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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평면표지(2D 앞표지)

나뭇잎 묘지

1952년, 보병들의 이야기


  • ISBN-13
    979-11-950847-2-2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지유서사 / 지유서사
  • 정가
    1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0-06-07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고원영
  • 번역
    -
  • 메인주제어
    소설 및 연관 상품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소설 및 연관 상품 #저격능선 #저격능선전투 #상감령전투 #6.25전쟁 #17연대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10 mm, 326 Page

책소개

나뭇잎 묘지 책 소개

 

한반도에 몰려오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먹구름. 구름 끼리 부딪혀 뇌성벽력이 일어날 것이다. 미래의 전쟁이 궁금하다면 70년 전의 한반도를 뒤돌아보라. 두 나라는 이미 예고편과도 같은 전쟁을 치렀다. 우리는 또다시 무고한 희생자로 남을 것인가.

사라져가는 6·25 참전군인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기록하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작가는“질 나쁜 전등처럼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그들은 깜빡거렸고, 내 임무 아닌 임무는 망각 쪽에 가담해 그들이 겪은 어두운 전쟁을 되살리는 일이었다"라고 소설의 첫 문을 연다.

‘나뭇잎 묘지’는 전쟁영웅이나 이념의 대가를 언급하지 않는다. 주요 등장인물은 대부분 하사관 이하 병사들이다. 전선은 늘 이름 없는 병사들 앞에서 형성됐고, 불평등하게도 그들에게 무수한 죽음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사지로 내몬 전투는 저격능선이었다.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오성산에 있는 고지였다. 미군이 중공군과의 싸움에서 고전하던 그곳에 대리전을 치르러 간 것이었다. 그리하여 42일간 무려 28차례나 고지를 뺏고 빼앗기며 피아간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는 6·25 전쟁사에서 최대 인명 피해라는 기록을 낳는다.

1953년 휴전을 앞두고 중공군이 최후 공세를 펼쳐왔다. 그때 후퇴하느라 저격능선을 휴전선 북쪽에 남겨 놓고는 지금에 이르렀다. 중국은 이 사실을 재빨리 포장하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상감령 전투’라는 이름을 붙여, 미국과 싸워 이긴 최대 승전 지역이라 선전한다. 마오쩌둥의 지시로 오래전 영화도 만들었다. 참전한 중공군에게는 영웅 칭호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어땠나. 국군 대부분 지독하게 가난한 청년들로 배가 고파서 군대에 입대했거나 남침을 받아 후퇴할 때 길거리에서 모병된 신병들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억세게 운이 좋아 저격능선에서 살아남았다고 비아냥댔으며, 생사를 넘나들다 생긴 트라우마를 긍휼히 여기기는커녕 단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랑자로 취급했으며, 정치적인 이해충돌이 심한 최근 몇 년 동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극기부대 할배’라 조롱했다.

소설을 쓴 고원영 작가는 처음에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글을 써서 사실성을 부각하려 했다. 그러나 사실과 동시에 진실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소설임을 이내 알아차렸다. 프란츠 카프카 애호가이기도 한 작가는 카프카가 소설에 대해 정의한 ‘거짓말의 진실’이야말로 어떤 이념이나 이해관계에도 구애받지 않는 공평한 작법이라 여겼다. ‘태극기부대’에 합류한 참전군인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도 이에 무관하지 않다.

2020년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 등 사사건건 대립해온 지 오래다. 세계 패권을 노리는 이 두 나라는 궁극적으로 무력전쟁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그 화약고가 한반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목차

나뭇잎 묘지, 차례

 

들어가는 말 – ‘태극기 부대’를 생각하며

막다른 골목 -11

밥의 유혹 - 17

가죽 장화와 긴 칼 - 25

유행가와 정치 - 33

심술궂은 할아버지 - 40

짝사랑 - 48

죽음의 오차 - 55

조심해, 여긴 저격능선이야 - 63

무적 탱크 - 73

꽃상여가 지나갔다 - 81

어둠의 군대 - 91

믿을 건 쌕쌕이뿐 - 102

그 옛날 평안도 관찰사가 있었다 - 111

마약과 사상 - 118

거짓말의 진실 - 126

Y고지의 절세미인 -133

위문 공연 - 141

공산주의와 빨갱이 사이 - 149

중대장이 옳았다 - 162

배구 시합 - 169

추운 거리로 내몰렸다 - 176

소모 소위 - 184

두 겹의 노래 - 192

나비야 청산 가자 - 205

꽁치 통조림 - 214

정칠성 아저씨 - 222

악몽 - 229

야전병원 - 234

묵정동 - 243

토끼 사냥 - 251

잃어버린 본부 - 260

문학청년 - 270

내림굿 - 276

돈폭탄 - 283

맛없는 생간 - 292

창문을 넘다 - 299

어디 가나 중공군이 있었다 - 307

해마다 관광버스는 떠난다 - 313

본문인용

나뭇잎 묘지, 책 속으로

 

