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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노비의 삶


  • ISBN-13
    979-11-6684-374-7 (94910)
  • 출판사 / 임프린트
    세창출판사 / 세창출판사
  • 정가
    14,5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2-02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김영나
  • 번역
    -
  • 메인주제어
    역사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역사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00 mm, 172 Page

책소개

전통생활사총서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하여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내용을 재현하는 만큼 각 지역의 살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매년 해당 분야 전문가를 집필자로 선정하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 본 총서를 통해 생활사, 미시사, 신문화사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이 글의 주인공인 서원노비는 조선 양반의 주요 활동 기반이자 사족 공론의 중심지였던 서원에 속한 노비로, 1550년 소수서원이 사액되면서 그 존재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서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논의를 주도했던 사람들이나 제향자의 내·외손 및 문인들이 자신의 노비를 기부하였고, 사액서원의 경우에는 국가나 관청에서 노비를 지원해 주었다. 그렇지만 지방관이 교체되면 다시 관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노비가 다시 환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원에서는 상언(上言) 등의 문서를 올려서 서원 소속의 노비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목차

_차 례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서원노비는 어떤 존재일까? 

 

1. 서원노비와 관련된 자료 및 노비의 규모

 

2. 서원노비는 어디에서 살았을까?

거주한 지역

구체적인 거주 장소

 

3. 서원노비는 무슨 일을 했을까?

신역 및 신공 담당

신역이나 신공이 면제되는 경우

 

4. 서원노비의 혼인과 가족은 어떠했을까?

신분의 법적인 변화

서원노비의 배우자와 자녀의 성격

노비 가계의 지속성

 

나오는 말: 서원노비는 공노비와 사노비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

주석 

참고문헌

본문인용

조선의 신분제는 양인과 천인으로 구성된 양천제(良賤制)였다. 신분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고, 생활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신분상으로 양인이면서 사회 통념적으로 가장 높은 계층인 양반(兩班)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가장 최하층인 천인 중 노비에 대해서는 단지 국가나 양반에 예속되어 있는 존재이자 차별받고 천대받는 존재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국가와 양반에게는 노비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고대 사회에서는 전쟁 포로나 죄인이 노비가 되었으나, 대를 이어서 세습되었고, 하나의 신분으로 자리 잡았다.

_9쪽

 

이처럼 각 서원의 노비 수를 살펴본 결과, 대체로 17세기보다 18세기에 증가하였고, 심지어 수백 명이 있는 서원들도 있었다. 18세기에 서원노비가 증가한 원인은 국가나 다른 기관 소속 노비들이 서원에 소속되었거나 서원에서 노비를 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서원노비는 혼인으로 태어난 자녀를 통해서도 늘어났다. 18세기에 가장 많은 노비가 있었다가 19세기를 지나면서 줄어들었는데, 서원에 따라 줄어드는 시기가 조금씩 달랐다. 19세기에 서원의 노비 수가 줄어든 요인은 법적으로는 1801년의 공노비 해방 및 노비의 신분 상승, 노비제의 변화와 연관이 있고, 지역적으로는 서원의 영향력이 차츰 약해졌기 때문이다.

_26쪽

 

서원노비의 경우, 서원에 사는 노비는 거의 없었고, 서원 바로 옆에 있는 서원촌인 ‘원저(院底)’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거주하면 국가에 대한 의무인 각종 잡역과 환곡 등을 면제받는 대신에 서원에 경제적인 부담을 져야 했다. 원저에 사는 노비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서원 안의 각종 일을 하였고, 서원 근처에 있는 서원 소유의 땅이나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물 중 일부를 서원에 납부하였다. 또한 원저 이외의 지역에 사는 노비들도 많았다.

_32쪽

 

정리하면 서원노비의 신공을 면제해 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 중 속량은 반드시 서원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였고,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 신역이나 신공이 제외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서원에 무엇인가를 바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원에 서는 서원노비에게 신공을 거두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이들의 가족이나 친척을 차지로 사용하여 신공 대상자들의 신공을 거두었고, 신공량을 채우지 못하면 차지 역시 공동 책임을 지게 하였다. 또한 속량이나 제공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서원에 손해가 되지 않게 하였다.

_89쪽

 

서원노비의 가계는 사노비보다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서원노비는 상속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인이 바뀌어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거나 가족끼리 흩어지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이다. 또한 서원노비는 가족별로 파악되었다. 속량이나 매매를 할 때에도 가족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신역이나 신공은 개별적으로 담당하였지만 차지나 시정을 통해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의무를 지기도 하였다. 한 가족이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도 많았다. 혼인 또한 부모의 혼인 상대에 따라 자녀의 혼인 상대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가계가 다른 공·사노비보다 많았다.

_162-163쪽

서평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또 양반들의 삶 역시도, 중앙정치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가 편찬한 관찬 기록에서는 이들의 일상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그러한 식자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의 이야기도 남겨 왔기에, 우리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원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사립학교였던 서원의 교육이 공립학교였던 향교보다 관료 배출에 효과적이었다든지, 여러 역할을 하며 지방 사회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했던 서원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지방 양반층들의 이해에 관계되는 집단으로 변모했다든지 하는 것들은 다 교과서에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서원의 살림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조선시대에 관청이나 사족 집안 대부분이 그랬듯이, 서원 역시도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에는 노비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서원의 궂은 일도 노비에 의해서 행해졌으며, 서원의 자산을 증식하는 데도 노비의 역할이 컸을 뿐만 아니라, 노비 그 자신이 서원의 자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서원의 노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그들은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사람들과 가정을 꾸리고 살아갔을까? 그리고 그들은 과연 공노비나 사노비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달랐을까? 이 책은 여러 서원의 노비 관련 문서들을 통해서 그러한 노비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서원에 속했던 노비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몰랐던 서원의 모습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기획 : 한국국학진흥원(권진호, 김형수, 이남옥, 최은주, 나영훈, 조인희, 권지은)
한국국학진흥원은 ‘국학진흥을 통한 글로컬 시대의 인류문화 창달에 기여’라는 목표 아래 전통 기록유산을 중심으로 민간 소장 국학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보존과 연구 활용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학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통시대 고문헌과 유교 책판 등의 기록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그런 기록유산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한국적 스토리텔링 소재를 발굴하여 콘텐츠 제작 현장에 제공하는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선현들의 지혜를 전승하고, 한문교육원과 유교문화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자 : 김영나
경북대학교 사학과 외래교수
경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경상도 서원노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 및 지역사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 『후조당 종가의 가문 세우기』(공저), 「18세기 영주 濟民樓 소속 노비의 모습」, 「16-18세기 안동지역 사족의 虎溪 書院 운영」, 「18세기 도산서원(陶山書院) 노비의 혼인과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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