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요리 좀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요.” 하면 나는 손보다 머리가 더 고달프다고 푸념을 한다. 진짜다. 수더분한 배우자 같은 일상의 음식도 애인의 여우짓을 보태면 나름 지루하지 않다. 반복적인 것들에 약간의 창의적인 노력이 들어가면 숨통이 트이고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플레이팅이 바로 우리가 할 여우짓이다. 궁리를 해야 가능한.(연어로 만든 장미, p.19)
가족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곳. 편하게 책도 보고 컴퓨터도 켤 수 있는 곳. 부지런히 수련하여 망작이라도 건져 올리는 곳. 누가 억지로 가둔 것도 아닌데 제 발로 부엌을 서성인다.(부엌은 어쩌다가, p.93)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음식은, 평가를 주저하게 한다. 꽤나 고마운 장점이다.(나만의 샐러드, p.133)
우리만 즐긴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이 먼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으면 신기하고 반갑다. 식탁은 우리가 나뉘고 섞이고 편을 먹었다가 또 혼자가 되기도 하는 기묘한 곳인 듯하다.(식탁 위의 경계, p.183)
당근은 여러 군데 겹치기 출연하고도 주목받지 못했던 조연배우 같다.(당근 라테 or 라페, p.215)
일상 탈출 시도에는 꼬꼬의 맹렬한 날갯짓 정도의 공이 든다. 수피에르와 은식기, 이름은 어렵지만 맛은 꽤 친숙한 꼬꼬뱅과 함께한 저녁은 잠시 아름답게 낯설었다.(꼬꼬와 함께 날기, p.224)
내 부엌에도 낮달이 많이 떠 있다. 빗 썰린 실패한 무 조각들이다. 보름달, 반달, 초승달이 한꺼번에 떴네! 한번 볼래? 도마 위의 장관, 모양 다른 달들이 일렬로 늘어선 특별한 우주쇼를 보러 오는 이가 아무도 없다. 쩝, 서둘러 어설픈 달들을 주워 먹는다. 달이 달다.(도마 위의 우주쇼, p.246)
우리의 관심과 궁금함과 안달은 요리를 향한 열정의 본질이다. 자꾸만 간을 보다가 끝내 짜게 만들고 머리칼을 쥐어뜯게도 만든다. 배가 고파 무언가를 서둘러 만들고, 냉장고의 묵은 짐을 덜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음식에도 연지 곤지 찍어 보는 그런 열심. 누군가에게는 영구히 결여되어 있거나 아직 개발되지 않은, 내 안에 충만했다가 사그라지기도 하는 그런 열정. 불현듯 찾아오는 ‘그분’을 영접하기만 한다면 밀키트와 맞짱 뜰 배짱 정도는 생길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요리자(요리사 아님 주의!)의 자격은 이거면 충분하다. I am still hungry!(요리자의 자격,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