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꿈? 아니, 아름답고 충만한 꿈!
아홉 구(九), 구름 운(雲), 꿈 몽(夢). 조선 후기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쓴 고전소설 〈구운몽〉은 한자 뜻 그대로 ‘아홉 구름의 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 인생이 푸른 하늘에 문득 생겨났다 사라지는 구름처럼 덧없다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인 주인공 성진과 팔선녀, 또는 양소유와 여덟 낭자를 가리킨다.
한겨레 옛이야기 30권으로 출간된 〈구운몽〉은 이 시리즈의 기획자이기도 한 건국대 국문과 신동흔 교수가 직접 집필했다. 인생이 한낱 덧없는 꿈이라는 주제를 가진 〈구운몽〉을 초등 중학년 대상의 옛이야기로 어떻게 풀어냈을까? 작가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인생은 한번 열심히 살아 볼 만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속세의 부귀영화를 누리던 양소유가 깨달음을 얻고 다시 부처님의 제자 성진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주어진 상황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열심히 사랑하고, 나라와 세상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누구보다 진하게 살았던 인물이 바로 양소유이다. 만약 그가 세상에서의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방황했다면 그는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거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구운몽〉을 읽어 본 대부분의 독자들처럼 어린이들도 양소유가 하루아침에 성진으로 돌아가는 대목에서 무척 아쉬워할 것이다. 작가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점에 선 어린이들이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큰 꿈을 가지고 한바탕 열심히 살아 보는 게 정답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야 인생이 허무한 것인지 또는 아름답게 빛나는 것인지 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맞는 벗들과 어울려 사는 행복
〈구운몽〉을 아이들에게 읽힐 때 주저되는 대목이 있다면, 바로 한 남자가 여덟 명의 여자와 인연 맺는 걸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 시대에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이었다 하더라도 어린이들은 한 남자를 바라보며 사는 여덟 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작가는 이와 관련해, 그 여덟 낭자는 양소유라는 한 남자를 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로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양소유까지 모두 아홉 명이 좋은 친구가 되어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 또한 부러운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는 ‘관계 맺기’의 중요성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린이들이 큰 꿈, 아름다운 꿈을 꾸며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들의 앞날에 여덟 명이 아니라 여든여덟 명의 아름다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구운몽〉은 꿈과 현실이 교차되는 몽자류 소설의 효시이며 고소설을 발전, 완성시킨 대표적인 작품이지만 종교적인 주제와 서사적인 특성 때문에 그동안 어린이들이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야기의 재미를 최대한 살리고 참신한 주제를 이끌어낸 이 책으로 어린이들은 색다른 고전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성 있는 그림체와 화사한 색감으로 한바탕 아름다운 꿈속 장면들을 연출해 낸 그림도 눈여겨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