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아프니 밥을 굶는다 (책소개)
밥을 굶으면서 하루하루 죽음을 준비하는 스님을 보았다. 먹고사는 일이라면 어떤 모욕이라도 감내하는 시대에 개혁, 희망, 부처를 내세워 노승은 기꺼이 가진 자들 앞에 목숨을 내놓았다. 설조스님, 그가 선택한 죽음의 방식은 단식이었다. 죽음과 밥이 대립하는 조계사에서 작가는 설조스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글을 썼다.
- 우리나라 사찰 90%가 조계종이고 , 전체 불교신자의 80%인 조계종이 왜 이러나?
170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불교가 MBC PD수첩에서 ‘큰스님께 묻습니다’를 방영한 이후 크게 흔들렸다. 우리나라 전체 사찰의 90%를 차지하고, 전체 신도수의 80%를 거느린 조계종 스님들이 TV화면에 비쳤다. 모두 조계종 최상위 직급인 총무원장이거나 교구본사 주지였다. 그들은 즉각 사실을 부인했지만, 그를 입증하는 자료는 부족해 보인다.
PD수첩이 보도하기 전에 이미 스님과 고소, 고발인 사이에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도 있었고, 재판부에서 반박자료 부족으로 고소인인 스님들이 제출한 명예회손죄를 기각한 경우도 있었다.
1, 반성 : 2018년의 여름은 유례없이 뜨거웠다. 정확히 111년 만의 무더위를 비닐 천막 한 장과 물과 소금만으로 버틴 설조스님도 그렇거니와, 그 죽음도 불사한 단식을 비웃어 넘기는 조계종의 기득권층 세력이 ‘국민 이기는 정부 없는’, 이 촛불민주화 시대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날씨 못지않은 뜨거움이었다.
설조스님은 단식기간 대중 앞에서 끊임없이 ‘죄송합니다’란 말로 잘못을 빌었다. 작가는 한국불교 현대사와 함께해온 대중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스님의 사과, 바로 이 ‘죄송합니다’란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1994년 개혁 당시 재가자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후에는 더할 나위도 없다. 조계종은,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불교를 유린한 사태를 법난이라 부르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고 하지만, 스님들 내부에서 물고 물리면서 접전이 벌어지는 최근 사태는 승난(僧難)에 가깝다.
우리나라 불교 역사는 1,700년에 이른다. 까마득한 날까지는 모르겠으되, 적어도 불교 현대사로 지칭되는 시기에 스님들이 저지른 온갖 잘못을 종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할 때 비로소 불교 개혁의 새날이 열리라고 작가는 믿는다.
2, 희망 : 적폐(積弊)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이를 청산하려면 그에 못지않은 끈질긴 노력과 전방위적인 개조가 필요하다. 설조스님은 단식장에서 기득권 세력의 벽이 두껍다고 우려하는 사람에게 말했다. 악이 계속 승리할 거 같아도 선한 마음을 이길 순 없어요. 불자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일이 ‘성사되고 안 되고’에 관계없이 옳은 주장을 하고, 옳은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계속 정진해야 합니다. 분노하라. 나치에 저항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을 펼친 노익장 스테판 에쎌에게는 어떤 정치셈법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용기와 희망만을 전 세계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전했다. 설조스님 또한 모든 기도에는 희망이 있다면서, 희망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외쳤다. 설조스님은 불교 개혁이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했을 때 홀연히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그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준 건 아니지만 그를 통해 희망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3, 자비 : 종교 인구가 줄고 있다. 돈이 있어야 교회든 절이든 갈 수 있다고 한탄하는 신자도 있다. 무종교라서 종교인처럼 불행하지 않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유마힐은 ‘중생이 병들어 아프니 나도 아프다’란 유명한 말을 남긴 인물이다. 유마힐이 남긴 말의 수레바퀴는 2500년을 굴러 우리 앞에 이르렀다. 유마힐이 병이 든 것은 중생과 아픔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생이 행복하면 유마힐도 따라서 행복할까.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생이 행복할 때도 유마힐은 늘 아프다. 중생이란 원래 아픈 사람들이기에 유마힐의 아픔은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는 병이다. 단언컨대 유마힐의 본질은 아픔이다. 조계종의 높은 자리에서 돈 걱정 없이 부유하고 풍요롭게 사는 스님들은 유마힐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의 돈과 권력은 중생의 가난과 희생 위에 지은 누각이기에.
