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늘 그를 현관 앞 층계의 첫 계단까지 배웅해 주었다. 말이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때에는, 그곳에 서서 기다렸다. 이미 작별 인사를 건넸고,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감싸는 바깥바람에, 목덜미 위로 드리운 잔 머리카락이 나풀거리고, 엉덩이 위에 늘어진 앞치마 끈이 흔들리며, 마치 깃발처럼 꼬이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해빙기 즈음, 마당의 나무들 껍질에서는 물기가 배어 나오고, 건물들 지붕 위로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문턱에 서 있다가, 작은 양산을 가져와서, 활짝 펴 들었다. 영롱한 비둘기색 비단 양산을 통과한 햇빛이 그녀의 하얀 피부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아래에서 따스한 열기를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팽팽하게 펼쳐진 물결무늬 비단 위로, 물방울이, 똑 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44면
엠마는, 평범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런 파리한 삶들이 추구하는 희귀한 이상에, 단번에 도달했음을 느끼고 내심 만족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라마르틴 시의 푸념 속으로 빠져들었고, 호수 위에서 들려오는 하프 소리, 백조들이 죽어 가며 부르는 모든 노래, 하늘로 올라가는 순수한 처녀들, 그리고 골짜기에서 울려오는 영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이런 것들에 싫증이 났고,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처음에는 타성에 젖어서, 나중에는 허영심으로 계속했고, 마침내 마음이 진정된 것을 느끼고 놀랐으니, 이마 위의 주름이 사라지듯 마음속 슬픔도 사라진 것이었다.
― 82~83면
엠마는, 집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하인들을 부리며 즐거워했으나, 곧 시골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는 예전의 수녀원을 그리워했다. 샤를르가 베르토를 처음 방문했을 무렵, 이미 인생에 대한 환상에서 충분히 벗어났다고 스스로 인정한 그녀는 이제 더 배울 것도 없고, 더 이상 느낄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에서 오는 불안, 아니 어쩌면 이 남자의 존재가 야기하는 거북함은, 장밋빛 날개를 가진 커다란 새처럼 무한히 열린 시(詩)의 하늘에서 맴돌듯 이제껏 어딘가 머물러 있던 그 황홀한 정열을 마침내 자신도 가지게 되었다고 믿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이 고요함이 그녀가 꿈꾸었던 행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 84면
그러나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이 평온을, 이 태연한 둔감함을, 자신이 그에게 안겨 주는 이 행복마저 원망했다.
― 87면
늘, 샤를르가 나가고 없을 때면, 코모드에 개켜 놓은 옷들 사이에 넣어 두었던 그것을 꺼내어 보고는 했다. 그 초록색 비단 시가 케이스를.
그녀는 그 물건을 유심히 살펴보고, 열어 보고, 말초리풀과 담배 향이 뒤섞여, 안감에 배어 있는 냄새를 맡기도 했다. 누구의 것이었을까?…… 분명 자작의 것이리라. 연인의 선물이었겠지. 자단 수틀에 매어 놓고,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감추어 놓은 이 앙증스러운 기구 위에서, 긴긴 시간, 동글게 컬을 말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채 수를 놓았으리라. 사랑의 숨결이 헝겊의 올 사이에 배었고, 한 땀 한 땀마다 희망이나 추억을 새겨 넣었으니 서로 얽힌 이 비단실들은 말없이 이어지는 정념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자작이, 어느 날 아침, 그것을 받아 지니고 갔을 것이다. 그것이 넓은 벽난로 선반 위, 꽃병들과 퐁파두르 시계 사이에 있을 때,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그녀는 지금 토트에 있다. 그런데 그는, 그는 파리에 있다, 지금. 저 멀리에! 파리는 어떤 곳일까? 얼마나 엄청난 이름인가! 음미하고 싶은 마음에, 나직이 그 이름을 되뇌어 본다. 그 이름은 대성당의 커다란 종이 울리듯 귓전에 울렸고, 【포마드 통 상표에 새겨진 이름까지도】 불꽃처럼 환하게 타오르며 그녀의 눈에 어른거렸다.
