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혁신, 협력, 진화 법칙
인간과 문명의 번영을 예측하는 보편 이론의 탄생
런던정경대의 경제심리학자 마이클 무투크리슈나가 인간과 역사의 방향을 궁극적으로 설명하는 통일 이론을 구축했다. 그는 대담하게도 자신의 이론을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이라고 명명한다.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은 에너지, 협력, 혁신, 진화라는 ‘네 가지 삶의 법칙’을 토대로 문화와 유전자의 작용을 통합한 거대한 이론 틀이다. 이 틀만으로 우리는 인간의 기원과 찬란한 문명의 역사를 이해하고 오늘날 위기에 빠진 우리 문명을 구원할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모두가 알듯이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 에너지 부족, 기후 위기, 불평등의 심화, 이민자의 유입으로 갈등과 폭력적 전쟁이 증가하고 있다. 너무 먼 얘기라고? 당신이 사용하는 가스와 전기 요금은 계속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민주주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해결책은 삶의 법칙에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다음 세대의 에너지, 즉 핵융합을 상용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은 다시 협력하고, 혁신을 일으키고, 자연 선택으로 걸러진 최선의 믿음을 통해 창의력을 폭발시켜야 한다.
어떻게 협력, 혁신, 진화를 추동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이민 정책 개선, 세금 제도 개혁, 프로그래밍 정치 도입, 스타트업 도시 구축, 인터넷 공론장 개선, 공교육 정책에서 인공 지능 활용까지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 전방위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을 제안한다. 멸망이냐 번영이냐.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세기에 우리는 서 있다. 번영을 원한다면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을 사용하라.
인간과 문명을 궁극적으로 설명하는 거대한 이론 틀의 구축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
인간과 문명의 번영을 예측하는 보편 이론, 즉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저자의 경험해서 출발해 보자. 저자는 어떻게 통일 이론을 구축할 수 있었는가. 왜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가.
스리랑카에서 태어난 마이클 무투크리슈나는 내전으로 폭력이 일상이 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쿠데타로 국회의사당을 감싼 군대와 총격, 약탈을 목격하며 숨죽였다. 반면 보츠와나에서 살았을 때는 자연의 장엄함과 화려함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삶을 살았다. 런던에서 살 때는 평범한 영국 시민이 저지른 지하철 테러, 버스 폭탄 테러에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아프리카, 영국, 호주, 미국을 떠돌며 살았던 무투크리슈나는 가슴 속 깊이 이런 의문을 품었다.
“왜 보츠와나가 남아프리카공화국보다 부패가 적고 여러 지표에서 더 성공적일까? 왜 파푸아뉴기니는 호주보다 훨씬 가난하고 불안정할까? 호주, 캐나다, 미국, 유럽 국가의 다문화 및 이민 정책의 차이는 무엇일까?”(17쪽) 무투크리슈나는 이런 차이를 이해하고 싶어 미적분학, 이산수학, 기계 학습뿐만 아니라 경제학, 정치학, 생물학, 철학, 심리학 등 다양한 과목을 수강했다. 인간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해야만 시스템 차원의 궁극적 설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화생물학과 문화적 진화를 연구하는 연구자 그룹과도 협업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진화생물학과 통계 및 데이터과학, 경제학, 심리학을 융합하여 공부한 뒤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에서 연구와 실험에 몰두했다. 지금은 런던정경대학교에서 경제심리학 최연소 종신교수이자 발달경제학 및 데이터과학 연구원으로 재직한다.
무투크리슈나는 이런 탈분과적인 융합 연구를 통해 ‘인간사회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 인간 행동과 사회 변화에 대한 주기율표,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누구를 믿고 누구에게 배울지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조직과 사회가 규범과 기술에서 어떻게 새로운 혁신을 발견하는지, 다른 사람을 돕거나 해치고 누가 ‘우리’이고 누가 ‘그들’인지 결정하는, 우리 행동을 형성하는 규칙을 발견했다. 무투크리슈나는 이 이론을 사용해 인간의 기원과 성공을 회고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이 가진 결정적 잠재력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하고 가장 창의적인 우리 자신의 미래를 더 밝게 만드는 데 있다.
우리의 기원 그리고 번영과 연결되는 삶의 법칙을 살펴보자.
