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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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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창문 앞에 서다


  • ISBN-13
    979-11-950847-6-0 (03800)
  • 출판사 / 임프린트
    지유서사 / 지유서사
  • 정가
    1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0-11-1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고원영
  • 번역
    -
  • 메인주제어
    인물, 문학, 문학연구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서울의골목길 #서울의옛이야기 #광화문태극기부대이야
  • 도서유형
    종이책, 양장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5 * 190 mm, 302 Page

책소개

고층 아파트와 유리빌딩들이 내려다보는 거대 도시 서울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굴까. 과거에는 무작정 서울에 상경했다가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랐으나, 어느 때부턴가 서울살이의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해 길바닥에 나앉은 노숙자들이 앞섰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겉보기엔 성공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어느 날 빈 아파트에서 고독사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에서 그를 찾아오는 지인이라고는 구청과 동사무소, 돌봄센터 직원 몇 사람밖에 없다. 
‘낮은 창문 앞에 서다’의 저자 고원영은 어떤 지위나 위치에서건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대인이 구축한 촘촘한 질서와 냉정한 사고방식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려 옛 골목길을 걷는다고 한다. 그러면, 비록 일탈에 불과할지라도, 명상센터나 핼스클럽을 다녀온 것처럼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가난과 나태한 삶의 흔적들에게서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울토박이인 저자에게는 골목길이 곧 고향인 셈이다. 낮은 지붕, 낮은 대문, 낮은 담장, 낮은 창문…… 낮은 데를 임하는 동안 도시에서의 불안과 고독을 씻어낸다.

목차

낮은 창문 앞에 서다 차례


PART1, 옛길에 빠지다
감고당 길 ---15
영원한 재귀 ---21
궁 속의 궁, 건청궁--- 27
장희빈 신주를 모신 칠궁 ---33
경복궁 서쪽 돌담길을 따라 걷다 ---39
궁정동, 무궁화동산 ---45
춤추는 언덕길 ---49
익선동, 낮은 창문 앞에
서다 ---55
문밖에서 ---63
공평도시유적전시관(김승옥의 무진기행 풍) --- 71
‘송석원’을 찾아서 --- 77
창경궁 유리온실 이야기 --- 85
허난설헌의 곡자 ---91
귀신사 홀어머니다리---99
고유정, 2019년과 1933년 사이 ---107

PART2, 카메라에 담긴
생각
봄 외 ?114날







PART3, 글의 풍경
토니오 크뢰거---152
내버려 둬--- 158
댈러웨이 부인을
읽었다 ? 164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좋아지는 순간---168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 172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177
뽕짝---180
태어나줘서 고맙다---182
설날과 위로---185
넌 너무 말이 많아---187
클린트 이스트우드 닮고 싶다---192

PART4, 광화문으로 가는 여섯 갈래 길(실화소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200
한교훈 씨, 그 오래도록 불편한 기억 ---282

본문인용

책 속으로

◆ 현악기 소리에 빨려가듯 누가 내 곁을 지난다. 어제도, 그제도 봤던, 노란 티셔츠를 입은 여자다. 인현왕후나 명성황후가 여전히 이승을 떠나지 않고 감고당 길을 떠도는 것은 아닐까.  

(감고당 길 P19)

 

◆ 비를 품은 구름이 조만간 유리창으로 다가올 기미다. 빗방울이 흐린 하늘에 떠도는 잠자리 날개를 스치고 떨어지면 우산을 쓰고 골목길로 나서야겠다. 한남권번 출신 박녹주를 찾아 익선동으로 갈 생각이다. 천둥이나 번개가 쳐도 아무런 동요 없이 걸어갈 자신이 있다. 깊은 숙성에 혀가 오므라드는 소주, 오래 묵었지만 가벼워서 멀리 퍼져가는 향,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 소설이 나를 사로잡는다. 요컨대 나는 현재와 더불어 과거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현상을 즐기는 취향이다. 길을 걷다가 내 부주의한 발이 남의 집에서 내놓은 화분을 걷어차도 우연은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서울의 골목길에서 벌어졌다. 나는 ‘영원한 재귀(再歸)’를 믿는다. 

