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한 연결을 원해.
내가 진짜로 누구이고 네가 진짜로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소설이 다다를 수 있는 지고지순한 깨달음
아득히 먼 곳의 ‘너’에게 닿을 ‘나’의 진심
“집요함과 대범함이 느껴”지는 “세련되고 효율적인 구성”(은희경), 작품의 “전언과 감정을 훼손 없이 소중히 보관”(신형철)하고 싶어진다 등의 찬사를 받으며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 데뷔 당시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은 황여정의 세번째 장편소설 『숨과 입자』가 출간되었다. 황여정은 역사적‧사회적 문제를 예리한 눈매로 주시하며 비극으로 빚어지는 관계의 균열과 애틋한 정서를 아름답게 엮은 작품들로 주목받아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에 더해 일상적 개념에 변성을 일으키는 탄탄한 문장들로 삶의 진정성을 회복해가는 특별한 감동을 쌓아올렸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즉 삶의 본질을 잊은 채 살아가던 인물들이 생의 변곡점이 되어줄 인물과 맞닿아 이전까지와 다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과정이 인식의 지평을 활짝 열어젖힌다. ‘나’의 이야기가 마침내 모두와 연결되는 정교한 서사는 가슴속 깊이 따스하게 스며들며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내면은 텅 비었지만 남들 보기에 세련되고 산뜻한 ‘퍼스널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일상을 벗어나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이수’,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지쳐가다가 간절하게 닿고 싶은 존재를 깨닫게 되는 ‘이영’. 자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황여정은 삶과 개인, 연결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들의 삶 곳곳에서 이 찬란한 깨달음의 여정을 매개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서로가 견고하게 얽히며 감동의 영역을 넓힌다. “때로 타인을 통해 자신의 본질에 가닿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토록 잘 보여준 소설이 있을까.”(전성태, 추천사) 신중한 문체와 진중한 문제의식, 연결점이라곤 없어 보이는 인물들을 빈틈없이 엮어내는 섬세한 구성을 통해 우리는 머나먼 타인이라는 존재에, 흐릿하던 인생의 진면목에 한껏 가까워진다.
“그 모습은 어쩐지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는 듯했지.”
순도 높은 진실을 찾아가는 지극한 여정
쉼 없이 유행을 좇으며 일에 파묻혀 살던 광고 디자이너 이수는 어느 날 회사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겪고 지독한 번아웃 증상에 시달린다. ‘발전적’이라고 생각해온 지난 삶이 사실은 자신에게 전혀 충족감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수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그러던 중 동생 이영의 권유로 가게 된 포르투갈 여행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특별한 경험을 한다. 우연히 만난 아드리아나에게 요가를 배우며 표리부동한 삶에서 ‘철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수가 요가의 호흡에 집중하며 내면의 환희를 목도하는 장면은 경이로운 감동이 책장을 넘어 손끝에 생생하게 전해질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이수는 그렇게 이전까지의 수동적인 삶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다. 1부에서 전개되는 이수와 아드리아나의 이야기는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숨’에 대한 열망을 일깨우며 영혼의 강렬하고 궁극적인 ‘연결’로 묘사된다.
이러한 연결의 개념은 2부에서 동생 이영의 종교적 사유와 함께 더 멀리 뻗어나간다. 여기서는 ‘길병소’라는 인물이 고뇌를 함께한다.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길병소는 종교적 믿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이영이 일하는 기도원에 찾아와 이영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길병소와 대화하며 이영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곰곰 고민한다. 특성화고를 다니다가 현장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죽은 친구 승아. 이영은 분명 오래전 떠나보낸 승아에게 닿고 싶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영이 진정 원하는 것은 교회라는 믿음의 형식이 아니라 신에게, 승아에게 닿고 싶은 지극한 마음이라는 깨달음이 세차게 밀려와 긴 파장을 남긴다. 길병소는 이영에게, 이영은 승아에게 닿으며 그렇게 또 연결이 발생한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다.”
너와 나,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 경계를 허물며 확장되는 사유
『숨과 입자』에서는 껍데기만 요란할 뿐 내면은 앙상하게 마른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직업계고, 실업계고, 전문계고, 특성화고,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이름만은 진화를 거듭해왔지만 승아의 사고와 같은 심각한 제도적 문제점을 여전히 안고 있는 한국 특성화고 현실이 대표적이다. 신앙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믿음의 형식에 종속되어 믿음의 본성을 잊는 세태가 선연하게 묘사된다. 이수의 서사 또한 본말이 전도된 현대사회의 초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일하고 그럴싸한 겉모습을 연출하는 삶은 이수의 숨통을 조인다. 아드리아나와 요가를 만나 이런 껍데기를 벗고 비로소 편히 숨 쉬는 이수를 보며 우린 깨닫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SNS 게시물처럼 완벽하게 연출된 외양이 아니라고. 자신의 진심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타인과, 세계와 연결되는 경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감각이라고. 그렇게 삶의 불순물들이 날숨으로 날아가고 본래의 나를 이루는 것들이 들숨으로 채워진다.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 겉과 속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는 마침내 삶과 죽음을 거론하며 애도를 다룬다. 작중 인물들이 누군가를 애도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하지만 방법이야 어떻든 애도하는 마음, 간절한 기원에 본질이 있다. 그렇기에 개인 각자는 궁극적으로 애도를 통해 연결되고 확장된다.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현장에 있었단 이유로 죽은 승아와 현장에 없었단 이유로 살아남은 나의 경계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무수한 죽음과 사회적 참사를 상기시키며 황여정은 모든 죽음에 모든 삶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닿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너른 인식으로 우리를 이끈다.
“나는 누구일까.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의지이고 나 이외의 사람들의 의지일까. 당신은 누구일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개인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작가의 말) 『숨과 입자』는 이처럼 명확히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황여정은 사람과 사람,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관계를 파고든다. 끝끝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고 답이 존재한다는 확신마저 스러질지언정 방황의 걸음걸음까지 살뜰히 살피며 다시 나아간다. 독자에게 닿으며 완성되는 것이 소설이라면, 『숨과 입자』는 그 어떤 작품보다 독자들과 가까이 맞닿으며 무한히 확장되는 작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