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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꿈속이었다. 아무래도 연극무대를 보는 상황인 듯하다. 배우는 모두 고등학생이다. 보자마자 내가 담임을 맡은 2학년 4반 학생들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공연 작품은 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 같다. 자세히 보니 학생들에게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끈이 달렸다. 어색하게 무대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자기 의지로 움직이는 몸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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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가타리기는 깨달았다. 학교란 아이를 지키는 성역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사실을……. 여기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 위해서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행운이나 다른 사람보다 빨리 위험을 감지하는 직감, 또는 자신의 몸을 보호할 만한 무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갖춘 능력은 직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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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미에게 있어서 신코 마치다의 교사와 학생 대부분은 그저 장기짝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방법으로 조종할지는 신경 써야 하지만. 이 말인즉슨 그 말들은 어떻게든 조종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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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미는 학창시절에 읽은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씨 451』을 떠올렸다. 유명한 머리말인 ‘It was pleasure to burn’은 일본어로 ‘불꽃은 즐거웠다’라고 멋지게 번역되었다. 옛날에 눈앞에서 본 새하얀 불기둥이 선명하게 뇌리에 떠오른다. 불꽃에 휩싸여 미친 듯이 양손을 휘저어대는 그림자. 커다란 소리를 내며 드럼통이 넘어진다. 불꽃은 오렌지색으로 바뀌었다. 그 집을 둘러싼 불기둥은 무슨 색을 띨까? 그 광경을 이 눈으로 보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아침 뉴스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어딘가에서 「모리타트」의 선율이 들려온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휘파람으로 즐겁게 따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