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레 요코는 이번 책에서 그가 얼마나 다양하고 사소한 즐거움에 호기심을 갖고 탐닉하는지 풀어내며 취향이란 전 생애에 걸쳐 다져진 것임을 알린다. 또한, 넘쳐나는 물건들에 둘러싸였던 삶에서 벗어나 드디어 오래된 물품을 버리고 비우는 행위를 통해 비록 추억의 물건은 사라지지만 기억과 애정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새롭게 얻은 이 지혜는, 그가 22년 넘게 함께한 고양이와 작별하고 27년간 지내왔던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담백하게 드러난다.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는 취향의 긴 역사 속에서 작가가 집요하게 수집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확고하게 완성된 삶을 누리며 그것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비우고 있음을 기록한 책이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카모메 식당〉과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취향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며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저자 무레 요코는 이들 책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소소하고도 농도 짙은 취향에 빠져들게 만들며, ‘나도 취향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독자를 세뇌하는 이 ‘취향의 힘’은 그가 2023년 첫 번째로 발간한 신간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취향의 시작은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남의 집 냉장고 엿보기’부터였다. 저 부엌의, 저 문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문을 열고 안에 들어있는 걸 보고 싶었다는 저자. 그래서 친구 집에 가면 항상 냉장고 문을 열고 확인했다는 대목에서 저자의 독특한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뜨개질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에서도 저자의 오랜 취향이 드러난다.
책 중간에 어머니가 들려주는 ‘털실 푸는 사람’에 관한 일화가 등장하는데, 엉망으로 엉켜 있는 실을 몇 시간에 걸쳐 공들여 풀어낸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상징한다.
그 밖에도 탈 플라스틱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조금은 불편한 삶을 선택하고, 시행착오 끝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완성하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서 듣고, 관심 가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해두었다가 시간 내서 감상하고, 고양이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과 음악, 게임 영상까지 찾아보며 유튜브를 즐기는 등,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왕성한 작가의 다양한 취향이 기록돼 있다.
이 다양한 취향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취향 있는 삶에 관한 작가의 태도와 소중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멈추지 않는 탐색과 호기심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삶, 그것이 바로 나이 들어서도 ‘나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인 셈이다.
추억은 간직하되 불필요한 것은 정리하는, 비우는 삶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가 27년간 살았던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거처로 옮기면서 추억이 깃든 물건들과 이별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특히 2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온 고양이와의 이별은 잔잔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위로를 선사한다.
작가가 녹화해두었다가 나중에 보게 되는 캐나다 방송 프로그램 ‘행복한 삶을 위한 다운사이징’에서는 추억과 애정은 간직하되 불필요한 물건들은 미련 없이 정리하는 비움의 삶이 그려진다. 작가는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 담긴 물건에 둘러싸여 있고 싶은 것이다’라는 데 공감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유품을 처분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애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비움의 실천을 통해 완성되는 자기만의 담백한 삶.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에서는 비우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비로소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임을 에둘러 전하고 있다.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으로 완성된 컬러풀한 일상, 시간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추억의 힘을 믿으며 비우는 삶. 이것이 무레 요코가 이번 신간에서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