에너지, 혁신, 협력, 진화라는 네 가지 근본 법칙
인간에 대한 가장 강력한 거대 서사
《총, 균, 쇠》나《사피엔스》같은 거대 서사 책은 토티, 즉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것The One Thing That Explains Everything, TOTTEE’이라는 장르에 속한다. 토티는 상상력 한 가지로, 지리 한 가지로, 문화 한 가지로, 제도 한 가지로 인간의 모든 역사를 설명한다. 무투크리슈나는 이런 토티 책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진실에 가깝지는 않다고 본다. 토티는 시스템 차원의 궁극적인 설명을 하지 못한다. 현실 세계에서, 특히 이론에서 실제 응용으로 넘어갈 때는 여러 가지 힘과 그 힘 사이의 관계를 반드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은 모든 생명, 특히 인간을 형성한 수많은 힘을 통합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 이론적 틀에는 먼저 에너지, 혁신, 협력, 진화라는 네 가지 ‘삶의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이 인간의 탄생과 이 지구상에서의 성공을 만든 핵심이다. 에너지, 혁신, 협력, 진화는 서로 연결되는 고리로서 계속해서 맞물려 인간 본성과 문화의 형성을 이끌었다. 삶의 법칙이 주조해 낸 인간 본성과 문화, 그리고 이 본성과 문화의 공진화가 다시 삶의 법칙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것이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이다.
첫 번째 삶의 법칙은 에너지이다. “모든 생명체의 총량과 복잡성을 결정하는 궁극적 한계는 에너지의 가용성이다.” 에너지는 생명에게 움직임을 부여했다. 생명체는 가능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제어해서 여러 자원을 쓰며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에너지가 많을수록 더 많은 자원에 접근하기 위한 움직임도 증가한다.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에너지를 얻는 방식의 변화에 있다. 한 생명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기 시작하면서 진핵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바로 인간의 시초다. 인간의 발흥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바로 에너지의 발견이다. 이미 죽은 생명체, 고밀도의 태양 에너지 저장소, 다시 말해 석탄과 석유를 발견하면서 인간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두 번째 삶의 법칙은 혁신이다. 생명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포획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새롭게 혁신한다. 이 혁신은 광합성부터 고기나 우유를 소화하는 능력 같은 생물학적 변화, 농업이나 내연기관 같은 기술, 기업이나 국가 같은 사회적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생물학적, 기술적, 사회적 혁신은 생명체가 더 많은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을 늘린다.
세 번째 삶의 법칙은 협력이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하고 몇몇 조력자가 도와주면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에너지를 포집하기 위해 도약하고 협력할 수 있다. 세포는 서로 결합해 복잡한 생물체로 뭉친다. 지역은 국가로 통합되며, 기업은 계약, 합병, 인수를 통해 커진다. 새로운 자원을 발견하거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더 많은 에너지를 창출하는 혁신은 ‘가능성의 공간the space of the possible’을 확장한다. 에너지를 더 많이 발견할수록 이 공간은 더 커진다. 또 이런 공간이 클수록 협력이 이루어지는 규모도 커진다. 더 큰 공간은 더 큰 동물과 더 큰 국가를 가능하게 한다. 이 큰 단위의 협력이 우리가 성공한 중요한 요소였다.
네 번째 삶의 법칙은 진화다. 에너지 활용, 혁신 방식, 협력 기제는 대체로 지능적으로 설계된 해결책이 아니라 결국 성공이 실패를 능가하는 수백만 번의 시도의 산물이다. 이러한 에너지, 혁신, 협력, 진화라는 네 가지 법칙은 서로 연결된 네 가지 방식으로서 우리의 지리, 제도, 문화,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설명한다. 삶의 법칙은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다. “삶의 법칙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삶의 법칙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인간 독특성, 지능, 협력, 창의력의 비밀
마이클 무투크리슈나는 당면한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독특성, 인간 삶의 가장 특별한 측면을 삶의 법칙과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으로 해부한다. 먼저 인간을 이해해야 우리가 어느 수준에서 어떻게 개입하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로 열린 가능성의 공간에서 우리의 혁신, 협력, 진화는 우리 인간을 어떻게 이토록 독특하게 만들 수 있었는가? 또 우리는 혁신, 협력, 진화, 에너지 법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삶의 법칙은 우리 유전자에 영향을 미쳤지만 마찬가지로 문화라는 독특한 진화적 추동력을 만들었다. 유전자와 문화는 공진화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부모에게서 유전적 유산을 물려받는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생존, 번성, 번식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쾌감을 느끼고, 우리를 해치거나 죽이거나 혈통을 끊을 수 있는 것에는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진화는 인간에게 아주 유용한 정보원을 주었다. 바로 그것이 문화적 학습이다. 문화적 학습, 그리고 문화 자체의 진화인 문화적 진화는 인간 번영의 핵심이다. 뇌라는 하드웨어를 채운 것은 문화와 사회적 학습이라는 소프트웨어이다. 우리의 문화적 패키지는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삶에 필수적이지만 대부분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적 패키지, 이토록 놀랍고도 정보 밀도가 높은 유산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내재적으로 더 정교한 존재로 혹은 덜 정교한 존재로 판단하게 된다. 이는 인간 본성을 문화적으로 전수된 기술에 기반해 사고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주변 사람과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이 정신적 소프트웨어를 만든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문화적 패키지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일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업이다.
