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공원》에서 그랜트 일행이 탈출에 성공한 뒤, 바다 위를 나는 헬리콥터의 창문 너머로 그랜트는 공룡에서 진화한 것으로 여겨지는 새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공룡을 무리하게 되살리지 않더라도 현대에도 공룡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에 대한 과신과 생명윤리에 반하는 행동에 대해 대사가 아닌 간결한 영상으로 경종을 울리는 숏이다.
오프닝 영상은 순광을 사용하여 의상의 색을 선명하게 나타내거나, 역광을 이용하여 댄서들의 실루엣을 강조함으로써 춤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두 번째 숏의 마지막부터
세 번째 숏의 마지막까지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두 번째 숏에서 여러 명의 댄서가 파란색 트럭 뒤에서 춤추는 장면(3분13초~)에서는 순광으로 촬영하여 의상의 색을 선명하게 나타냈다. 그러다 세 번째 숏으로 바뀌면, 역광이 댄서들의 실루엣을 포착하면서 역동적인 춤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마지막은 카메라가 180도 회전하면서 빛이 역광에서 순광으로 바뀌고, 다시 선명해진 영상이 《라라랜드》의 타이틀을 장식한다.
이 같은 소리 연출의 탄생은 당시 사용했던 카메라와 관련 있다고 생각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로케이션 촬영에서 빠른 속도로 촬영하기를 원하는 감독들이 많아졌다. 핸드헬드 촬영과 액션이 많은 《프렌치 커넥션》도 마찬가지다. 이때 자주 사용된 카메라는 소형 경량(5.8kg) 모델인 Arri 35II이다.
지금은 영화 촬영현장에서 대사를 동시 녹음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Arri 35II는 작동음이 커서 동시 녹음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후시 녹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렌치 커넥션》의 효과음 사용 방법은 영상에 소리가 없는 상태에서 소리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인비저블맨》에서는 의도적으로 목적을 가지지 않은 팬이 사용되었다. 세실리아가 에이드리언의 집을 탈출하기 전에 옷을 갈아입는 신(6분 53초~)이다. 카메라는 세실 리가 있는 곳(A)을 줌 아웃으로 보여준 다음, 서서히 왼쪽으로 팬하여 목적지인 긴 복도(B)를 비춘다. 관객에게는 B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것일 테지만, 관객의 눈에는 복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는 이어서 다시 오른쪽으로 팬하여 세실리아(A)를 비춘다. ‘무언가가 존재하는 듯 느껴지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목적을 가지지 않는 이 팬은 《인비저블맨》이 소름 끼치는 영화임을 암시한다.
《기생충》의 무대는 계단과 언덕 등, 높낮이가 있는 거리다. 이 지형 또한 빈부의 차이를 표현하는 데 사용했다. 길을 올라가면 박 사장 가족이 사는 저택이 나타난다. 기우가 처음으로 그 저택을 방문했을 때,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과 넓고 푸른 하늘, 그리고 잘 손질된 잔디밭을 마주한다. 비좁은 땅에 집들이 다닥다닥 밀집된 반지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부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반면, 길을 내려가면 기택네 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이 나타난다.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 기택네 가족은 박 사장 집에서 도망쳐 나와 홍수로 침수된 반지하 집으로 돌아간다. 길을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풍요로운 생활을 손에 넣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뿐, 자신들의 진짜 모습과 사는 곳이 어디인지를 자각하게 된다.
《토이 스토리 4》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여자아이 인형 개비개비는 아이들이 자신을 데려가지 않는 이유가 몸에 내장된 소리 장치가 망가진 탓이라고 여겨, 우디의 몸속에 든 소리 장치를 빼앗으려 한다. 세컨드 찬스 가게 안 어두컴컴한 뒷마당을 무대로 개비개비가 우디에게 바싹 다가서는 신(67분 20초~)을 보면 개비개비를 비추는 조명이 세 번 바뀐다.
처음에는 다소 어두운 파란색 계열의 톱 라이트를, 다음에는 더 어두운 초록색 계열의 톱 라이트를 사용하여 개비개비를 호러 영화에 나올 법한 괴물처럼 표현했다. 조명이 크게 변화하는 시점은 개비개비가 우디에게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이들의 장난감이 될 기회를 얻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할 때다. 연한 적갈색 계열의 부드러운 조명이 개비개비를 정면에서 밝게 비춘다. 더불어, 처음에는 에코 효과를 넣었던 개비개비의 목소리를 일반적인 목소리로 바꿔 개비개비를 마음씨 좋은 인형으로 연출했다. 우디와 관객은 악역이었던 개비개비에게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1917》은 연결할 숏의 개수가 적으니 편집이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편집을 맡은 리 스미스는 촬영현장에서 떨어진 런던에서 매일 영상을 큰 스크린에 영사해 확인작업을 했다. 촬영을 마친 모든 숏 중에서 ‘배우가 움직이는 리듬’, ‘카메라가 움직이는 속도’, ‘카메라와 배우의 거리’ 등을 고려했을 때 어느 숏이 바람직한 품질의 영상인지를 빠르게 판단하여 다음날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사용할 숏을 결정했다. 사용하고 싶은 숏에 문제가 있을 때는 모핑 등의 디지털 기술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숏의 사용 가능 여부도 판단했다. 도저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다시 촬영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다.
《뮌헨》에서는 카메라와 인물의 움직임이 적고, 인물 개개인이 아닌 그 무대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을 때 시네마스코프 범위를 사용했다. 이 줌 아웃 화면을 살펴보면 큰 창문을 통해 햇빛이 비치는 응접실에서 수상이 아브너를 친근하게 맞이하지만, 주변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험상궂은 군인과 고위관료들이 앉아 있다. 온화한 분위기와 무거운 분위기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표현했다.
《양들의 침묵》에서 피해자 여성들은 살해된 채 알몸으로 유기된다. 그런데도 알몸이 인상에 남지 않는 이유는 여성의 알몸을 정면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FBI 아카데미의 한 방에서 클라리스의 시점 숏으로 피해자 여성들의 사진을 비출 때(5분 25초~)도 빌에 의해 가슴의 피부가 벗겨진 사진을 사용해 알몸이라는 인식을 최대한 받지 않도록 했다.
《폭력의 역사》의 오프닝은 4분간의 롱 테이크로 이루어진 숏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모텔에서 나온2 인조 강도의 움직임을 크레인과 이동차를 사용해 따라간다. 이 숏은 강도들과 카메라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는 표정을, 멀어졌을 때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어 렌즈 하나로 다양한 크기의 숏을 비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블로킹과 카메라 워크를 조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숏이다.
《분노의 도로》에서 100km 이상의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과 오토바이를 의도한 대로 영상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세컨드 유닛의 감독이자 스턴트 코디네이터인 가이노리스와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스턴트 드라이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 노리스는 《매드 맥스》(1979)에 출연했던 스턴트맨 중 한 명이다. 그만큼 《분노의 도로》에 참여할 때 특별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차량의 움직임이 매우 불안정한 사막 위에서 카메라 차량과 촬영 차량을 의도된 위치로 운전했다. 이는 카메라맨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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