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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하라 미치조 시선


  • ISBN-13
    979-11-7307-395-3 (03830)
  • 출판사 / 임프린트
    커뮤니케이션북스㈜ / 지식을만드는지식
  • 정가
    18,8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1-22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다치하라 미치조
  • 번역
    김명주
  • 메인주제어
    시: 근현대 (1900년 이후)
  • 추가주제어
    시: 시인별 , 나가노 , 20세기 초반, 1900-1950년
  • 키워드
    #시: 근현대 (1900년 이후) #시: 시인별 #나가노 #20세기 초반, 1900-1950년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8 * 188 mm, 183 Page

책소개

일본 사계파의 대표 시인 다치하라 미치조(立原道造, 1914∼1939)의 시선집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다. 시는 총 76편으로, 생전에 출간한 첫 시집 《원추리꽃에 부쳐》(1937)의 전편 10편과 두 번째 시집 《새벽과 저녁의 노래》(1937)의 전편 10편, 사후 출간된 《다정한 노래》(1947) 전편 11편 외에 생전 잡지에 발표되거나 사후에 전집에 수록되어 출간된 작품 중 45편을 옮긴이가 더 엄선해 실었다. 이 책에는 특별히 미치조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시인의 산문 세 편도 곁텍스트로 수록했다. 

목차

원추리꽃에 부쳐 萱草に寄す

〈소나티네 No.1 SONATINE No.1〉

첫 사람에게 はじめてのものに

또 다른 밤에 またある夜に

늦은 날 저녁에 晩き日の夕べに

이별하는 한낮에 わかれる晝に

훗날의 그리움에 のちのおもひに

여름 꽃 노래, 그 하나 夏花の歌, その一

여름 꽃 노래, 그 둘 夏花の歌, その二

〈소나티네 No.2 SONATINE No.2〉

무지개와 그대와 虹とひとと

여름날의 추모 夏の弔ひ

잊고 말아서 忘れてしまつて

새벽과 저녁의 노래 曉と夕の詩

 

어느 바람에 부쳐 或る風に寄せて

마침내 가을… やがて秋…

작은 서사시 小譚詩

잠의 유혹 眠りの誘ひ

한겨울 밤비에 眞冬の夜の雨に

잃어버린 밤에 失なはれた夜に

넘쳐흐르는 어둠에 溢れひたす闇に

잠결에 眠りのほとりに

배회 さまよひ

아침노을 朝やけ

 

다정한 노래 優しき歌

서곡 序の歌

싱그러운 5월에 爽やかな五月に

낙엽 숲에서 落葉林で

쓸쓸한 들녘 さびしき野邊

꿈에서 깨어 夢のあと

다시 낙엽 숲에서 また落葉林で

아침에 朝に

다시 한낮에 また晝に

오후에 午後に

수목 그늘에서 樹木の影に

꿈꾸던 건… 夢見たものは…

 

그리움의 노래

제비의 노래 燕の歌

노래하듯 느긋이… うたふやうにゆつくりと…

〈엉겅퀴꽃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薊の花のすきな子に〉

휴식−엉겅퀴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憩らひ−薊のすきな子に

무지개 虹の輪

세레나데 窓下樂

희미한 빛 薄明

민요−엘리자를 위하여− 民謠−エリザのために−

새 울 때 鳥啼くときに

감미롭고 감상적인 노래 甘たるく感傷的な歌

나 홀로 숲에… ひとり林に… 

한겨울의 자취에… 眞冬のかたみに…

이른 봄에 부쳐 淺き春に寄せて

 

바람의 노래

바람에 부쳐, 그 하나 風に寄せて, その一

바람에 부쳐, 그 둘 風に寄せて, その二

바람에 부쳐, 그 셋 風に寄せて, その三

바람에 부쳐, 그 넷 風に寄せて, その四

바람에 부쳐, 그 다섯 風に寄せて, その五

바람에 부쳐, 그 하나 風に寄せて, その一

바람에 부쳐, 그 둘 風に寄せて, その二

야상곡 夜想樂 

상처 입어 작은 짐승처럼 傷ついて,小さい獸のやうに

구름의 축제날 雲の祭日

고독한 날의 한낮 孤獨の日の眞晝

가 버린 고운 임에게 みまかれる美しきひとに

가 버린 낮의 노래 逝く晝の歌 

노랑원추리꽃 그대 ゆふすげびと

방랑자의 밤 노래 旅人の夜の歌

추억−노무라 히데오에게− 追憶−野村英夫へ−

늦가을 晩秋

고향 밤에 부친다 ふるさとの夜に寄す

초겨울 初冬

노래 하나 歌ひとつ

노래 하나−우울한 기분의 해 질 녘에− 歌ひとつ−暗い心の夕ぐれに−

오후에 午後に

어디로? 何處へ?