설조스님은 올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천막 하나로 버텨냈다. 작가가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지진 않았냐고 물었더니 설조스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아침에 눈 뜨면 바로 저녁이더라고요. 나는 한 30일 살면 내 목숨이 끊어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루가 그렇게 빠르게 지나갈 수 없었어요.”
그는 죽기를 마다하고 단식했던 것이다. 그렇게 극한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그는 단식장을 찾아오는 사람 누구나 만났으며, 단식장 주변 우정국 공원에서 소주병과 빵 봉자와 더불어 굴러다니는 노숙자들을 관대히 여겼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극심한 아픔은 굶주림과 같다. 설조스님은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고 싶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저 무도한 조계종 기득권 세력을 설득할 법력이 없어 몸이라도 바쳐 항거하려고 단식했듯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설조스님은 밥을 굶었을지 모른다.
스님들은 학력위조, 은처자, 성폭행, 시줏돈이나 국고보조금 횡령, 사유재산 과다 보유 등 광범위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총무원장으로 재직하다가 지난 8월 21일 사퇴한 설정스님은 조계종 자체 조사로도 ‘서울대 졸업 위조 의혹은 그 허물을 참회했지만, 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면서 사실상 학력을 위조한 것을 인정했다. 은처 문제에 대해선, ‘친딸로 의심되는 전모 씨에게 수년 동안 금전을 전달한 사실에 대한 설정 원장의 해명도 부족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계종 조사기구는 최종 입장을 표명했다. ‘유전자검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의혹을 규명함이 마땅하다.
설정스님은 결국 탄핵을 당하고 수덕사로 되돌아갔다.
- 설조 스님, 41일간 단식하다
설정스님이 탄핵한 단초는 MBC PD수첩이 제공했지만, 그 후 등장한 설조스님의 단식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개혁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선언한 그는 88세의 나이에 41일간이나 단식했다. 그를 지지하러 조계사 앞에 모인 사람들은 진정한 개혁의 영웅으로 그를 추앙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았다.
설조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은 불교신자뿐 아니라 일반시민에게도 파장을 일으켰다. 설조스님을 곁에서 지켜본 내과전문의 이보라 씨는 적지 않은 단식자를 경험했지만 설조스님처럼 단단한 각오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 스님을 이보라 씨는 사실상 연명치료를 거부한 것으로 얘기했다. 설조스님은 변호사를 불러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고 대중들 앞에서 유언처럼 밝혀 긴장감을 더하기도 했다.
설조스님, 그가 41일의 단식을 통해 남긴 것은 무엇일까. 그의 단식이 유독 파장이 컸던 건, 1994년 불교개혁의 실체를 밝힐, 살아있는 그 당시 최고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죄를 지었다’고 표현했다. 지금 불교계가 짓고 있는 죄의 근원을 개혁 당시 재정 투명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그 이야기를 사부대중에게 숨김없이 알렸다. 설조스님처럼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사회에서는 양심이라 부른다. 설조는 돈과 권력과 집단 이기주의에 얽혀 있는 똥 덩어리 같은 불교계를 지팡이로 쑤셔 ‘있는 그대로’를 보게 했다.
7월 30일, 41일간 목숨을 건 설조스님의 단식은 기력의 한계와 사부대중의 눈물 어린 호소로 끝이 났다. 설조스님은 단식장을 떠나기 전 메시지를 남겼다. 선량한 다수 스님이 일어나 종단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단식을 하면서 재가자들에게 교단을 바로 세우자고 외쳤던 것이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청정 승가를 이루도록 노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