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자 정경영, 작가 황선우 추천
클래식이라는 광대한 세계에서 자기만의 좌표를 스스로 만든,
젊은 음악가 11인의 이야기
지도를 보는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일 것이다. 현 위치, 목적지, 경로. 일도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러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음악가라는 길을 택한 이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목적지를 정해놓고 살아간다. 경로도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대단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그렇기에 그 자신은 외롭고 불안하기도 하다. 꽤 그럴듯한 음악가가 되어도 무대에 서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주어지지 않고, 무대가 주어져도 더 오래, 더 자주 연습실에 스스로를 가둔다. 역시 그렇기에 외롭고 불안한 음악가의 세계다.
『아무튼,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으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고유한 시선을 보여준 작가 김호경은 그 연습실 문을 두드려 젊은 예술가 11인을 만났다. 피아니스트 지유경, 지휘자 겸 작곡가 윤한결, 비올리스트 이한나, 오페라 코치 김지희, 퍼커셔니스트 이원석, 기획자 겸 작곡가 문종인, 플루티스트 유우연, 음악비평가 신예슬, 피아노 테크니션 이세호, 크리에이터 겸 작곡가 나래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대표 박주영.
우리가 아는 음악가의 경로를 충실하게 밟아 정진하고 있는 이도 있고, 일찍이 자기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른 길을 개척한 이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꿈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묻고 나눈 인터뷰를 담았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로 한 그 마음에 대해, 그 기쁨과 어려움에 대해 듣고 싶었다. 연습실 문을 닫고 나와서도 도무지 닫히지 않는 머릿속 영감에 대해, 성취와 만족과 좌절과 포기 그 모든 게 불분명한, 마음처럼 쉽지도 않은 음악가의 일상에 대해 묻고 싶었다. 일, 꿈, 삶이 온통 뒤섞인, 초심자-마스터 사이의 어느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
자신만의 이상을 품고, 결정적인 무대를 꿈꾸며, 하루하루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성실히 챙겨가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 예술가들과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긴 이야기 속에서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만한, 응원의 말들이 발견되기를 바란다.” _프롤로그, ‘○○○ 음악가 되기’
당신을 나타내는 ○○○은 무엇인가요
자기 앞의 수식어를 스스로 찾아 빈칸을 메운다는 것
제목으로서는 다소 모호하게 혹은 도발적으로 ○○○, 공란을 넣었다. 어쩌면 이 빈칸을 스스로 채워 자신이 어떤 음악가인지 만든 과정이야말로 이 책에 담고자 한 요체다. 그리고 이 음악가 11인이 찾은 자신의 수식어는 성공의 비결이 아닌 저마다 부딪힌 난관과 그 해결 방식에서 비롯한다.
“이 책의 젊은 음악인 열한 명에게도 저마다 눈부신 출발이 있으나, 내게 훨씬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이후의 전개와 위기다. 이들이 어떤 음악인이 되는가를 결정짓는 요소는 재능만이 아니다. 자본과 시간과 체력의 한계 안에서 부딪치는 어려움과 자기만의 해결 방식이다. 그 진지한 모색과 치열한 탐험이야말로 각자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결국은 눈부시게 만든다.” _황선우 추천사 중에서
열 살 무렵 비올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이한나는 예중-예고-음대-유학.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탈락자가 속출하는 그 어마어마한 과정을 거치고 나야, 이제 시작이다. 예술이라는 위대한 세계에 압도당하는 대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 꺾이지 않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고 연습하고, 연주한다.
오페라 코치 김지희는 예기치 않은 질병으로 연습도 공부도 할 수 없던 때, 음악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3년 넘게 일주일에 한 편씩, 만 명 넘는 독자가 기다리는 〈어쿠스틱 위클리〉를 발행하고, 다시 오페라 코치로 복귀한다. 음대 시험장에서 ‘아이 러브 뮤직’이라며 울먹이던 어린 시절을 건너 이제 행복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을 스스로 찾은 뒤였다.
‘즐거운 방식으로,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플루티스트 유우연도, 비평이 사라진 시대에 음악을 글로 기록하는 신예슬도, 이 책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려준 11인 공히 일과 꿈과 삶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그것을 나름의 비율로 포갠 채로 살아가는 방식을 체득한다.
“지금은 음악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 끝은 결국 비슷하더라고요. 저는 제 안에 여러 생각과 감각을 밖으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걸 제가 가장 잘하는 음악으로 하기로 마음먹은 거죠.” _플루티스트 유우연
“어렸을 때 관심사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 못하고 너무 산만하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단점이 오히려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_크리에이터 나래솔
“그런데 서운해하고만 있으면 뭐 해요. 그냥 관객을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최선을 다하고, 다음 무대가 생길 거라 믿으며 지낼 뿐이에요.” _피아니스트 지유경
다정하고 단정한 글로 포착한
젊은 음악가의 초상들
_연습실의 유령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일
_오롯이 나일 수 있을까, 어떤 모습이라도
_즐거움이라는 동력
_헤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_답을 찾던 소년은 답이 없음을 노래하고
_질문도 답도 더 모호하고 복잡하게
_감지하고 모방하고 창조하며, 자유롭게
_음악이 떠나간 자리에 남아
_1밀리미터만큼의 절망과 도전
_자기만의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앨리스
_클래식 음악으로 들어가는 다른 문
각 인터뷰의 제목 또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 젊은 예술가들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태도들은 다정하고 단정한 대화로 펼쳐지고, 작가는 농밀한 언어로 이 말들을 기록하고, 정수를 각각의 제목으로 붙여두었다. 작가 자신이 음악을 전공하고,음악을 글로 기록하는 일로 경로를 바꾼 뒤 음악감상을 연구하고 대중음악의 가사를 쓰는 등 음악의 세계 안에서 치열하게 모색하고 분투하는 사람이기에 음악가와 독자 사이에서 깊이 있는 공감을 연결한다.
자칫 선언처럼, 정답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주는 건 명쾌한 해답이 아니라 반짝거리는 힌트 혹은 잔잔한 은유다. 그리고 그 힌트와 은유를 받아들인 채 빈칸을 뒤로 옮겨도 좋을 것이다.
즐거움이라는 동력으로 전진하는 ○○○, 자기만의 이상한 나라를 만드는 ○○○, 답을 찾는 대신 답이 없음을 노래하는 ○○○, 음악이 아니어도 꿈과 일과 삶의 적정한 교집합을 찾는 이들이라면 이 책이 보탬이 되어줄 것이다.
“반짝였던 순간은 반짝인 대로, 초라했던 기억도 그것대로 모두 짊어지고 지금 하는 일을 성심성의껏 굴려가야만 한다. 언젠가는 깊고 탄탄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거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