◆ 미군은 야포와 전폭기를 동원했다. 몇 달 동안 무차별 불의 세례를 내렸지만, 오성산에 주둔한 중공군은 영원히 괴멸되지 않는 병마총 군사들이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진시황의 군사들처럼 오성산 전초인 저격능선에 나타났다. 중공군은 개활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저격능선에서 아식보총A式步銃이라 부른 소련제 장총에 망원경을 달아 사격하였다. 그때마다 미군은 사격장의 표적지처럼 일어섰다가 드러누웠다. 미군은 능선 아래서 보병이 접수하지 못하는 진지전의 참상에 치를 떨었다. (막다른 골목, P-15)

 

◆ 전방에 가면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전투에 이기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 지휘관들의 독려는 대부분 밥에 관한 것이었다. 그 말이 헛됨을 알면서도 밥을 찾아 불평불만 없이 훈련하고 내무반에 적응하는 것이 병사의 길이었다. 쉽사리 이루기 어려운 소망은 언제나 찬란했다. 희고 기름진 쌀밥이나 원 없이 먹어 보았으면!

(밥의 유혹, P-28)

 

◆ 그러나 막상 용산으로 왔을 때 그가 보고 싶어 했던 탱크는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에게 지급된 건 둥글고 긴 원통 모양의 쇠붙이였다. 거기에 역시 쇠붙이인 포판과 삼각대를 결합한 무기가 박격포였다. 60밀리 박격포를 어깨에 짊어지고 종일 연병장을 도는 고된 훈련을 받고서야 김유감은 이승만 정부의 군대에는 탱크가 한 대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행가와 정치, P-41)

 

◆ 대검이 등뼈에 부딪히는 느낌이 이종옥의 손에 전해졌다. 땅을 파헤치던 곡괭이가 돌멩이에 부딪칠 때처럼 딱, 하는 소리가 났다. 뺨을 땅에 대고 엎어진 인민군의 눈에서 눈빛이 사라지고 있을 때야 이종옥은 비로소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꽃상여가 지나간다, P-91)

 

◆ 미군 전투기가 추락한 상감령 계곡 쪽에서 까마귀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화약 냄새에 중독된 까마귀들이었다. 흐린 날은 일찍 저물었다. Y고지, 옅은 구름에 가린 북쪽 봉우리가 쉬이 다가가지 못할 수수께끼 성처럼 유난히 멀어 보이면서도 왠지 으스스했다. 어디선가 절세미인인 그녀, 아무도 본 적 없는 저격수가 총구를 겨누고 있을지도 몰랐다.

(Y고지의 절세미인, P-144)

 

◆ 이제 중공군의 공격은 취침 전 내무반에서 치르는 점호 같았다. 점호를 치르면 요란하게 소리가 나면서 하루가 지났고, 점호를 치르지 않으면 쥐 죽은 듯 고요해서 하루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중공군이 보이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총을 쏴야 했고, 중공군이 보이지 않으면 보일 때까지 경계 총 자세로 기다려야 했다. 중공군은 보일 때보다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무서웠다.

(중대장이 옳았다, P-166)

 

◆ 배구공이 공중으로 올랐다. 여학생이 서브를 먹이려 한쪽 팔을 치켜들면서 허리를 젖혔다. 동복을 입고 있었으나 상체가 팽팽해지면서 젖가슴의 양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배구 코트를 둘러싸고 지켜보던 병사들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배구공과 함께 여학생들이 뛰어오르거나 착지했다. 가슴과 엉덩이가 동시에 출렁거렸다. 그 모습을 구경하는 병사들의 표정은 차라리 고통에 가까웠다. 여학생들은 공을 받을 때나 보낼 때 가벼운 숨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가 묘하게도 귀보다 심장에 먼저 닿았다. 여학생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뛰거나 튀어 올랐고, 배구공이 솟아오르는 겨울 하늘은 방금 페인트칠을 끝낸 듯 새파랬다.

(배구 선수, P-176)

 

◆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기적적으로 혼자 남하한 그는 저체온증과 심한 동상에 걸려 있었다. 추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그 부상병은 파랗게 얼어붙은 입술로 겨우 말했다. 땅이 얼어 참호를 팔 수 없고, 소총이 얼어 방아쇠를 당길 수 없고, 기름이 얼어 탱크나 트럭을 움직일 수 없고, 수통이 얼어 물을 마실 수 없고, 주사기가 얼어 부상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아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중공군은 얼어버린 산과 길을 미끄러지듯 잘도 돌아다니니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다.