이런 전제를 두고 무투크리슈나는 인간사회과학에서 아주 논쟁적인 주제를 과학자의 양심을 걸고 과감하게 다룬다. 그것은 인간의 지능이다. 문명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 결국 인간의 지성이기 때문에 지능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지능에는 사람마다 집단마다 차이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과연 지능이란 무엇인가? 지능은 유전자의 산물인가? 인종 간 지능 차이, 성별 지능 차이가 실존하는 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무투크리슈나는 단호하게 우리는 혁신과 협력을 통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것은 개인의 지능 덕분도, 남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유전적 천재들 덕분도 아니라고 말한다. 혁신은 사람이 모여 서로 배우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집단적 두뇌의 결과다. 우리 삶에서 가장 단순한 사물조차도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지식의 산물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여러 문화에서 차용되고 재결합된 것이다. 여기서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의 핵심은 삶의 법칙이 ‘문화-집단 선택’을 추동한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문화가 유전자처럼 선택을 받는다는 논리다.
문화-집단 선택을 통해 무투크리슈나는 인간의 대뇌화, 두발걷기, 언어의 기원, 협력을 유지하는 기제, 종교의 진화, 사회 및 국가, 제도의 진화와 진보 등 우리가 아는 오늘날 인간의 지성과 문명을 설명하며 인간 독특성의 전모를 밝혀낸다. 결국 우리가 더 똑똑해지려면 삶의 법칙을 통해 문화적 진화의 진화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에너지 천장을 뛰어넘고 인류의 진보와 정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주지해야 할 사실은 삶의 법칙에서 토대가 되는 것은 에너지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건 당연한 말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는 너무나 당연해서 실상 우리는 에너지에 대해 사고하는 것을 잊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인식하지 않듯이 말이다. 더 이상은 그럴 수 없다. 화석 연료의 한계가 너무나 명확해져서 에너지 요금이 계속 오르고 있고 이런 흐름은 우리의 혁신을 저해하고, 자발적 협력을 해치고, 진화 가능성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 화석 연료가 창출한 가능성의 공간이 축소되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무투크리슈나는 EROI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EROI는 ‘투자 대비 에너지 수익률’이라는 뜻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지에 대한 비율을 나타내며, 잉여 에너지가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알려 주는 지표이다. 1919년에는 석유 1배럴로 최소 1000배럴을 더 발견했다. 1950년에는 석유 1배럴로 100배럴을 발견했다. 2010년에는 석유 1배럴로 5배럴을 발견한다. 이런 에너지 가용성의 급격한 축소는 혁신 역량을 꺼뜨리고, 협력보다 배신을 이끈다.
