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를 읽는 핵심 키워드는 ‘환대’와 ‘연대’이다. 환대(hospitality)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난민과 이주민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 가장 뜨겁고 세계적인 윤리 주제가 되었다. 룻은 모압 이방 여인으로서 이스라엘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주민이다. 환대의 윤리가 그 중심에 있으며, 룻기는 선민사상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민족 배타주의의 장벽을 효과적으로 허무는 책이다.”
- 8쪽, ‘프롤로그 : 이야기의 힘’에서
“단지 죽지 않고 살려는 몸부림이었는데 이것이 놀랍게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모압, 이스라엘과 이방인 간의 차별을 금지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과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구원사의 연결점이 되었습니다. 우리 운명이나 우리의 일상사는 신의 뜻이 펼쳐지는 무대입니다. 생명을 향한 우리의 분투는 신성합니다.”
- 27쪽, ‘1. 나오미에서 마라로’에서
“룻은 모압 이방인이며, 여자이며, 과부이며, 가난한 자입니다. 마을에서 충분히 왕따를 당하고 무시해도 좋을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그런 룻을 환대합니다. 환대와 초대는 다릅니다. ‘초대’는 자기가 계획한 시간과 대상이 있고, 자기가 준비한 것으로 대접합니다. 초대는 자기만족이고 그냥 우정의 나눔에 불과합니다. ‘환대’는 불시에 찾아드는 자를,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는 것을 말합니다.”
- 72쪽, ‘4. 보아스의 환대’에서
“룻의 안전과 자신의 노후보장입니다. 다른 어떤 고상한 목표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이들의 의도를 조금은 냉소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도덕적, 신앙적인 면으로 보려 하면 삶의 치열함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 인생의 거짓과 욕망을 뒤집어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기막힌 솜씨를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 84쪽, ‘5. 룻과 나오미의 투쟁’에서
‘현숙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에는 ‘힘이 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worthy’, 곧 ‘가치 있는’ 식으로 번역합니다. 현숙한 여인의 표상은 잠언서 31장에 예시되어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정결한 여인이 아니라, 집안 살림을 잘하는 유능한 여인을 말합니다. 그래서 70인역은 잠언의 ‘현숙한 여인’을 ‘남자 같은(안드레이안) 여자’로 번역했습니다. 룻은 조신한 여인이 아니라, 의리 있고 집안을 잘 먹여 살리는 여인이었고, 이것을 현숙하다라고 말합니다.
- 87-88쪽 ‘5. 룻과 나오미의 투쟁’에서
“이것이 성경의 위대함입니다. 인간 왕이나 권력이 미화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사실적입니다. 하나님만이 왕이기에 인간을 미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는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면을 그대로 노출합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헤세드와 그 영광은 더 커집니다. 이렇게 부족한 자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거짓과 욕망과 무지로 거칠게 다루지만, 위대한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는 결국 아름다운 작품으로 빚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사소하거나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 150쪽, ‘8. 룻의 해피엔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