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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에 시인이 산다


  • ISBN-13
    979-11-6919-255-2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한국문화사 / 한국문화사
  • 정가
    22,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0-2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이승규
  • 번역
    -
  • 메인주제어
    에세이, 문학에세이
  • 추가주제어
    시: 근현대 (1900년 이후) , 문학연구: 시, 시인 , 희곡: 고전, 20세기 이전 , 희곡: 근현대 (1900년 이후)
  • 키워드
    #에세이, 문학에세이 #시: 근현대 (1900년 이후) #문학연구: 시, 시인 #희곡: 고전, 20세기 이전 #희곡: 근현대 (1900년 이후)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5 * 215 mm, 264 Page

책소개

숲으로 가는 길

 

1·2부의 글은 문학 현장과 시집에 대한 에세이로, 몇 년 동안 대학 신문에 실었던 것이다. 마주칠 때마다 학생 기자들이 미안해했지만 사실은 내가 고맙다.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겪느냐에 따라 다른 글을 얻게 된다. 이제 보면 온전히 나 혼자서 쓴 것 같지 않다. 3부의 것은 주로 내 시에 관한 경위서 같은 글이다. 우연히 쓴 것만은 아니지만 다른 손이 한 것처럼 느낀다. 4부는 독서 모임 눈빛승마클럽과 책을 읽으며 썼다. 함께 모여 대화하던 그때그때의 햇빛과 공기가 글 안에 술렁인다. 
고맙다, 그날의 나뭇잎과 눈발, 그날의 따스한 눈빛들. 아직 내게 오지 않은 시와 빗방울, 빗방울까지.

 

2024. 10. 16.
백운대가 보이는 진관동에서

목차

시인은 왜 산으로 갔나

자다가도 일어나 가고 싶은(백석과 통영)

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이용악과 두만강)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정지용과 한라산)

숲속의 예술가들(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박수근, 백남준, 김수영이 살던 동대문 근처)

벌레의 시간에 귀 기울인다면(박완서의 현저동)

심장 밑에 감추어 둔 몇 줄(니시와세다 언덕에서)

우리들의 해방일지(이범선과 해방촌)

시가 뭐냐고 누군가 물을 때(김종삼과 정릉동, 길음동)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기형도와 소하동)

 

 

깎을수록 투명한 하나의 돛이 될 때까지

돌아오는 봄, 돌아오지 않는 사람(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의 〈산유화〉)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어서 너는 오너라(박두진 시의 의분과 신명)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김수영의 ‘온몸’)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변화와 정진으로서의 황동규)

무인도를 위하여(신대철 시인의 ‘산’)

 

 

냉기가 향기롭다

지금의 맨 처음

금강산에서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배후가 있다면

빛나는 소리

태백에서 왔다

북한산 이야기

몸부림치며 느닷없이 다가오는 산(백두대간 정맥 시집 『나는 흔들린다, 속삭이려고, 흔들린다, 귀 기울이려고』)

바닷가에서 온 시

 

 

슬프고 헛되고 아름다운지

꿈보다 해몽보다(『춘향전』의 점치는 봉사)

징그럽게 꿈결같이(이상 「봉별기」)

달빛 아래서라면(이태준 「달밤」의 성북동)

장수는 오지 않는다(최인훈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순금의 시, 변화의 목전(손필영 시의 행보)

살아남은 자가 살아 있다면(한강 『소년이 온다』)

열정과 선의의 청춘(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불멸과 절멸(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악당의 품격(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

연극이 끝나면(후안 마요르가 『맨 끝줄 소년』)

잘 되고 있다는 실감(찰스 부코스키 『여자들』)

인간으로 남는 길(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버스가 서지 않을 때(가오싱젠 『버스 정류장』)

장차 왕이 될 거라니!(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무의미와 혼돈의 재판정에서(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랑과 선(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난 혁명가가 될 거야(다자이 오사무 『사양』)

먼지처럼 일어서리라(미국의 시, 여성의 시)

저녁이 하루 중 가장 좋은 때(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죽음의 독백을 위하여(어니스트 헤밍웨이 「킬리만자로의 눈」)

펜을 떨어뜨리다(제인 오스틴 『설득』)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황주와 돼지간볶음(위화 『허삼관 매혈기』)

희극일까 비극일까 벚나무(안똔 체호프 「벚나무 동산」의 노동하는 새 주인)

본문인용

자다가도  일어나 가고 싶은

백석과 통영

 

 