(추운 거리로 내몰렸다, P-186)

 

◆ 포로가 죽여 달라고 소리칠 때마다 그는 눈을 뭉쳐서 던졌고, 나중에는 가만히 있는데도 던졌다. 두 사람의 늘어난 말수에 놀라면서도 신용수 또한 무언가 지껄였다. 며칠째 계속되는 눈과 기이한 토끼 사냥과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 뒤섞인 탓일까. 아니면 확전도 휴전도 아닌 모호한 소강상태를 말단 보병들이 겪어내면서 저도 모르게 생겨난 과민반응일지도 몰랐다.

(토끼 사냥, P-260)

 

◆ 윤금도는 겨우 편지를 읽었다. 소진호의 편지는 윤금도가 흔히 접한 편지와 확연히 달랐다. 편지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했다. 편지의 수신자인 어머니를 의식하고 쓴 글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안부를 묻거나 전달하는 편지라기보다 독백체의 일기에 가까웠다.

(문학청년, P-279)

 

◆ 하늘로 날아오르자 발아래에서 벌어지는 참호전이 지옥도地獄圖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사람인지 요괴인지 모를 생명체들이 검은 땅을 파헤쳐 구멍을 내고 길을 낸 곳에서 서로 엉겨 붙어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거기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란 무의미했다.

(내림굿, P-286)

 

◆ 폭발음이 들리기 직전이었다. 현상염이 유개호로 달려오는 중공군을 향해 돈다발을 홱 뿌렸다. 돈다발이 수류탄 파편과 함께 산산이 흩어졌다. 4개국 지폐를 수집한 대한민국 보병 상사 현상염은 그렇게 생을 마쳤다.

(돈폭탄, P-294)

 

◆ “지지리도 운 없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우리지요. 후세 사람이 혹여 우리를 기록한다면 다 거기서 거기라, 한 사람만 기록해도 열 사람을 기록한 것과 같다고 말할 겁니다.”

“우린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너무 많은 죽음을 보다가 서로 닮아버린 거 같아.”

(창문을 넘다, P-306)

 

◆ 이건 아니야. 이종옥은 속엣말로 중얼거렸다. 총알이 심장을 꿰뚫었다고 느끼는데도 이상하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아니 고통스럽지 않은 게 아니라 항상 고통스러웠기에 고통을 덜 느끼는 것 같았다. 총알이 통과하면서 등허리에 생긴, 더운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구멍이 눈에 어른거렸다. 몸이 나른한데 정신은 말짱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수천, 수만의 새파란 나뭇잎들이 오성산 하늘에서 번들거렸다.

(창문을 넘다, P-311)

 

◆ 윤금도와 김유감은 베이징을 여행하다 우연히 목격한 상감령 전투 홍보영화에 치를 떨었다. 그 분노는 고스란히 문재인 정권을 향했다. 죽을힘으로 휠체어를 굴려 태극기부대를 따라간 청와대 앞에서 두 사람은 손나팔을 입에 대고 소리쳤다.

“어떻게 미국보다 중국을 더 숭배하냐. 이 똥때놈 밑이나 닦을 빨갱이 문재인 놈아!”

(해마다 관광버스는 떠난다, P-323)

 

◆ 버스 안에서 설핏 잠이 들었는데 저격능선에서 전사한 이종옥이 꿈속에서 보였다. 못 보던 나무가 Y고지로 가는 길목에서 울창한 나뭇잎을 드리운 채 서 있고, 그 아래에 이종옥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나뭇잎은 기름져 보일 정도로 푸른빛이 짙었고, 드러누운 이종옥은 마치 관 속에서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배에 모은 자세였다. 얼굴은 웃음기를 머금어 평온해 보였다. 이상한 꿈이었다. 가끔 먼저 저세상에 간 전우가 꿈속에서 찾아오곤 했지만 이번처럼 기이하기는 처음이었다. 윤금도는 나무를 찾아내려 망원경에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않았다.

(해마다 관광버스는 떠난다, P-324)

서평

올해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됐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의 수많은 피해를 낳았다. 남과 북의 군인을 비롯해 참전군인들만 가운데 사망자는 100만 명에 육박한다. 전쟁 피해로 사망한 민간인과 양민 학살자 등을 포함하면 수백만에 이른다. 한국전쟁은 민족 모두에게 아픔을 가져다준 전쟁이었고, 3년간의 전쟁의 역사는 우리 모두의 가족사였다.