― 113면
엠마로서는, 자신이 그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사랑이란,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요란한 천둥소리 번개와 함께,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며, 하늘로부터 삶 위로 몰아친 폭풍과도 같은 것으로, 삶을 뒤엎어 버리고, 나뭇잎이 뜯겨 나가듯 의지를 뿌리째 뽑고 마음을 송두리째 심연 속으로 몰고 가는 것이리라. 그녀는, 집 테라스에서, 빗물받이 홈통이 막히면 빗물이 호수를 이룬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이렇게 안심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벽에 생긴 균열을 발견한 것이다.
― 193면
그녀가 그토록 슬프고 그토록 고요하고, 동시에 너무나 부드럽고 또 너무나 신
중해서, 그녀 곁에 다가가면 얼음장같이 싸늘한 매혹에 사로잡히고는 했는데, 그것은 마치 성당 안 대리석의 냉기와 섞인 꽃향기에 전율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다른 이들도 이 같은 매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약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대단한 여성이야, 군청에서 일하는 사람의 부인이 될 만도 하지.」
부르주아 부인들은 그녀의 검소함을, 환자들은 그녀의 예의 바름을,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비로움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는 탐욕, 분노,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올곧은 주름이 잡힌 로브는 뒤흔들린 마음을 감추고, 그토록 정숙해 보이는 입술은 마음의 번민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고 있었고, 고독을 열망했으며, 그것은 자유로이 그의 모습을 그려 보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눈앞에 보이면 깊고 길게 그리고 조용히 이어지던 이 쾌락이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엠마는 그의 발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러나 막상 그가 모습을 보이면, 감동은 사라지고, 오로지 엄청난 놀라움만 남았다가 이내 슬픔으로 끝나 버리고는 했다.
― 204면
그 어디론가, 아주 멀리, 도망가고 싶은 유혹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곧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심연이, 암흑에 가득 싸인 채 입을 벌렸다.
― 207면
그는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어 왔기에, 조금도 신선하지 않았다. 엠마는 모든 정부들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새로움의 매력은, 하나하나 벗겨져 나가는 옷가지처럼, 늘 같은 모양 같은 말뿐인, 한결같은 정념의 단조로움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경험이 많은 이 사내도, 비슷한 표현들 속에 담긴 감정의 차이를 구별해 내지 못했다. 방탕한 입술, 돈으로 사고파는 입술들이 그에게 똑같은 말들을 속삭였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이런 표현들이 순진무구하다고는 거의 믿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애정을 감춘 그런 과장된 말들은,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영혼의 충만함이 때로 가장 공허한 비유로는 표현될 수 없다는 듯이. 그 누구도, 결코, 자신의 욕망,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고통을 정확히 가늠하여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법이고, 인간
의 언어는 금이 간 냄비와 같아서, 그것을 두드려 별들을 감동시키고 싶어도, 곰이나 춤추게 할 정도의 멜로디밖에는 낼수가 없는 것이다.
― 347면
그리고 엠마는, 두 팔을 벌리고 거침없이 다가오던 로돌프의 대담성보다 자신에게 더 위험한, 이런 소심함 앞에서,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어떤 남자도 이렇게 아름다워 보인 적이 없었다. 그의 태도에서는 그윽한 순진함이 배어 나왔다. 그는 둥글게 위로 말린 섬세하고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있었다. 【보드라운 피부의 뺨이,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녀에 대한 욕망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리고 엠마는 거기에 입술을 대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느꼈다.】
― 423~424면
그는 마차를 따라다니며 짤막한 노래를 불렀다.
종종 화창한 날의 열기는
어린 소녀에게 사랑을 꿈꾸게 한다네
그러고는 새들과 태양 그리고 나뭇잎 이야기가 이어졌다.
― 4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