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SF 소설은 내일의 현실이 된다
자유로운 상상 × 정교한 해설 × 넓은 시야
가까운 미래. 한 부부가 병원에 찾아옵니다. 유전자 조합을 통해 자신들이 바라는 자녀를 낳기 위해서죠. 두 사람은 원하는 자녀상을 신중하게 고민해 적어 옵니다. 얼굴이나 체형은 상관없지만 키는 평균보다 조금 큰 사람, 자립심이 강하고 합리적이며 정직한 사람, 책 읽기를 좋아하고 생각이 열린 사람.
이 책에 실린 스물다섯 편의 SF 소설 중 한 편이자 표제작인 「원하시는 아기를 장바구니에 넣으세요」 속 한 장면입니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지금, 이 소설은 머지않은 미래를 보여 주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부모가 원한 특질을 지니고 태어난 아기를 우리는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자기 설계 기능을 가진 로봇을 연상케 하는 이 아기가 세상에 등장하는 날, 우리는 ‘인간’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정의를 추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수십 년간 논쟁이 이어져 온 생명 과학의 윤리를 언급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이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질문거리가 계속해서 생겨난다는 사실이죠.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인류의 꿈은 달 착륙에 있었지만, 이제는 비용이 문제일 뿐 우주여행은 더 이상 꿈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SF 작품에서처럼 말이죠.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풍경 속에서 과학 기술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꼭 우주여행 같은 원대한 기획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아주 사소한 구석구석까지 바꾸어 놓죠. 터치스크린이 등장한 이후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듯이 말입니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수화기를 들고 물리 버튼을 꾹꾹 눌러 전화를 걸곤 했답니다. 여러분에게는 낯선 방식이지요? 지금으로부터 다시 10년 뒤에는 어떤 세상일지 예측하기 어려우니 우리는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쓸모 없어지리라는 회의감에 시달리기도 하죠. 바로 그렇기에 미래에도 좀 더 오래 살아남을 것 같은 직업을 찾고, 좀 더 확실한 미래를 그리고자 하지요.
그런 맥락에서, 『원하시는 아기를 장바구니에 넣으세요』는 낯설고 불확실한 미래를 여행하게 될 여러분에게 매력적인 가이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이 책은 『SF 크로스 미래과학: 질주하는 상상 × 새로운 시선 × 위험한 논쟁』의 개정판으로, 김보영, 김창규, 곽재식, 박성환 네 명의 SF 작가가 쓴 스물다섯 편의 짤막한 SF 소설을 묶는 동시에, 소설을 관통하는 네 가지 주제(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명암, 인공 신체, 우주)에 관한 논픽션을 함께 실었습니다. 이를테면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1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세상만사를 관장하게 된 미래 세계를 보여 주는 SF 소설을 여섯 편 읽은 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떤 딜레마를 불러올지 등을 해설해 주는 글을 펼쳐 보게 되는 구성이죠.
자, SF 소설이 던지는 질문과 과학 논픽션이 내놓는 대답을 경유해 미래를 여행할 준비, 되셨나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
그리고 미래를 보는 새로운 눈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알파고’가 승리를 거두고 그로부터 1년 뒤인 2017년에는 유럽연합 의회에서 로봇의 시민권을 선언하기도 했죠. 그때만 해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었다는 것이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지금 여러분에게는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어를 배우거나 바둑을 연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1장에서는 바로 이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여섯 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가령 「석양의 무직자」는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인공지능 자율 시스템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불매운동을 하면서 항의 시위를 벌이려니,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에 이미 인공지능이 도입되어 현대판 봉화대를 올리는 우스꽝스럽고도 씁쓸한 장면이 펼쳐지죠. 인공지능이 현존하는 일자리의 대다수를 대체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지금 우리 시대의 불안이 고스란히 투영된 소설이지 않은가요?
