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용
“미르난데는 아이들이 꿈꾸는 희망이자 또 다른 현실이다”
식민화된 지구를 벗어날 정체불명의 서바이벌 게임
21세기 후반 마침내 인류는 화성에 인간을 보내는 데 성공한다. 반세기에 걸친 테라포밍으로 화성으로의 대 이주가 시작되었지만, 모두가 화성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과 명예를 가진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구에 남아야 하고, 심지어 화성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지구는 자원과 식량을 제공하는 2등 행성으로 전락한다. 결국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곳곳에서 폭동을 일으킨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화성의 진일보한 인공지능의 산물, 가상현실게임 ‘미르난데’다.
나노 슈트의 목 접합부에서 마스크가 자라나 입과 코, 귀, 눈을 차례로 가렸다. 주위가 온통 새카맸다. 이제 미르난데 세상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피 냄새를 맡고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불현듯 전율이 일었다. 온몸이 긴장하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27쪽)
미르난데의 참가자들은 인공지능이 자율 구동하는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 각자의 미션을 완수하고 그다음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참가자들의 목표는 단 하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화성 이주권’이다. 결국 미르난데는 지구인의 반발이 거세지자 화성 정부가 내놓은 회유책인 셈이다. 가장 쉽고 빠르게 반발을 잠재우는 한편 화성에 필요한 젊은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화성 정부는 미르난데의 참가 자격을 1020 세대에 국한한다. 그렇게 미르난데 우승은, 모든 젊은이의 꿈과 희망으로 자리 잡는다.
서바이벌 데스 게임의 형식과 지구의 식민화라는 SF적 설정,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교양적 요소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무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재미있게 읽힌다. _이은지 문학평론가
어느덧 우리에게 친숙해진, ‘화성으로의 이주’라는 소재를 두고 작품은 가상현실게임이라는 새로운 관문을 제시한다. 희망이 필요한 청년들의 서바이벌, 이것만으로도 강한 흡인력을 지닌 서사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작품은 미르난데라는 가상의 세계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선사한다. 그리고 바로 그 세계 속에서, 특유의 신비롭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진가를 발휘한다.
역동적인 서사, 매력적인 캐릭터
K-영어덜트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작품 속에서 미르난데를 설명하는 캐치프레이즈는 ‘세상 모든 이야기의 세계’다. 표현 그대로 미르난데 속에 등장하는 여러 세상에서는 독자를 사로잡을 강렬한 액션과 판타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대표적인 메타포가 다수 등장한다. 어디까지나 게임이지만, 황폐화된 지구보다 더욱 현실처럼 와닿는 미르난데의 시공간이 게임에 참가한 인물들은 물론 독자에게까지 전달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 없는 곳으로 유인해야 해요!”
나는 건물 사이를 날아 아이스릴 뒤로 향한다. 아이스릴의 머리 뒤에서 날갯짓하다가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발톱을 세워 눈을 공격한다. 아이스릴이 움찔하더니 냉기를 쏟아낸다. 나는 빠른 날갯짓으로 물러나 도망친다.
다행히 아이스릴이 나를 쫓아온다. 그의 냉기에 얼어붙어 떨어질까 두렵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내가 시간을 버는 사이 용사들이 전열을 가다듬는다. 나는 사람이 없는 강으로 아이스릴을 유인하면서 속도를 늦춘다. (101~102쪽)
긴박함 넘치는 게임 속 세상과 더불어 작품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인물들이다. 화성행을 꿈꾸는 다른 또래들과는 달리, 주인공 한나는 화성에 줄곧 관심 없는 태도로 일관한다. 모두가 화성에 가기를 원할 때 홀로 ‘나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한나의 굳건함이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작품 내에서 도드라지는 다른 인물과의 차별성뿐만 아니라, 한나라는 인물은 기존의 영어덜트 작품 속 주인공의 전형과도 꽤 차이를 보인다. 한나는 필연적으로 실패와 고난을 겪으며 약간의 답답함을 가진 채 성장하는 전형적 인물이 아닌, 현실적으로 주위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하는 진취적인 인물의 면모를 보여준다. 냉철하게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쉽게 감상에 젖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의 영어덜트 독자가 공감할 만한 지점을 갖추고 있다.
서사의 진행 과정은 주인공 한나가 자신의 생을 능동적으로 개척해나가는 과정과 맞물려 나아간다. 감정 이입하지 않는 객관적이면서도 담담한 서술을 통해 이 작가가 자신의 인물을 흔한 방식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_정이현 소설가
이러한 캐릭터의 매력 외에도 『미르난데의 아이들』은 국내에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한국형 영어덜트 소설’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탄탄한 완성도를 기반으로 청소년과 성인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와 세계관을 만들고, 거기에 젊은 독자들에게 친숙한 대사와 극적이되 자연스러운 전개를 녹여 새로운 장르로서의 매력을 선사한다. 제1회 YA! 장르문학상의 수상작으로서, 앞으로 나오게 될 다양한 K-영어덜트 소설의 예고편으로서 『미르난데의 아이들』이 독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