍 쳤다. 젓가락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 시끄러워! 밥상머리에서 또 무슨 짓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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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키가 크는 것만큼, 아니 키보다 더 마음이 커지기를 바란다. 아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나에게 지지 않기 위해, 그래서 나의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최고의 선물은,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고 건강한 마음을 잘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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