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일은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클래식 음악이 좋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나는 베토벤이 좋아” 또는 “라흐마니노프가 좋아” 또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완벽한 균형 감각과 시적 정취도 좋지만, 신고전주의 시기의 프로코피예프처럼 그 특징이 좀 더 날카롭고 기발하고 화성적인 불협화음 속에서 전개되는 게 더 좋아” 하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실제로 누구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는 말자.
1장 클래식 음악? 그거 별거 아니다, 28~29쪽
중세 콘셉트의 공간들이 르네상스 느낌의 음악을 쓰는 것도 당연하다. 진짜 중세음악을 쓰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적어도 재방문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집에 가는 길에 자살했을 테니까.
1장 클래식 음악? 그거 별거 아니다, 36~37쪽
여러분이 여기까지 읽은 것에서 무엇을 얻었건 간에(바로크 시대의 연대나 대위법의 정의를 기억하건 말건)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에는 아주 다양한 소리가 있고, 그것들을 공평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는, 심지어 그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중세음악을 싫어한다. 베토벤은 〈엘리제를 위하여〉를 싫어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차이콥스키는 브람스를 싫어했다. 그리고 줄리아드스쿨의 한 선생님은 1900년 이후에 작곡된 음악을 가르치지 않았다.
여러분도 싫은 것을 싫어할 권리가 있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이 음악 중 일부를 싫어해도 된다. 그래도 좋아하는 곡을 찾는 일을 멈추지는 말기를. (하지만 모차르트를 싫어한다면 나하고는 친구가 되기 어려울 것 같다.)
1장 클래식 음악? 그거 별거 아니다, 60~61쪽
언젠가 택시를 탔더니 기사가 내 바이올린을 보고 나더러 ‘재능’을 타고났고, ‘항상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가졌으니 복이 많다고 했다. 자신도 한때 바이올린을 배워보려고 했지만 악기를 들고 있는 게 너무 아프고 불편했다고, 바이올린이 그렇게 느껴지면 안 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피부가 벗겨진 손끝과 활을 잡는 손 검지의 굳은살, 그리고 턱받침이 닿는 목 부분에 진물이 흐르는 채로 딱지가 앉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연의 압박감을, 무대에서 토할 것 같은 어이없지만 벗어날 수 없는 공포를, 내 손가락이 연습한 지점에서 0.1밀리미터 어긋날 때마다 밀려드는 강렬한 자기혐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20퍼센트 팁을 주었다. 어떤 면에서 내가 복을 받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직업 만족도 같은 걸로 불평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그리고 이토록 어두운 자기 연민의 수렁으로 빠져본 적 없는 많은 음악가들은 아마 그의 말에 동의했을 것이다.
2장 별거 아닌 건 재능도 마찬가지, 68쪽
앞서 말했듯이 파가니니는 나쁜 놈이었다. 물론 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나쁜 놈이었던 게 확실하다. 증거는 그가 작곡한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스물네 곡의 카프리스와 여섯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그가 이런 곡을 작곡한 목표는 단 하나, 다른 사람들 말고 오직 자신만이 그런 일, 손가락을 뒤틀고 증식시키고 차원 이동시키는 일을 할 수 있다고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은 모두가 이 곡들을 연주해야 한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모두 경쟁심에 불타서 이런 일을 도전이라고 여기는 자아 비대증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2장 별거 아닌 건 재능도 마찬가지, 73쪽
사실 꼰대들은 옛날부터 클래식 음악에 이끌렸다. 그들은 왕, 왕자, 대공 등 신분 사회의 부유한 최상층이 천재 음악가들을 고용인으로 데리고 있던 바흐와 모차르트 시대 이래로 클래식 업계의 경제 구조에 필수 요소가 되었다. (이는 제화공, 요리사, 재단사도 마찬가지인데, 그들도 각 분야에서 천재인 경우가 많았다.)