(영원한 재귀 P25)

 

◆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친모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했다. 묘지는 서오릉 내에 있으며 그 이름이 대빈묘(大嬪墓)다. 한때 이 묘는 여성 관람객으로 넘쳤다고 한다. 신랑감이 생긴다는 속설을 믿고 ‘희빈 언니의 기’를 받기 위해 미혼 여성들이 무덤을 돌거나 봉산탈춤을 춘다는 얘기였다. 기혼 여성들도 대빈묘에 와서 소주를 따른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뭘까. 장희빈의 기가 워낙 세서 바위로 무덤 위쪽을 눌렀지만, 바위를 뚫고 소나무가 솟아올랐다는 이야기를 믿고?  

(장희빈의 신주를 모신 칠궁 P38)

 

 

 

◆ 김유정은 몸이 떠났으되, 마음은 여전히 이승에 머물러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마음이 몸을 불러낸다. 땅에서 일어난 그가 저벅저벅 골목길을 걸어와 박녹주네 창문 앞에 선다. 창문은 늘 굳게 닫혀 있다. 박녹주의 마음이 언제 열릴지 여전히 기약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도 귀신도 쉬이 포기할 수 없도록 사랑의 힘은 강한 것일까. 보아라, 저 창문 안에 누가 살고 있다. 가끔 커튼이 흔들리고, 얘야, 채널 다른 데로 돌려라. 연속극 시작할 시간이야. 사람의 말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분명히 나는 들었다. 

(익선동, 낮은 창문 앞에 서다 P60)

 

◆ 정선이 그린 송석원시사야회도에서 시인 혹은 묵객이 밤 드리 모여 있던 숲속의 분지라 여긴 곳에서 발길을 멈췄다. 깨어 있는 삶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나와 이능재 거사, 두 사람이 선 자리를 가로막은 집들이 이내 푸른 소나무와 흰 바위가 어우러진 숲으로 변하면서 새들이 울고 시냇물이 흘렀다. 위로는 인왕산이 가까웠고, 아래로는 북악산과 남산 사이에서 한양 도성이 흥청거리고, 성곽 너머 수락산과 관악산은 구름을 끼고 어디론가 떠가고 있다.

 (‘송석원’을 찾아서 P82)

 

◆ 곡은 느리고 긴 계면조지만 리듬을 지닌다. 광릉 땅 오누이 무덤 앞에서 넋이라도 어울려 놀라며 허난설헌의 곡은 리듬을 탔으며, 리듬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리듯 뱃속의 아이마저 무사하지 못하리라고 절망을 노래한다. 어찌 잘 크기를 바라냐고 한탄하는 구절에 이르러선, 희망을 버렸다기보다 불행을 완성하려고 허난설헌이 시를 쓰지 않았는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허난설헌의 곡자 P94)

 

◆ 아, 난감함! 우리 삶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때마다 선택이란 게 쉽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이윽고 눈을 뜨고 어디론가 가야 했지만, 대개는 본능이 부르는 곳으로 향하지 않았던가. 홀어머니는 한밤중에 개울을 건넌 그 뜨거움으로, 그 솔직한 욕망으로 색계와 무색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웠다. 그러자 이쪽과 저쪽이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귀신사 홀어머니 다리 P105) 

 

◆ 누군가는 오천 년 묵은 원한을 복수하러 여자들이 요즘 태어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무협지 대사처럼 복수는 복수를 불러오고…… 용서를 묵살하고 믹서기로 갈아버린다면 이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아주 미미한 흔적만 남겨 놓고 사라질 것이다. 뼈 몇 조각만 남은 고유정의 전 남편처럼.