산업혁명 이후 발명된 우리의 경제 체제는 거의 전적으로 효율성 혁신, 즉 적은 에너지로 더 많은 일을 하는 방법(혁신 법칙)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잉여 에너지의 총가용량(에너지 법칙)은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에너지 천장이 무너지고 있다. 성장의 시대는 끝났고 에너지 확장이 필요하지 않은 기술 혁신으로도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생산성의 대침체를 겪고 있다. 계속 오르는 전기 요금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EROI가 계속 감소함에 따라 과거의 멜서스적 디스토피아에 갇혀 영원한 제로섬 갈등 속에 산다. 현재와 같이 다양한 이방인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회에서 협력을 이끌어 내는
충분히 크고 접근 가능한 에너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미래에서 우리는 가족끼리 친구끼리만 돕는 소규모 협력 집단으로 양극화되며 이념적 선을 넘나들며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입장에 고착될 것이다. 이런 미래에서 우리는 점점 더 격화되는 갈등 속에서 서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해답이 있다. 당연히 궁극적 해결책은 다음 단계의 에너지를 상용화하는 방법이다. 바로 핵융합 에너지다. 핵융합의 EROI를 높이려면 많은 혁신이 필요하지만 핵융합 연료의 미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핵융합에 성공한다면 바다를 담수화하여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새로운 강과 바다를 만들고, 소행성을 채굴해 희귀 자원을 획득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핵융합은 언제쯤 가능할까.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바로 혁신 법칙, 협력 법칙, 진화 법칙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우리의 창의력, 우리의 집단적 두뇌가 활발히 활동하도록 해 마침내 인류의 집단적 지성으로 핵융합에 성공하는 것이다.
마이클 무투크리슈나가 제안하는 전방위적 정책은 매우 급진적이다. 다양성이 만드는 창의력은 증진하면서도 서로를 적대하게 되는 역설을 해결하는 최적의 다문화주의, 문화적 동화를 위한 정책 설계하기, 정치 시스템에 역동성과 활력을 불어넣는 투표 제도 개혁하기, 도시에 창의적인 기업 문화를 부여하는 스타트업 도시 만들기,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프로그래밍 정치 도입하기, 공정한 자본주의를 가로막고 불로소득 계급을 만드는 비생산적인 경제 주체에 과세하기, 창의력을 폭발시키기 위해 무제한의 표현의 자유 증진하기, 능력주의와 능력에 대한 보상을 개혁하기, 인터넷을 진정한 사회적 학습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개입하기, 소수 집단 우대 조치 같은 근시안적 정책을 넘어 공교육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등 실로 어마어마하고 정치적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논쟁을 촉발하는 과감한 정책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세금 문제를 보자. “불로소득에 따른 세대 간 부의 이전을 통제하는 일은 한 사회의 건강과 지속적인 혁신 능력을 위해 중요하다. 각 세대를 위한 공정한 게임을 만들려면 경쟁의 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산 자를 위해 죽은 자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394쪽) 이런 문장만 보면 좌파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무투크리슈나는 상속세는 노후에 자녀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욕구로서의 생산 동기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책정해야 한다고 다시 스스로 반론한다. 또한 상속세를 통해 부가 더 이상 그 부를 창출한 사람의 직접 통제하에 있지 않다고 해도, 현재의 에너지와 생산에 대한 불공평한 통제권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선출되지 않은 무책임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줄 위험을 지적한다. 우리 정부가 이 새로운 자금을 더 많은 드론, 미사일, 측근을 위한 정실 계약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과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할지도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무투크리슈나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도입될 수 없는, 땅에 대한 과세, 지대세를 주장한다. “지대세는 비생산적인 돈에 부과되는 세금의 일종이다. 이는 특별히 사회주의적인 입장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공고히 할 것이라며 지대세에 반대했다. 지대세는 편취된 부를 재분배할 수 있지만 돈의 생산적인 사용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재분배는 목표가 아니라 부산물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세대마다 에너지와 자원의 생산적 사용을 장려하는,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공정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408쪽)
우리가 이런 제도가 있는 사회를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왜냐면 우리는 노예제를 종식하고 여성과 모든 종류의 소수자를 존중하는 사회로 끌어올린 것처럼 오늘날의 사회를 다시 하나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정책을 그저 공상이나 급진으로 보지 않고, 집단적 두뇌를 모아 세심히 따져봄으로써 다듬고 보완하여 실제로 도입해 “여러 세대에 걸친 구조적 불평등의 유리 천장을 깨고,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거버넌스 구조를 발전시키고, 창조적 폭발을 일으키고, 미래 세대를 위한 등불이 되는 최고의 자아가 될 수 있다.”(495쪽) 그러니까 무투크리슈나는 공상적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 대한 이론이라는 인간 과학을 토대로 상상 가능한 미래를 제시하는 행동과학자이다. 어떤 미래가 오느냐는 우리의 단호한 결단에 있다. 이 책은 모든 인간이 읽어야 한다. “삶의 법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