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같지 않은 엄마? 작고 여린 듯싶지만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엄마
이 동화의 원고를 처음 읽을 때, 그린이의 엄마를 보면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마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다. 미안한 표현이 될 수 있겠는데 ‘엄마 같지 않은 엄마’였다. 대개 ‘엄마’라고 하면 우리는 강인한 이미지,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내는 사람을 떠올리곤 한다. 무섭고 두려운 것 앞에서도 아이를 위해서는 아닌 척, 강한 척을 해야 하는 게 엄마의 숙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어쨌거나 우리는 엄마라는 그늘 아래에서 그 덕을 보고 자라난 존재들이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모름지기 강해야 한다는 당위를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강할까? 어떤 일에도 잘 견디고, 대처 능력이 뛰어나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건지 물음을 던진다면 다양한 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린이의 엄마는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그린이와 자신을 지켜 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비록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엄마는 아니지만 그린이의 말 한마디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고 엄마의 따스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게 꽉 안아 주는 엄마였다. 덕분에 그린이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며 조금씩 성장해 간다. 아이에게 어떠한 위험도 닥치지 않도록 앞길을 열어 주는 것보다 정말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했다. 세상 모든 관계에서 일방적인 것은 없다.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니 부모나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걸 해결해 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이가 하나의 주체로서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기다려 주는 게 어떨까. 그린이의 엄마는 겉보기에 보통의 엄마들처럼 강인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린이와 엄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관계의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서로에게 단단한 기둥이 되어 줄 그런 힘 말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각 가정의 자녀 수가 줄었고, 아이의 독립이 늦어지면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는 어른이 아이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기도 하고, 거꾸로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렇게 요즘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관계의 한 부분이 그린이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오버랩되었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독자들이 이 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내가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면 참 좋겠다.
초록의 생명력으로 숲이 주는 치유와 포용의 힘을 그려 내는 아이
흔치 않은 주인공 이름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떠올리는 순간, 책의 주요한 배경이 숲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숲은 초록을 연상시키고, 초록을 영어로 표현하면 그린(green)이니까. 그린이가 숲과 만나고, 친구가 되고, 숲으로 걸어 들어가 무언가를 느끼고 치유받는 과정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불멍, 물멍처럼 숲멍을 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딴생각도 해 보았다. 숲속을 걷고 있으면 초록이 만들어 내는 향기를 들이마시고 산새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 바스락대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린이의 이름은 읽을수록 초록의 의미만 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숲에서 청설모와 우연히 만난 뒤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즐거운 만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후에도 그린이는 숲에서 마주하는 단상과 느낌을 머릿속으로, 종이 위로 계속해서 그려 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단단해 보이는 그린이가 퍽 대견하면서도 이 아이의 어깨가 무겁게 느껴져 안타깝기도 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그린이가 행복해 보여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심플한 액자에 그림이 갈아 끼워지듯 다양한 상상을 일깨우는 동화
그린이는 퇴근이 늦어지는 엄마를 기다렸고, 울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고, 엄마와 함께 숲으로 걸어가 희망 품은 숲의 기운을 느꼈다. 이야기의 줄기는 이렇듯 간단하다. 그런데 중간중간 엮어져 있는 에피소드들이 이야기의 풍성함을 더해 주었다. 그린이네 집 이야기, 그린이의 학교생활, 그린이가 숲에서 관찰하고 느낀 것들이 엄마와의 대화 속에 녹아들면서 마치 심플한 액자에 다양한 그림들이 갈아 끼워지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각각의 장면으로 각인된 이야기들은 마치 한 편의 편지처럼 이어져 엄마에게 전해지고, 그린이와 엄마의 이야기는 다시 독자들에게 편지처럼 다가갈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마주하는 그림들은 구체적인 장면을 포착한 표현도 있지만, 이야기와 함께 마음속의 숲을 거닐면서 펼쳐지는 생각이 그림으로 옮겨진 것들도 많았다. 텍스트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진 두 개의 장면에서 특히 그랬는데, 작가들과의 교감 혹은 독자적인 상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부분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