(고유정, 2013년과 1933년 사이 P112)

 

◆ 그러나 한 작가가 성실한 삶을 다짐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가혹한 운명의 진실을 발견한다면 글을 쓰는, 써야 하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와 맞닥뜨리게 된다. 참된 글쓰기란 실로 자신의 불행을 직시할 때에만 그 자격이 주어지니, 작가란 불행을 토대로 다만 성실하게 글을 쓸 뿐이라는 게 토마스 만의 전언이다. 

(토니오 크뢰거 P156) 

 

◆ 대학병원에 가면 대부분 의사가 형식적인 인사를 마치고는 곧장 모니터에 눈길을 박는다. 증상을 설명하는 동안 환자와 눈을 맞대는 의사는 극히 드물다. 심지어 암을 선고할 때도 그런 태도이리라 여겨진다. 그런 그들도 막상 자신이 암에 걸렸음을 알았을 때는 당혹감을 느낀다고 한다. 평소 환자를 이해하는 데 소홀한 의사였으므로 그 충격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내버려 둬 P161)

 

◆ 나뿐 아니라 옳고 그름만을 판단하느라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사람이 적지 않다. 이해보다는 대립이 더 익숙한 습관이 돼버렸다. 사람들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건 어쩌면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관행에 안주하느라 개혁을 망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상대를 패배시키려면 더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입술이 메마르기도 한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글은 아마도 그러한 사람들에게 세계의 불확실성을 보여줌으로써 휴식을 주지 않을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 P178)

 

◆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극을 꾸민 박찬욱 감독도 이 대목에 이르러선 주춤거린다. 모든 악덕을 희화화(戱畵化)하는데 이바지해온 최면을 마지막 장면으로 도입하면서 도덕성 비난의 창끝에서 비켜선다. 만사형통이던 이제까지와는 달리 뉴질랜드에서의 최면은 효력을 상실한다. 눈 덮힌 들판에서의 최면을 눈 부신 햇살이 반사해선가? 아니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을 모든 끔찍한 복수를 체험한 사내는 최면마저 통하지 않을 좀비나 강시로 변신해버려선가?

(넌 너무 말이 많아 P190)

 

◆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덜 늙었지만 나 또한 계속 늙어가고 있다. 나의 늙음은 그의 늙음에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세하다. 나의 젊음도 그의 젊음에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얼굴을 구성하는 이목구비부터 열악했다. 그를 닮기란 영원히 불가능하겠지만, 그와 함께 늙어가면서 변함없이 그를 동경하는 것이 나의 위안이다. 그가 간직한 소년의 힘을 조금이라도 얻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망각에 대항하는 강력한 항체인 소년의 힘을 내게 이식하고서 주문을 외우고 싶다. 자라거라, 자라거라……,(Let It Grow, Let It Grow)

(클린트 이스트우드 닮고 싶다 P194)

 

◆ 광화문은 세종문화회관이나 교보문고가 있는 문화의 거리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광포한 태극기부대에 지배당했다. 마치 임오군란을 눈앞에 보는 느낌이었다. 민비가 장호원으로 도망쳐 서울이 진공 상태에 빠졌을 때 광화문 거리를 휩쓸고 다닌 조선 말 구식군대처럼 태극기부대는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찻길을 막았고 거리로 난 창문을 꼭꼭 닫아버리게 했다. 교보문고가 있는 빌딩 지하에 가면 책을 사러 온 시민들이 피난민처럼 어두워 보였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점령군에게 지상을 빼앗긴 그들은 항전을 포기하고 무기력하게도 책을 읽고만 있었다.

(광화문으로 가는 일곱 갈래길 P203)

 

◆ 일상에서 집요하게 반복된 독재 권력의 가르침이 어찌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공화당 어떤 당원이 국민교육헌장을 당의 정책으로 삼자고 건의했다는 말에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단지를 거행한 애국아저씨와 고등학생이 사라진 자리에 어쩌면 태극기부대가 등장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다른 차원의 이벤트를 선보이지만, 결국은 반공·멸공의 붉은 혈서에 버금가는 ‘빨갱이 타도’ 발언으로 마무리한다.

