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는 1540년 바오로 3세에 의해 승인받았고, 같은 해, 로마에서 중동과 극동으로 첫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특히 중국과 관련하여, 예수회는 16세기 후반에 절대 우위를 차지했다. 예수회는 중국에 첫 번째 추진자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Javier)를 보냈고, 이후 다른 많은 예수회, 프란체스코회, 아고스틴회와 도미니코 회원들을 거쳐 효과적인 길을 준비하게 한 다음, 탁월한 전략가며 리더인 알렉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와 인내심 있는 선구자 미켈레 루지에리(Michele Ruggieri), 그리고 드디어 총명하고 헌신적인 실천가 마태오 리치(Matteo Ricci)를 파견할 것이다. 그들은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더 많은 이탈리아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중국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그곳을 고국으로 삼아, 선교와 교회를 영구히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_121면
선구자의 별은 희미해지고 기울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꺼지고, 중국 가톨릭 선교의 진정한 설립자의 별이 나타나 빛나고, 1500년대 중국 상류 사회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마태오 리치라는 빛나는 인물과 마주하고 있다. 오랜 문화를 간직한 민족들에게 이상적인 선교사의 모델이 되었고, 그래서 선교지들에서 방대한 사도직의 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다. _148면
조경(肇慶)에서 쫓겨난 리치는 이 기회에 계속해서 중국 내륙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실제로 그는 8월 26일, 같은 광동(廣東)성의 북쪽에 있는 소주韶州시로 들어갔다. 그곳은 조경(肇慶)의 두 배에 달하는 큰 도시였고, 주민도 2만에서 2만 5천 정도 되었다. 리치는 이곳에 새로운 시지프스, 곧 두 번째 수도원과 두 번째 성당을 지었다. 더는 유럽 양식이 아니라 중국 양식으로 지었다. _168면
1936년, 한 중국인 작가는 리치의 “세계지도”와 관련하여, 그[리치]에 관해 말하기를, “당시에 리치가 중국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를 알았던 당시의 가톨릭 신자들, 문인 학자들과 관리들, 심지어 황제까지 모두 그의 지리학적 지식과 세계지도에 관한 놀라운 뉴스를 직·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세계에 대한 지리학적 지식을 발전시켰고, 다른 이웃 민족들과의 관계에서 중국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견해가 조금은 수정되었습니다.” 1939년 다른 저서에서도, “리치는 아마도 중국의 역사와 문학에서 확실하고 영속적인 위치를 획득한, 현재까지 유일한 가톨릭 선교사일 것입니다. 그를 언급하지 않은 현대의 백과사전이나 중국 역사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_211~212면
우리가 중국이라는 이 방대한 왕국에 입국하여, 우리 수도회와 그리스도교의 진출에 대해 기록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 내가 이 대륙에 들어와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들을 잘 알려진 순서대로 정리하여 기록하고자 한다. 대부분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어서 매우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스승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작은 씨앗이 싹을 틔워 성장하고, 거기서 선善이 수확되어 당신의 거룩한 가톨릭교회에 받아들여졌다면 마땅히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근세기에 들어 멀리 있던 백성들 사이에서 이룩한 당신의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실 것이다. 만약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이토록 성공적인 결과는 이루지 못했을 것이며, 이 책에서 읽게 될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증거란) 우리 예수회가 중국이라는 나라의 개방을 위해, 그리고 너무도 거친 숲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공을 들였는지, 그 덕에 얼마나 값진 희망을 품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_25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