우리 모두의 가족사였던 한국전쟁이지만 전쟁 그 자체를 다룬 소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항상 이념과 결부된 금기의 영역이었고, 우리에게 전쟁 이야기는 언제나 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단 장군들의 영웅담이었을 뿐이었다. 전장에서 죽어간, 또는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병들의 이야기는 아직 묻혀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고원영 작가가 쓴 전쟁소설 ‘나뭇잎 묘지’는 이념과 장군들의 화려한 영웅담을 지워내고,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쳤던 사병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은 1952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있었던 ‘저격능선 전투’다. 그해 10월 국군 2사단 17연대는 이곳에 투입됐다. 당시 휴전협상을 진행하면서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이어졌고,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 42일간 무려 28차례나 고지를 뺏고 빼앗기며 피아간 2만여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한국 전쟁사에서 최대 인명 피해를 기록한 전투였다. 미군과 중공군이 전면전을 벌였고, 병사들이 죽으면 새로운 신병으로 그들의 자리를 채우며 싸웠다. 병사들은 마치 소모품과도 같았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마치 소모품처럼 전투 속에서 사라진, 혹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살아남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을 호명하고 있다. 작가는 참전군인들을 인터뷰해 다큐로 글을 구성하려다 소설의 형식을 빌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로했다.

병사들은 아주 평범한 청년들이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에 든든한 밥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아주 소박한 생각에 군에 지원했던 청년들이다. 윤금도와 이종옥, 김유감은 가난 때문에, 혹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 전쟁이 발발하기 전 군대에 입대한다. 이북 출신 신용수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1·4후퇴 때 월남했다가 남한 군대에 입대한다.

하지만,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밤이면 인민군과 중공군의 진격이 이어졌고,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전쟁엔 수많은 거창한 명분이 덧씌워졌지만, 그곳의 병사들에겐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작가는 ‘내가 살기 위해선 남을 죽여야 하는 것, 그 외에 더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폭탄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그들은 마치 발이 묶인 나무처럼 달아날 수 없다. 때문에 병사들은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 소망한다. 저격능선에서 철수하거나, 휴전회담이 빨리 성사돼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꿈꾼다. 이종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철수를 앞두고 죽어갔고, 윤금도와 김유감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윤금도와 김유감은 매년 저격능선을 추모하러 간다. 전망대에 올라 지금은 북쪽에 남아있는 휴전선 너머 그 고지를 바라본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 당시 태극기 부대로도 참여한다. 작가는 말한다. “두 노인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했다. 사실과는 달리 애국심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반공 쪽으로 결론을 유도하느라 번번이 비논리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너무나 많았다. 나중에야 나는 그 까닭이 비극적 상황에 대한 의도적인 망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랬다. 질 나쁜 전등처럼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그들은 깜빡거렸고, 내 임무 아닌 임무는 망각 쪽에 가담하여 그들이 겪은 어두운 전쟁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그들이 태극기 부대가 되어 거리에 있는 건 여전히 70년 된 그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을 오래된 전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은 아닐까?

저자소개

저자 : 고원영
저자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적극적으로 항의한 촛불시민이었지만, 비슷한 시기 광화문 태극기부대에 합류한 참전용사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인으로만 경멸하는 것을 보고 6·25전쟁을 다시 알리기로 했다. 비록 1958년생으로 전후세대지만 참전용사들이 겪은 전쟁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나름 정직하게 기록한 적이 있었다. '나뭇잎 묘지(2020년)'는 6·25전쟁사에서 가장 사상자가 많았던 저격능선 전투를 이야기하고 있다. 2010년에 발표한 '나뭇잎 병사(2010년)'의 개정판이다.

저자는 록 음악의 황금기와 저자의 청소년기를 돌아본 ‘별에게로의 망명(2023년), 600년 고도 서울의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느끼는 상념을 이야기한 '낮은 창문 앞에 서다(2020년), 6·25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기록한 저격능선 전투를 통해 한반도의 미래에 드리운 전쟁의 위험을 암시한 장편소설 '나뭇잎 묘지(2020년)', 베이비부머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해 현재를 성찰한 ‘골목길 카프카(2019년)’, 불교계 최대 종파인 조계종 비리를 설조 스님의 단식을 통해 들여다본 '그대가 아프니 밥을 굶는다(2018년)', 오랜 답사를 통해 우리나라 불교 순례길을 꼽아본 ‘저 절로 가는 길(2015년)’을 썼다.
저자는 사진 분야에도 유별난 관심을 기울여 발표한 작품집 다수에 저자가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 문학창작 부문에 저서 '별에게로의 망명'이 선정된 바 있으며, 불교계 신문과 잡지에 계속해서 컬럼을 연재하고 있다.

출판사소개

소설과 에세이, 사진집을 펴내는 1인 출판사다. 대표 고원영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사진을 찍기 때문에 그렇게 장르를 설정했다.
고원영이 처음부터 자기 책을 내려고 만든 출판사는 아니었다. 2012년 고등학교 동창의 소설책을 출간하려 출판사 신고확인증을 발부받았다.
2018년 조계종 개혁에 앞장선 설조 스님 단식 이야기를 쓴 고원영의 '그대가 아프니 밥을 굶는다'를 한 출판사에서 출간을 망설이다 포기했다.
그때 부득이 자비로 책을 만들면서 출판사 대표이며 저자라는 1인 2역을 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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