(광화문으로 가는 일곱 갈래길 P227)

 

◆ 이승만을 욕하는 건 목숨을 걸고 공산주의와 싸운 자신들에 대한 모독이고, 박정희를 욕하는 건 피땀 흘려 이룩한 산업화에 대한 경멸 아닌가.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이다. 너희 젊은것들이 뭘 아느냐. 우리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겨운 시대를 이겨냈는데!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했고,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했던 이분법의 시대였다. 모든 것을 선과 악의 구도로 보았다. 미국은 우방이고 중국은 적국이다. “성조기를 왜 들고 다니냐고 비판하는데, 간단해요. 미국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야. 미국이 아니었다면 우린 벌써 빨갱이 나라가 돼버렸을 거야. 여러분들 누리는 자유는 미국 덕분이란 사실을 알아야 해.”  

(광화문으로 가는 일곱 갈래길 P256)

 

◆ “나는 학도호국단장 한교훈이다.”

우리는 그의 위용에 눌려 죄지은 자처럼 눈을 내리깔아야 했다. 교실이 어항 속에 빠져버렸다. 교실에 놓인 화분조차 이파리가 시들해졌다. 산소마스크도 없이 학생들은 교실에서 숨 가쁘게 적막한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한교훈은 1학년 모든 교실을 돌았다고 한다. 모두 15개 반을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돌았으니, 그 작업을 완수하느라 이삼일은 걸렸으리라 추측한다. 우리들 머리 위로 한교훈의 근엄한 말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이 운동장이나 교실에서 해왔던 기나긴 훈시를 한교훈이 대신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계엄령이나 긴급조치 발령을 알리는 공영방송국 아나운서의 중저음과 비슷했다. 

(광화문으로 가는 일곱 갈래길 P286)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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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고원영
1958년 서울 출생. 한때 북촌에 상주한 저자는 600년 고도 서울의 골목길을 산책하면서 느낀 상념을 이 책에 썼다. 그 무렵 광화문 거리를 휩쓴 태극기부대의 실체를 목격했는데, ‘광화문으로 가는 일곱 갈레 길’은 정치적 차원을 넘어 노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일반화된 고독, 개인주의에 함몰된 휴머니즘을 소설의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고원영의 저서는 이밖에도 록(Rock)의 황금기와 저자의 청소년기를 돌아본 ‘별에게로의 망명(2023년), 6·25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기록한 저격능선 전투를 통해 한반도의 미래에 드리운 전쟁의 위험을 암시한 장편소설 '나뭇잎 묘지(2020년)', 베이비부머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해 현재를 성찰한 ‘골목길 카프카(2019년)’, 불교계 최대 종파인 조계종 비리를 설조 스님의 단식을 통해 들여다본 '그대가 아프니 밥을 굶는다(2018년)', 오랜 답사를 통해 우리나라 불교 순례길을 꼽아본 ‘저 절로 가는 길(2015년)’이 있다.
저자는 사진 분야에도 유별난 관심을 기울여 발표한 작품집 다수에 저자가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출판사소개

소설과 에세이, 사진집을 펴내는 1인 출판사다. 대표 고원영이 소설과 에세이를 쓰고, 사진을 찍기 때문에 그렇게 장르를 설정했다.
고원영이 처음부터 자기 책을 내려고 만든 출판사는 아니었다. 2012년 고등학교 동창의 소설책을 출간하려 출판사 신고확인증을 발부받았다.
2018년 조계종 개혁에 앞장선 설조 스님 단식 이야기를 쓴 고원영의 '그대가 아프니 밥을 굶는다'를 한 출판사에서 출간을 망설이다 포기했다.
그때 부득이 자비로 책을 만들면서 출판사 대표이며 저자라는 1인 2역을 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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