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금기를 깨는 예술가가 전하는
삶의 카타르시스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는 순원체 글씨 작품 47점과
자유로운 경지를 위해 견뎌 온 고독한 시간들
그가 쓰는 글씨는 어떤 금기도 없어 자유롭다. 그의 삶은 글씨와 닮았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 그의 좌우명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간섭받는 것은 질색하니 간섭하기를 싫어하고,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니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부지런하지 않으니 나 또한 다른 사람의 무관심에 서운하지 않다. 간혹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적절한 거리 두기로 피곤하지 않고 삶이 부드럽다.”
윤영미는 글씨의 힘을 깨달았다. 자신의 글씨가 기존의 세상에 대한 매력적인 저항이라는 것을. 20년 서예 선생의 삶을 접고 붓 한 자루를 든 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서예의 아름다움을 강요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글씨와 놀기 위해서다. 우울한 친구들을 위한 ‘욕’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억눌린 감정의 응어리를 표출한 글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붓 끝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서예가의 감정선이 합쳐진 글씨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는 이야기와 퍼포먼스를 더해 ‘글씨 콘서트’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었다. 글씨콘서트가 계속되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일어서 카메라에 담아내기 바빴고, 대공연장을 진동하는 묵향은 순간 모두를 행복에 취하도록 만들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도 한자였고 첫 개인전도 한자 서예였지만 공기처럼 호흡하는 한글로 심장을 파고드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한글을 쓰는 서예가가 되었냐고 물어 오면 나는 대답한다. 쪽팔려서 그렇다고. 한 번에 읽어 내지 못하는 한자를 쓴다는 것이 쪽팔리고, 읽으면서도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쪽팔리다고. 내 얘기를 붓으로 쓰고 싶은데 한자로 하자니 나도 어렵고 보는 대중도 어려울까 그렇다고. 무엇보다 한글을 쓰지 않는 서예가가 쪽팔려서 그렇다고.”
그는 어느덧 사람들이 사랑하는 한글 서예가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요청하는 예술가다. 주한 튀르키예 문화원에서 요청한 2022년 7월 개인 초대전 〈붓으로 쓰는 한글〉 전에서 한국과 튀르키예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휘호를 했다.
자신의 글씨를 닮은 예술가의 삶
경남 진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예술가는 대학 서예과에 입학한 후에 고가의 큰 붓 대신 밀대 걸레 두 개를 자루에 묶어 붓을 만들었다. 흐느적거리는 붓맛과 뜻밖의 획이 만들어지는 희열을 만끽했다. 서예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까지 입시과외를 하며 두꺼운 전공책을 사 모았다. 첫 공모전에서 수상도 했다. 그 뒤로는 상들을 거절하고 유명한 서예가가 자기 문하로 들어오라는 제안도 사양한 채 고향으로 내려갔다.
삼천포 시장 번화가에 서예원을 열었다. 10대 왕따 청소년,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 청년들, 우리 옷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부인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모여들었다. 서예원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서예원에는 사람들의 온갖 대소사와 희노애락이 모였다. 작가는 그들이 본성을 마음껏 펼치도록 도왔다.
마흔여덟, 서예원을 닫고 세상으로 나왔다. 서예에서는 보기 드문 그의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삐뚤빼뚤하지만 아름답다. 자유롭지만 묘한 질서가 있다. 힘이 있지만 부드럽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씨였다. 사람들은 여태껏 본 적 없는 그의 글씨를 가리켜 ‘순원체’라고 했다.
그동안 서예 선생으로 살며 눌려있던 에너지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개인전 완판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국내 최초로 기획한 글씨콘서트는 대공연장 전좌석을 매진시켰다. 그의 서예는 전시가 아닌 공연이며 온몸을 쓰는 퍼포먼스다. 커다란 붓으로 춤을 추듯 온몸을 사용한다. 에너지를 한껏 모아 붓과 한 몸이 되어 10m짜리 거대한 천을 누빈다. 응집된 인생의 내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킨다. 윤영미의 첫 책 《인격예술》은 가두려 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같아지려 하지 않는 그의 삶과 글씨가 응축된 책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예술을 하고 있다
“나는 먹 가는 행위를 주술처럼 즐긴다. 내가 가장 착해지는 시간이다. 먹을 갈면서 우주의 중심을 내 축에 맞추어 이동시킨다. 자신이 가장 자기다울 수 있는 시간,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고 확장되는 몰입. 이 몰입의 경지가 주는 충만함보다 더 큰 보상을 나는 아직 모른다.”
작가는 자유로운 나를 위하여 견딘 고독에 대해 말한다. 어떤 제도권에도 속하지 않고 지름길을 포기한 채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삶을 견디며 벼린 이야기들. 수많은 반복이 원하는 경지에 이르게 했고, 스스로의 금기를 깨는 순간 편안해졌다는 것을, 고독할수록 자유로웠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내 것임을 알게 된 이야기들이다.
예술가의 내밀한 독백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가장 자신다울 수 있는 시간을 위해 견디고 벼리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인생이라는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