3장 고상쟁이들의 바리케이트를 넘어, 94쪽
사실 클래식 음악계에서 꼰대들이 설친 세월만큼 클래식 음악가들은 그들에게서 해방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모차르트가 자신의 고용주였던 히에로니무스 콜로레도 대주교를 얼마나 싫어했는지는 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 중 장 운동 이야기가 중심이 아닌 편지들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는 대주교의 갑질과 인색함을 강력하게 성토하고, 어떤 편지에는 “대주교가 미칠 듯이 싫다”라고 쓰기까지 했다. 바흐 역시 자신의 후원자인 작센 바이마르의 빌헬름 에른스트 공작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바흐가 사임하려고 하자 공작이 그를 4주 동안 감옥에 가둔 일도 있다.
3장 고상쟁이들의 바리케이트를 넘어, 96쪽
그러니까 내 말의 핵심은 그런 꼰대들 때문에 물러서지 말라는 것이다. 클래식 ‘업계’는 그들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해도 클래식 음악은 그렇지 않다. 나처럼 전향한 많은 전직 꼰대들이 두 팔 벌려 여러분을 환영한다. 그리고 전향하지 않은 사람들, 사람들이 휴대폰 벨 소리 때문에 수천 명 앞에서 망신을 당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작곡가들이 우리에게 준 아름다움을 누릴 자격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지금 발휘하고 있는 흥미로운 창의력과 혁신까지도. 당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 당신 말이다.
3장 고상쟁이들의 바리케이트를 넘어, 100쪽
가수들은 호주의 하늘다람쥐처럼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면 정서와 행동에 문제가 생긴다. 내가 이제야 가수를 언급하는 일이 이미 그들의 자존심을 해쳤다.
오페라 가수와 비교하면 바이올리니스트는 친구가 감전되는 것을 본 이후로 스포트라이트를 겁내는 조용한 미어캣 같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찬사를 열망하는 이유가 자기 노력이 인정받을 만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가수들은 동독 노인들이 옷을 벗고 일광욕을 하듯 찬사를 즐긴다. 그들은 인사를 할 때나 어디 들어갈 때나 상관없이 항상 “전데요?” 하고 말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4장 지휘자들은 개자식들이다, 117쪽
베이시스트가 교실 뒷자리에 앉는 느긋한 아이라면, 바이올리니스트는 운동장에서는 운동 실력을 뽐내고 교실에서는 맨 앞자리에 앉는 공붓벌레다. 이들은 선생님이 자기 이름을 불러 주기만을 바란다. 언제나 자신의 대답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려고 자기소개서를 쓴다면 자신의 장점으로 성실성, 디테일에 대한 세심함, 목적의식을 꼽을 것이다. 단점으로는 경쟁심, 자기중심주의, 집착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들은 이것을 “때로 저는 저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합니다”와 같이 재수 없는 문장으로 표현할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4장 지휘자들은 개자식들이다, 112~113쪽
수많은 인터넷 게시글, 라디오 사연, 신문 기사들에 따르면, 줄리아드의 유서 깊은 전통 가운데 하나는 경쟁자의 손가락과 꿈을 결딴내기 위해 학교 피아노 건반에 면도날을 숨기는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줄리아드는 음악원 세계에서 흔히 ‘제일야드Jailyard’라고 불린다.
그래서 나는 줄리아드에 입학한 뒤로 얼마간 피아노를 볼 때마다 플래시로 틈새를 살펴보았다.
6장 줄리아드 감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60쪽
작곡 형식의 진행 방식을 알아두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방광이다. 자신이 듣는 곡의 ‘형태’를 모르면 끝날 때까지 참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7장 무슨 형식이 이렇게 복잡하죠?, 190쪽
나는 라벨의 〈볼레로〉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대개 동생의 전 남자 친구들)이 원래의 불안정한 성격 때문에 〈볼레로〉에 끌린 건지 〈볼레로〉를 너무 많이 들어서 성격이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여러분이 어느 날 외딴 오두막에 가게 됐는데 여러분의 동행이 갑자기 레코드플레이어에 이 음악을 건다면 장작을 구한다고 말하고 가까운 곰 굴로 피하기 바란다. 그쪽이 차라리 더 안전하다.
8장 저주받은 클래식,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