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다윗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다윗 주변에 일어난 사건들이 사실이라면, 구름 위에서가 아니고, 인간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잖는가? 그 역사의 땅을 다윗과 함께 밟고 싶었다.
다윗을 소개한 유일한 고대문서인 히브리전승(구약)을 경전으로만 볼 것인가, 역사 속 경전으로 볼 것인가? 번민에 늘 빠지고는 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개방된 생각을 가졌던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궁켈(Hermann Gunkel), 폰 라드(Gerhard von Rad), 노트(Martin Noth), 존 브라이트(John Bright),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등 히브리전승 연구가와 현대신학자들에게 빚을 졌다.
“이 글은 창작이다. 히브리전승을 기초로 썼다. 세 푼(分)은 전승의 내용과 일치하며, 칠 푼은 허구다. 하등비평(성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는 본문비평 방법)과 고등비평(성서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역사적으로 재해석하는 양식비평 방법)을 병행하여 집필했다.”
나보다 더 슬픈 영혼에게 이 글을 바친다.
- 5쪽(〈글을 시작하며〉 전문)
신이 역사를 이끌어 간다면, 신은 다윗의 편이었다.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 주변국의 상황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전개된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은 사울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승리하기는 했으나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서로들 분열이 일어나 더 이상 이스라엘 쪽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유다지파 왕에 불과했던 다윗은 북쪽지파를 아우르며 헤브론에서 통일 왕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한 나라 두 정부 체제였다. 전날 북쪽지파 장로들과의 만남은 단지 통일왕국을 세운다는 약속으로 존재할 뿐, 이스라엘은 한 왕 아래 헤브론과 마하나임 두 개의 독립된 왕국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도성 헤브론 위치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다윗과 모사들의 쟁론거리가 된다.
- 10쪽
그 밤 열여섯이요, 작년에 혼례를 치른 밧세바가 다윗의 침궁으로 불려 왔다. 그녀는 궁 가까이에 살면서 궁을 동경하고 있었다. 무장이었던 아비 엘리암(백성들의 신)이 전공을 세우고 상급으로 옷, 음식 등을 받아올 때면 얼마나 궁 생활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밧세바가 겁먹은 눈동자로 사방을 둘러본다. 침궁 안은 백향목 침대며, 세마포를 물들인 휘장이며, 벽을 치장한 장신구들이며 꿈속에서 보던 것보다 더 화려하다.
“이리로 오라!”
다윗이 부르자 밧세바는 꿈에서 깨어난 듯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간다. 이번에는 다윗이 그녀를 보며 꿈속에 빠져든다. 얼굴이 백합처럼 희고, 백합 꽃봉오리처럼 턱이 갸름한 여인이다. 채취에서도 갓 피어난 백합 향기가 난다.
“부정한 기간이냐?”
“….”
다윗이 다가가 대답이 없는 밧세바를 품에 안는다. 여자는 가슴에 안겨져 새근댄다. 침상에는 화문(花文)요와 문채(文彩)있는 이집트 산(産) 이불이 덮여 있다. 요 위에는 침향(방향성 향료)이 뿌려져 있다.
- 134쪽
다윗은 침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한다. 미미한 숨결만이 입술에서 새어 나온다. 곁에 앉은 아비삭이 그 입술에 입을 맞추며 새 숨을 불어넣는다.
‘말코쉬’(늦은 비, 봄비)가 내렸다. 다윗성 밖에는 잎새 한 잎이 허공에 제 몸을 맡기고 떨어진다.
“모든 것이 끝났다. 시종장은 저 창문의 커튼을 내려라. 내가 열조에게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윗이 눈꺼풀을 힘겹게 내리며 말한다.
“내가 가면 아버지께서 상을 차려주실 것이다. 그릇에는 떡을 넘치도록 담아서, 잔에는 포도주를 흘러넘치도록 담아서 나를 맞아주실 것이다. 세상 풍파 속에 거칠어진 내 머리칼 위에 향유를 부어주시고,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실 것이다.”
기원전 970년, 이스라엘의 제2대 왕 다윗이 모든 인간이 가는 길로 돌아간다. 신 앞에 생애의 심판을 맡긴 채….
- 382쪽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빛나고 굳건한 왕조를 물려주었다. 가나안 대부분의 영토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군사력도 주었다. 또 야훼 종교를 정치 이념화시켜 주었다. 다윗의 왕조를 소금처럼 변함없이, 등불이 꺼지지 않게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신의 무한한 은총 때문인가? 후대에는 심각하고 무수한 실정이 있어도 다윗의 후예들이 왕위를 이어갔다. 남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20명의 왕은 모두 다윗의 자손들이다.
-4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