초여름 初夏

풀밭에 누워…−6월 어느 일요일에− 草に寢て…−六月の或る日曜日に−

내 가난함은… 私の貧しさは…

늦봄 晩春

저녁노을 속에서 夕映の中に

밤 샘터에서 夜 泉のほとりに

비의 언어 雨の言葉

아다지오 アダジオ

일과 日課

전원생활 村ぐらし

 

부록

하추표, 그 하나 夏秋表, その一

하추표, 그 둘 夏秋表, その二

백지 白紙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본문인용

1.

첫 사람에게 

はじめてのものに

 

 

소소한 분화는 그 기념으로

화산재를 뿌렸다 그 마을에 한 차례

재는 슬픈 추억처럼 소릴 내며

가지 끝에 지붕들 위에 쏟아져 내렸다

 

그날 밤 달은 빛났고 난 그 사람과

창가에 기대 대화하고 있었다(그 창으로는 산 모습이 보였다)

방 안 가득 협곡처럼 빛과

잘 울리는 웃음소리 넘쳐 나고 있었다

 

−사람 마음을 안다는 건… 사람 마음이란 건…

난 그 사람이 나방을 쫓는 손짓이 그게

나방을 잡으려 한 건지 괜히 궁금했다

 

그 언제 봉우리에 화산재 연기가 피어올랐던가

불의 산 이야기와… 또 숱한 밤을 정말이지 꿈에서

그날 밤 읽었던 엘리자베트의 서사를 엮고 있었다

 

2. 

어느 바람에 부쳐

或る風に寄せて

 

 

네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서풍이여

나른한 노래 그치지 않는 비 오는 낮에

닫힌 창의 희미한 불빛에

헛헛한 추억 되새기며

 

기억하고 있었다 두려움도 떨림도

그건 낯선 것들이다…

해 질 녘마다 환한 쪽에서 불어와

그건 이미 접어져 가슴에 드리워져 있다

 

네 노래한 옛 선율이다−

누가 그걸 끄집어낼 것인가 누가

그걸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해거름이 밤으로 바뀔 때마다 구름 사라지고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넌 서풍이여 다 잃어버렸다라고

서평

노래 같은 시

미치조는 ‘시란 쓰는 것이 아니라 노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문학 스승으로 사사했던 무로 사이세이에게 "내 시 같은 거라도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일이 생길까요, 해 준다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인 스스로는 꿈에서나 그리는 일이었지만 현재 미치조 작품에서 나온 곡은 약 500곡에 달한다.

미치조 시의 음악적 특성은 당시 일본 문단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920년대 일본 문단은 세계를 휩쓴 모더니즘과 프롤레타리아가 양립하는 구도였다. 뒤이은 1930년대, 미치조가 활동하는 때는 그에 대한 반발로서 '사계파'와 같은 서정성과 음악성을 중시하는 전통에의 회복 움직임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서정시의 거장들인 사이세이나 하기하라, 주야 등이 대표 주자들이다. 이들의 시는 또한 '시는 음악'임을 주장한 서구 시인 베를렌 등과 공명하고 있었다. 이렇듯 미치조의 시는 유럽의 낭만시와 일본 사계파의 두 토양 위에 피어난 꽃이었다.

 

