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것도 지는 것도 싫었던 토리, 이제는 자는 게 싫다고?
밤하늘에 총총히 뜬 별만큼이나 반짝이는 것이 있다. 바로 밤늦게까지 자기 싫어하는 토리의 눈동자다. ‘싫어!’ 시리즈의 주인공 토리, 이번에는 자는 것이 싫단다. 토리가 한 마리 두 마리 세던 양들이 잠들 때까지도, 토리의 말똥말똥한 두 눈에 잠들 기미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표지에서 토리가 뒤집어쓴 토끼 모자의 눈이 이와 대비되어 졸음에 퉁퉁 부은 것이 웃음을 준다. 그러나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싫어하는 토리를 어떻게든 재우려고 사투를 벌이는 토리네 엄마 아빠다. 밤이면 밤마다 한바탕 전쟁이 일어나는 집 안, 과연 오늘 밤은 토리가 무사히 잠들 수 있을까?
초등학교 교사이기도 한 류호선 작가가 《쓰는 건 싫어!》, 《지는 건 싫어!》에 이은 세 번째 ‘싫어!’ 시리즈, 《자는 건 싫어!》로 아이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쓰고, 박정섭 작가가 유머 넘치는 그림을 더해 글맛을 살렸다. 한참 어린 나이부터 학원 가랴 숙제하랴, 바쁘게 지내느라 마음껏 놀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밤이 아쉬운 아이들의 멋진 대변인으로 나섰다.
어린이만 일찍 자야 하는 불공평한 세상!
토리가 아침보다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밤에 놀 수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얼마나 알뜰살뜰한지 옷 갈아입을 때, 양치질할 때 사이사이에 숨은 시간까지 찾아내어 놀려고 한다.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를 펼쳐 놓은 듯한 밤하늘을 두고 잠들기는 몹시 아쉽다. 토리에게 자라고 성화인 엄마도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토리는 더 강적이다. 엄마 말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토리에게 엄마가 속에 능구렁이라도 들어앉아 있냐고 묻자, 토리는 영화에서 보았던 큰 뱀 같은 거냐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토리는 마지못해 누워서 잠을 청해 보지만 이것도 얼마 가지 않는다. 창밖으로 소록소록 눈 내리는 소리, 오줌 누러 가는 길의 캄캄한 어둠도 토리에게는 전부 친구 같기 때문이다.
오줌을 누고 개운하게 다시 잠들려던 토리를 또 다른 소리가 붙잡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소리다. 소리를 따라 엄마 아빠 방으로 가 보니 토리만 쏙 빼놓고 둘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토리 눈에는 텔레비전 속 사람들이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엄마 아빠 말로는 잔인한 내용이라 토리가 볼 수 없다고 한다. 어른들은 참 치사하다. 자기들은 늦게까지 텔레비전도 보고 캠핑장에서 별도 구경하면서, 늘 어린이한테만 일찍 자라고 한다. 하지만 늦잠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토리는 아침마다 비몽사몽이어서 정신이 없다. 어느 날 아침, 까치집을 지은 채 겨우 일어난 토리는 화들짝 놀란다. 오늘은 분명 초등학교 첫 소풍날인데, 엄마가 자기를 깨우지 않아 늦게 일어나 버린 것이다. 전날 알아서 일어나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는 바람에 누구 탓도 못 하는 토리, 과연 무사히 소풍에 갈 수 있을까?
몸소 경험하고 성장하여 다다른 ‘마지막 지각’
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재우느라 실랑이를 벌이는 일은 보호자들이 곧잘 골머리를 썩이는 문제다. 하지만 류호선 작가는 한 번쯤 아이의 시선에서도 바라보라고 이야기한다. 토리가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이 놀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날이 저물어야 엄마 아빠가 집으로 오기 때문이다. 토리는 엄마 아빠가 퇴근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자기를 재워 두고 둘이서만 재미있게 보내고 있으면 토리 입장에서는 서운한 게 당연하다. 엄마 아빠가 놀아 줄 때면 기다린 보람을 느낀다는 토리가 정말로 바랐던 것은, 짜릿한 심야 축구 중계도 캠핑장의 아름다운 밤하늘도 아닌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토리는 밤에 잠들기 아까워하는 마음도, 그러다 하필 중요한 날 늦잠을 자서 속상한 마음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자기가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알고, 그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토리는 솔직하고 또 정직하기에 엄마를 탓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늦잠을 잔 책임이 있음을 깨닫는다. 당장의 속상함을 없앨 수는 없으니, 앞으로라도 속상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일찍 자겠다고 다짐한다. 소풍날 늦잠 소동은 작은 반전과 함께 해소되지만, 토리가 직접 경험하여 얻은 교훈은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조금 더 놀고 싶은 밤이어도, 그보다 더 즐겁게 놀 다음 날 낮을 위해 토리는 씩씩한 걸음을 내디딘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책날개와 판권에 실린 QR코드를 찍어, 박정섭 그림 작가가 직접 부른 자장가를 들어 보자. 토리 할머니가 불러 주었다던 자장가 가사를 따라 부른 잔잔한 노래가 자기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아이를 재우느라 녹초가 된 어른의 마음도 따뜻이 다독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