물론 우리가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암울한 전망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모든 빛에 그림자가 있다면, 반대로 모든 그림자는 빛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2장 ‘신인류를 부탁해’는 바로 그런 빛이 비쳐 드는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에 실린 소설 여섯 편은 ‘인공 신체’를 주제로 한 것인데요. 가령 「별이 빛나는 밤에」에는 인공 안구를 이식받은 사람이, 「인공 근골격에 관한 세 개의 삽화」에는 인공 근골격을 갖춰 마천루 사이를 활공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비단 물리적인 신체만이 아닙니다. 「기억을 저장하는 몇 가지 방법」에는 기억을 보관해 주는 머리띠를 착용하는 사람이 등장하죠. 일종의 외장하드를 단 셈입니다. 나아가 「이제, 남은 암흑기는 없다」에서는 아예 신체를 ‘재건’하는 수술까지 등장합니다. ‘치료’나 ‘재활’을 할 수는 있지만 사라진 신체 부위를 ‘복원’할 수는 없는 지금으로서는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능’의 영역을 무한히 넓혀 나간 미래에 ‘장애인’은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가 될지, 신체를 재건함으로써 모두가 비장애인이 된 미래가 과연 완벽한 미래일지에 대해서요. 각 장의 해설에서는 이런 질문거리를 던지면서 함께 읽어 볼 만한 SF 소설들을 언급하는데요. 2장 해설에서는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라는, 자폐가 있는 ‘루’가 주인공인 SF 소설을 예로 들어 자폐라는 ‘비정상’ 상태가 자폐 없는 ‘정상’ 상태로 교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기술 발전이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지 함께 묻습니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현대의 이카로스를 위한 안내서
다음 장들에서도 질문은 이어집니다. 3장 ‘기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나니’는 기술 발전의 명암, 나아가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겨난 딜레마나 아이러니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가령 「똑똑한 일은 스마트 기기에게, 멍청한 일은 사람에게」는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시피 ‘똑똑한’ 일은 기계들이 도맡아 하고 ‘멍청한’ 일만 하게 된 인간 군상을 풍자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에게는 더 이상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암울한 예상에 잠겨 있지만, 3장에 실린 작품들이 보여 주듯이 기계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시대가 와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을 겁니다. 기계가 완벽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기계가 하늘과 바다 사이라는 하나의 길, 더 완벽하고 더 정확한 길만을 따르고자 한다면 인간 앞에는 도전과 실패와 성공과 후회라는 다양한 갈림길이 존재하니까요. 창공을 가르는 감각에 취해 너무 높이 오르고 만 이카로스처럼 말이지요.
그리하여 우리는 4장 ‘우주를 향해 내딛는 한 걸음’에 다다릅니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이지러지고 만 날갯짓 이후 두 번의 1,000년이 지나는 동안 이카로스의 이름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인간의 뜨거운 열망’과 ‘경솔함과 과욕이 불러온 참사’의 대명사처럼 쓰였습니다만, 거꾸로 본다면 결국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날아오를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그 경솔함과 과욕에 있었던 것이죠. 그리하여 인류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건넜고, 얼음으로 뒤덮인 극지방에 발을 디뎠습니다.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저 하늘 위로 나아갔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음을 알면서도 해저로 내려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늘을 나는 법과 바다를 건너는 법과 지구를 떠나는 법까지 알아냈을 뿐 아니라, 이전에는 알지 못했고 심지어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광대하고 새로운 하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추천의 글)
이 책에 실린 스물다섯 편의 SF 소설은 바로 그런 경솔함과 과욕과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서 미래 세계를 여행하게 될 여러분을 위한 가이드북입니다. 정해진 운명의 길을 따라가는 법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으로 달라질 가능성의 길을 선택하는 방법을 제공할 열린 가이드북이죠. 미지의 시공간으로 뛰어들기 전, 현대의 다이달로스들이 깃털을 엮고 밀랍을 발라 만든 날개 하나를 품고 가는 건 매우 현명한 전략이랍니다. 잊지 마세요. 미래가 아무리 불안하게 느껴지더라도 결국은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