통영에 가보셨나요?
가본 사람도, 안 가본 사람도 그리워지는 통영. 통영은 사람과 가까운 바다입니다. 바다로 쏟아질 듯한 벼랑에 수평선으로 창을 낸 집들이 빼곡하고, 새벽부터 강구안에 배들이 흥성거립니다. 어시장에 소란스레 퍼덕이는 생물들 틈에서 자기도 모르게 흥이 차오릅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준말인 통영에 충렬사와 세병관이 버티고 있고 이순신이 수군을 지휘하던 한산도도 지척이지만, 현대에 들어 통영은 예향이라 이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을입니다. 유치환, 윤이상, 김춘수, 박경리가 태어나고 이중섭, 백석이 거쳐 간 곳이기 때문이에요. 
백석은 평안도 사람인데 친구를 따라 통영에 처음 갑니다. 당시로선 머나먼 길이라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가다 삼랑진에서 갈아타고 마산에 내려 뱃길로 통영에 들어섰어요. 백석은 〈통영〉이란 시를 두 편 썼습니다.

 

녯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녯날이 가지않은 천희(千嬉)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나는 비가 나렸다

- 〈통영〉


1935년 12월 『조광』에 발표된 이 시는 획기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를 사랑시로 보는데요, 화자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한 군데도 없어요. 한 여성을 처음 만난 시공간의 감각만 남아 있어요. 비 오는 여름의 바닷가이고, 조개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이상하게 고요한 저녁이었겠죠.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가슴만 두근대는 순간. 비릿한 비 냄새와 마루방에 떨어진 생선 가시조차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은 그 시간을, 사랑 아닌 다른 어떤 말로 떠올릴 수 있을까요?
안도현이 쓴 『백석평전』에 이 시에 얽힌 사랑 이야기가 서술되었는데 그 사실에 의구심이 드는 이유는, 이 시가 아무리 감정을 절제하고 이미지만 선명하게 표현한 시라 해도 그 사람에 대한 묘사가 전무하고 감정을 투사한 사물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추측하건대 만나긴 했으나 그 사람과 깊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 없고, 전해 들은 것밖에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겠지요. 심지어 마루방에서 마주친 대상이 실제 인물과 연관이 없을 수도 있어요. 소설과 마찬가지로 시 역시 시인과 화자가 다를 수 있는 허구의 장르니까요. 무엇보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통영의 처녀는 세상의 모든 남자가 바라 마지않는 여성상일 텐데요. 한 번 생각하면 낭만적이고 감동적이지만 두 번 생각해 볼 때 문제는 그 지고지순한 사랑을 1930년대 남자인 화자도 똑같이 바칠 수 있느냐일 겁니다. 통영 출신 유치환의 시 구절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행복〉 부분)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역시 좋은 사랑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상대를 드높이고 자신을 끝도 없이 낮추기 때문입니다. 
이 시가 한 남자의 로망을 드러낸 것이고 약간의 체험과 풍부한 상상으로 쓰인 것일지라도, 누군가를 운명처럼 만난 사랑의 순간을 독특한 감각적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헤르만 헤세가 산문 「방랑」에서 그린 예술가의 초상이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백석도 사랑이 너무 많은 시인이었습니다. 뭇 대상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려 하고 거기에 한없이 애정을 보탰으니까요. 

서평

우박이 세차게 내렸다. 피할 데 없는 산 정상에서 벌을 받는 것 같았다.
뜀걸음으로 거제수나무 숲으로 갔다. 

거제수나무가 팔을 벌려 숨겨 주었다.
거제수나무 아래서 나는 내가 아닌 무엇이 되고 싶었다. 

되도록 인간이 아닌 개미, 풀, 새....
차라리 거제수나무 곁에서 거제수나무처럼 고요히, 어디서부터 내가 걸어왔는지 생각해 볼까. 

나를 나이게 하는 인간의 첫 목소리를 떠올려 볼까. 

컴컴한 땅, 높다란 나무에 다시 흰빛이 내릴 때까지. 

저자소개

저자 : 이승규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 현대시를 전공했고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학술서로 『김수영과 신동엽』, 시집으로 『냉기가 향기롭다』 등을 냈다.
빗방울화석 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백두대간 공동시집 『혼자 걸어도 홀로 갈 수 없는』, 정맥 공동시집 『나는 흔들린다, 속삭이려고, 흔들린다, 귀 기울이려고』, 시선집 『야고』 등에 참여했다.
안녕하세요. 한국문화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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