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단순하지 않다. 고통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불가능한 임무를 떠맡는 것은 아니다. 겸손은 우리가 늘 비참함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온유함은 영적 패배주의와 다르다._22-23쪽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다수의 학위나 30시간의 하루, 초인적인 조직 운영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을 충분히 신뢰하여 모든 일에서 그분과 동행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전부다._41-42쪽
참으로 경건하려면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는 모든 일을 철저히 깎아내려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다._59쪽
이번 장을 시작하는 데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나는 누군가가 이번 장을 읽고 '와, 이 책 너무 좋아. 매일 기도와 성경 읽기는 이제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절대 없기를 바란다._70쪽
신약성경은 우리가 모두 외향인이나 대화에 능한 사람, 낯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_81쪽
거룩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다들 자신이 거룩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도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더 기도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든다. 전도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마다 불순종했다는 생각에 당혹해한다._83쪽
복음의 탁월한 영업사원이 되는 그리스도인은 일부겠으나,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기뻐한다._85쪽
그렇다. 낙타는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부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다(딤후 6:10).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부유한 그리스도인, 착하고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요정만큼 드물지 않다. 우리는 복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우리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이 진실하게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향한 새 마음, 사람들을 향한 새로운 관대함, 돈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 누가를 안내자로 삼으면, 인맥이 좋고 잘 사는 사람들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는 사례를 많이 발견하게 된다. 물질적 풍요와 영적 풍요는 공존할 수 있다._107쪽
그런데 산상설교는 불가능한 기준 아닌가? 우리 중 어느 누가 결코 염려하지 않고, 결코 음욕을 품지 않고, 결코 성내지 않고, 결코 거짓말하지 않고, 결코 위선자가 되지 않고, 언제나 원수를 사랑하고, 언제나 황금률을 따르고, 언제나 하나님만을 섬긴단 말인가!_137쪽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을 통해 훌륭한 일을 하실 능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우리는 감독관 같은 하나님이 다른 쪽을 보시기를 바라며 땅바닥만 바라보고 살 필요가 없다. 정반대로, 우리는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기쁨이 되는 일을 친히 행하시기 때문이다(히 13:21)._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