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아르투어 슈니츨러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년 5월 15일 유대인 후두 전문의 요한 슈니츨러와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루이제 슈니츨러의 아들로 빈 프라터가에서 태어났다. 1879∼1884년 빈 대학에서 의학을 수학하고 1885년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친교를 나누면서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간다. 1886년부터 1893년까지 빈의 여러 병원에서 보조 의사로 근무했다. 작품 활동 초기인 1890년부터 1899년까지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함께 ‘빈 모더니즘’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 슈니츨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사회상과 세기말 현상을 비판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부친이 사망한 뒤 전업 작가가 되어 단막극 연작 〈아나톨〉을 비롯해 단편 〈죽음〉(1894), 단막극 〈사랑의 유희〉(1895)를 연이어 발표한다. 1897년에는 열 개의 대화로 구성된 단막 연작 〈윤무〉를 발표하지만 검열로 인해 공연 금지 처분을 받는다. 이어 단편 〈죽은 자는 말이 없다〉를 발표했다. 1899년부터 작품 활동 중기에 해당되는 1921년까지, 슈니츨러는 심리학적 주제뿐만 아니라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다룬 극작품을 다수 집필했다. 〈초록 앵무새〉(1899), 소설 《구스틀 소위》(1900)가 이 시기 대표작이다. 1903년 여배우 올가 구스만과 결혼한다. 1908년 첫 장편 《트인 데로 가는 길》을 집필한다. 이 작품에서 빈 사회를 살아가는 유대인 정체성 문제를 다루었다. 1911년 발표된 유일한 희비극 〈광활한 땅〉은 슈니츨러 극작품 중 공연 측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바로 뒤이어 발표된 〈베른하르디 교수〉(1912)는 반유대주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5막 희극으로, 검열법에 따라 빈이 아닌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이혼 이후 슈니츨러는 심리적 고립감과 건강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한동안 세기말 개인의 운명을 심리학적으로 묘사한 단편들을 포함 소설 집필에 주력한다. 1923년에는 오스트리아 펜(PEN) 클럽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뒤이어 소설 《엘제 양》(1924), 소설 《꿈의 노벨레》(1925)를 연이어 발표한다. 1926년 슈니츨러는 부르크극장의 명예 반지를 받는다. 1928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장편 소설 《테레제. 여성의 삶의 연대기》를 발표한다. 1931년 10월 21일 빈에서 뇌출혈로 사망한다.
번역 : 양시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연극 텍스트에 관한 연구로 문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양대, 중앙대, 성신여대, 강릉원주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국립창원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관심사는 독일어권 근현대 드라마로, 이 작품들 중심으로 드라마 장르 형식이나 이론에 입각한 드라마 텍스트 분석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주요 연구로는 〈중세 도덕극의 현대적 재해석과 상호텍스트성−후고 폰 호프만스탈의 〈예더만. 돈 많은 사람의 죽음에 관한 연극〉〉,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변이와 비극의 변형−아이스퀼로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의 분석적 고찰〉, 〈아르투어 슈니츨러 희극론〉 등이 있으며 〈분석극의 시학: 비밀과 거짓말의 역학〉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