가루이자와 오이와케의 풍광을 오롯이 담은 시

아사마산 중턱에 자리한 가루이자와 오이와케는 일본 문학사에도 ‘가루이자와 문학’이라는 장르가 존재할 만큼 많은 문인이 머무르며 창작을 한 곳이다. 기타하라 하쿠슈, 아리시마 다케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호리 다쓰오, 무로 사이세이 등 여러 문학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다치조는 단연 눈에 띈다. 당대의 서정시인이었던 호리 다쓰오는 그의 시에 대해 “자네 시집 《원추리꽃에 부쳐》는 (…) 아무튼 우리 속의 먼 소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조용한 시골 생활 등으로 여름 동안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일세. 그러나 그리고 곧 또 우리에게 그 시골 생활 그 자체와 함께 잊혀 버릴 (…)자네는 즐겨 자네를 늘 가득 채우고 있는 정체 모를 슬픔을 노래하고 있지만 자네에게 가장 좋은 것은 이 정체 모를 슬픔 그 자체가 아니고 오히려 그 자체로서는 시시할 것 같은 그런 슬픔을 그야말로 소중히 소중히 하고 있는 자네의 특별한 내면세계인 것 같네. 그러한 자네의 순금 같은 마음을 언제까지고 소중히 하게”라고 편지에 써서 보내기로 했다.

오이와케는 이처럼 문인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곳이기도 했지만, 한편 폐결핵 환자들이 머무는 요양처이기도 했다. 미치조도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장기간 투병했다. 그는 이처럼 생과 사의 명암이 교차하는 중층적인 공간을 수없이 오가며 내부의 서정적 공간으로 구축해 나갔다. 말하자면 오이와케는 미치조 시를 배태한 모태이자 영혼이 안식하는 마음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사랑의 시

1부 〈원추리꽃에 부쳐〉의 첫 시 〈첫 사람에게(はじめてのものに)〉는 미치조의 아유코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시다. 아유코는 시인의 시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그녀를 ‘원추리꽃’으로 표상한다. 이 들꽃은 중국에서는 ‘망우초(忘憂草)’로 표기되고, 일본 시가에서는 이 꽃을 《만엽집(万葉集)》(8세기 중엽)부터 ‘와스레구사(忘れ草, ワスレグサ)’라는 시적 이름으로 노래했다. 말뜻을 풀어 보자면 ‘잊어버림/잊힘’의 비애를 표상하는 꽃인 셈이다. 시인은 이러한 일본의 시가적 전통을 수용하여 여름에 만난 그녀의 이미지를 잘 표출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시인의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을 지탱하는 시상은 이러한 여름철 고원을 노랗게 뒤덮는 원추리꽃에 담긴 사랑의 설렘과 비애감이다. 

아련한 첫 사랑의 동경은 결국 계절처럼 끝이 나고 약혼녀 아사이와의 만남이 따스한 5월의 바람처럼 미치조에게 새로 다가온다. 그 감정 상태가 사후 시집 《다정한 노래》에 담겼다. 미치조는 1938년 8월, 폴 베를렌이 쓴 시에 가브리엘 포레가 곡을 붙인 연가곡 〈다정한 노래(La bonne chanson)〉을 듣고 며칠 후 바로 스케치북에 ‘La bonne chanson’을 써 넣었다고 전한다. 이것이 그의 사후 시집의 제목이 되었다. 이 시집에서는 차츰 죽음의 그림자가 뚜렷해지면서 애써 불안을 희석시키려는 양가적 모습 또한 읽을 수 있다.

 

다정한 시인, 다치하라 미치조

미치조가 시인으로 성장한 때는 1930년대 전쟁 시기였다. 그가 문단 활동을 시작한 해는 1937년으로 중일 전쟁이 시작되던 해이기도 하다. 또 사망한 1939년 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풍 전야였다. 이런 암울한 시대였음에도 그의 시는 여전히 건강하고 밝은 서정의 세계를 다정하게 노래한다. 

그는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에 그 삶도 더없이 정갈하고 건강했다. 시인을 닮아 그의 시 역시 비애와 고독감을 노래하면서도 까칠함이나 분노는 찾아볼 수 없다. 다치하라 미치조는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또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하여 그토록 자상한 시인이었다. 5월 따스한 바람처럼 불어오는 그의 시를 음미해 보자.

