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수록된 섬 이야기는 전근대 ‘기록 속의 섬’을 정리하고, 여기에 근·현대 섬주민들에게 전해 오는 ‘옛 문서와 구술자료’, 그리고 21세기 섬마을에 전승되고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 산’을 통해 서술했다. 최근 섬은 연육·연도교 건설, 인구 감소,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우리는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가? 섬의 공간·사람· 문화를 장기지속시키는 방안은 무엇인가를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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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로 접어들면 동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했다. 명나라가 농민반란으로 인해 재정위기를 맞았고, 여진족을 통합한 청나라가 1627년과 1636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했다. 이에 조선의 왕실은 강화도로 피난을 갔고, 국왕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을 했으나, 결국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하고 전쟁이 끝났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금산정책이 급격히 붕괴되었다. 전쟁 으로 인해 산림이 파괴되고, 전후 복구과정에서 목재를 남벌했으며, 산림에 대한 사적 점유가 확대되었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유이민들의 화전火田이 성행했다. 결국 조선의 산림제도에 대한 재정비가 단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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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부는 왜 백성들의 도서 거주를 통제했을까? 그 이유는 끊임없이 출몰하는 왜구 때문이었다. 왜구는 여말선초 이래로 우리나라 해역에 출몰하여 미역을 채취하거나 선박을 건조했으며, 심지어 섬주민들을 약탈했다. 일례로 1396년(태조 5)에 수군만호가 진도珍島에 출몰한 왜구 10여 명을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면, 1406년(태종 6) 암태도에 침입한 왜선을 염부鹽夫들이 격퇴한 일이 있었고, 1408년(태종 8)에 왜선 9척이 암태도 주민들을 노략질한 사건이 일어났다. 또 1409년(태종 9)에 진도와 해남, 강진 등지로 침입한 왜구가 우리나라 병졸들을 생포하여 도주한 사건이 있었고, 1413년(태종 13)에는 왜인들이 흑산도 해역에 출몰하여 미역을 약탈했다. 이렇듯 왜구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자, 중앙정부는 아예 섬에서 백성들의 거주를 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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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라는 단어를 보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고교시절에 암기했던 향약의 4대 강목이 생각나는가? 2012년 서울시는 ‘사람 사는 마을, 사람 사는 재미’를 표방하면서 ‘마을공동체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이후 서울시 한복판에 마을공동체 커뮤니티 공간이 곳곳에 들어섰다. 예컨대 ‘마을미디어’, ‘마을북카페’, ‘마을예술창작소’, ‘마을기업’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어 시흥시 마을교육공동체, 세종시 마을공동체, 광주광역시 푸른마을공동체 등이 활동 중에 있다. 그런가 하면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 부르는 대학생들이 일명 ‘밥솥 모임’을 결성하여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스스로 안식처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전통과 현대에 장기 지속하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호혜와 협동, 소위 ‘오래된 미래’라 부르는 마을공동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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