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따뜻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끝났다. 해가 지는 시각이 앞당겨졌고, 무더위가 물러난 자리에는 찬 바람이 분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취약한 이들에게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괴로운 계절이지만, 겨울은 더더욱 그렇다. 겨울을 살아가려면 온기가 필요하다. 옷이나 담요, 난로, 무엇보다도 따뜻한 집이. 하지만 어떤 집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도 온기 없이 싸늘하다. 난방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일러를 돌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보일러가 설치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은, 아예 집이 없을 수도 있다. 전쟁이 일어나 살던 집을 떠나와야 했던 사람들, 기후 위기로 인해 돌아갈 집마저 잃은 사람들은 텐트에서 지내고 있다. 겨울이 닥치면, 그들은 이제까지 겪었던 모든 겨울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겨울을 맞아야 할 것이다. 비단 물리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의미에서도.
이 책은 바로 그들을 위한 책이다. 태풍이 덮쳐도 튼튼한 지붕과 벽으로 이루어진 집이 필요한 이들, 따뜻한 불 앞에서 몸을 녹이는 시간이 필요한 이들, 한마디의 온기 어린 말이 필요한 이들.
세상이 두렵다고 느껴질 만큼 추운 계절,
당신을 따뜻하게 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유엔난민기구는 한 가지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샌드맨』 시리즈에서부터 아마존·BBC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호평받았던 『멋진 징조들』,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등을 수상한 『신들의 전쟁』 등 세계적인 작가 닐 게이먼이 글을 쓰고, 열두 명의 그림 작가가 거기에 그림을 덧대 책으로 엮는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 싶었다. 그들이 따뜻하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될 자금도.” (실제로 이 책의 판매 수익금은 유엔난민기구에 돌아간다.)
닐 게이먼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을 따뜻하게 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답변을 보냈다. 겨울밤에 후후 불어 가면서 먹는 구운 감자, 쌀쌀한 아침 공기를 피해 파고드는 이불 속, 난로 앞에 모여 앉아 함께 코코아를 마시는 시간, 몸을 맞대고 잠든 동물들 등 자기만의 따뜻한 기억을 담아서. 그중 많은 수가 추위를 함께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뜻함을 느끼려면 추위가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추위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따뜻한 것을 찾고, 그것을 찾는 순간 안온함을 느낀다. 부드러운 털실로 짠 목도리를 두를 때,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한 모금 삼킬 때, 찬 바람이 부는 바깥에서 집 안으로 들어올 때. 따뜻하다는 감각은 결국 안전하다는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때 느낄 수 있는 온기처럼.
그렇게 모인 기억들을 닐 게이먼은 시로 엮었다. 물리적인 추위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추위 속에 던져져 있는 이들에게 온기가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표지 그림을 그린 올리버 제퍼스를 비롯해 『딸기는 빨개요』 『나비가 팔랑팔랑』 등을 쓰고 그린 페트르 호라체크, 『뒤죽박죽 땅』 『땅끝 연대기』 등 여러 책에 그림을 그린 크리스 리들, 『우리 가족 만나볼래?』를 쓰고 그린 율리아 귈름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림 작가에서부터 실제로 난민 텐트에 살았던 그림 작가까지, 다양한 국적과 인종과 배경을 가진 그림 작가 열두 명이 온기를 더하기 위해 손을 모았다. 페이지마다 각기 다른 그림 작가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림을 넘겨보며, 세상이 더 환하고 다정한 쪽으로 나아가는 데 함께 손 모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