저자소개

저자 : 다치하라 미치조
다치하라 미치조(立原道造, 1914∼1939)는 상품 발송용 나무 상자를 제조하는 상가에서 태어나 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남동생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자랐다. 어려서부터 특별히 총명해 초등학교에서는 개교 이래 가장 뛰어난 신동으로 불렸다. 이후 일명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부립중학교를 거쳐 제일고등학교, 그리고 도쿄제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수학했다. 문단에서는 아쿠타가와, 호리 등 수재 작가들이 같은 코스를 밟았던 동문 선배였다. 중학생 무렵부터 일본 정형시 단가(短歌)를 발표했으며, 고교부터는 자유시를 쓰기 시작해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독특한 3행시를 동경하여 4행시 스타일을 시도한다. 고교 마지막 해인 1933년에는 호리 다쓰오를 방문하여 이후 선배이자 문학적 스승으로 사사한다. 이 무렵부터 호리와 함께 독일 낭만파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 경도하여 시집을 탐독하거나 연구하기도 한다. 1934년 대학 입학 후에는 호리가 주도하고 창간한 동인지 《사계》에 가담한다. 후에 호리를 중심으로 무로 사이세이, 하기와라 사쿠타로,나카하라 주야를 비롯한 시단의 거장들이 《사계》 동인제를 확립하자, 미치조 역시 이 ‘사계파’의 대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1934년은 미치조가 가루이자와 오이와케를 처음 방문하여 머문 해이기도 하다. 당시 그곳에는 평소 경외하던 서정시인 사이세이가 체재하고 있어 이것을 기회로 그에게 사사한다. 또한 이때 세키 아유코라는 19세 소녀와 조우하는데 이 만남은 그의 시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치조는 독일 문학에 매료되어 프랑스 문학을 번역한 호리와 공역하여 《사과꽃 필 무렵》(1936)이란 번역집을 출간하기도 한다. 미치조는 주로 독일 문학 중 릴케와 함께 테오도르 슈토름의 소설들을 번역했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 중세 시가집 《신고금와카집》에도 몰두하여 고전 시가의 전통적 기법들을 섭취하며 독자적인 시 세계를 확장해 간다.
한편 미치조는 시인인 동시에 건축가였다. 그는 “내 신체 반은 시를 생각하고 나머지 반쪽은 건축을 꿈꾼다”라고 할 정도로 건축에도 문학만큼 진심이었다. 도쿄제대 건축학과 재학 중에는 건축상인 다쓰노(辰野)상을 3회나 연속으로 수상하기도 했다. 졸업 논문 〈방법론(方法論)〉(1938)에서 그는 “우리들은 폐허가 완벽 그 이상의 힘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는 것, 그것에 폐허의 정말이지 무너져 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설파한 지메르의 고찰에도 귀를 기울였다”라고 예술 철학적 건축론을 피력했다.
1937년 7월에 첫 시집 《원추리꽃에 부쳐》가 출간된다. 그 여름 사이에 오이와케를 오가다 10월에 늑막염을 앓게 되어 병가를 내고 오이와케에서 정양한다. 병중에도 그해 12월에는 두 번째 시집 《새벽과 저녁의 노래》를 간행한다. 생전 마지막 시집이었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이듬해 일하던 건축회사에 복귀하고, 4월에는 동료 사무원인 미토베 아사이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동반하여 오이와케를 왕래하고 6월에는 오이와케에서 약혼을 한다. 그러나 7월에 급기야 늑막염의 후유증으로 폐결핵이 발병하여 정양을 위하여 다시 오이와케로 들어간다. 그 상황에서도 9월부터는 약 1개월 반 동안 동북 지방 여행을 감행한다. 그간 모리오카에서 후카자와 고코의 본가 별장에 머물며 스승 호리와의 문학적 결별을 시사하는 듯한 《바람이 분다》론 즉 호리 다쓰오론을 쓰고 귀경한다. 병중에도 여행을 이어 가나 12월 초에 각혈로 급거 귀경하여 도쿄 시립요양소에 입원한다. 이듬해인 1939년 2월에 1937년 폐결핵으로 요절한 시인 나카하라 주야를 기려 제정된 문학상의 제1회 수상자가 된다. 그 직후 3월, 24년 8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가 투병 중에 남긴 다음의 말은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이 되었다.
“5월 산들바람을 젤리로 만들어 갖다 줘요.”
그는 이처럼 죽음의 순간까지 굴절되지도 퇴색하지도 않은 청춘의 생기를 발하는 노래를 부른 시인이었다.
번역 : 김명주
김명주는 경상국립대학교 사범대학 일어교육과 대학원 일본학과 교수로 현재 한국 일본어 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 근대 문학으로 학부, 석사 논문을 작성했고 일본에서는 일본 근대 문학으로 석사, 박사 논문을 작성했다. 이후 한일 비교 문학과 오키나와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예술가적 존재방식 연구》, 번역서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마키노 신이치 단편집》, 《야마노쿠치 바쿠 시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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