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먹거리 생산이 처한 ‘위기’는 다양한 원인이 지목되고 있다. 농촌과 농민의 빈곤, 기업농과 농식품기업이 지배하는 생산과 유통, 단작과 외부 투입재로 대표되는 관행농업이 야기한 토양 및 수질 오염, 그리고 기후 변화 등이다.
진보적인 농생태학자로 손꼽히는 두 저자가 함께 쓴 《생태농업, 과학과 정치―세계 농식품체계에 대항하는 생태농업운동을 위한 메시지》는 이런 위기 앞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농법/농학이자 동시에 정치적․사회적 운동으로서 ‘생태농업agroecology’을 제시한다.
생태농업으로 충분하다
이 책은 서장을 비롯해 여섯 개의 장에서 생태농업의 원리와 역사를 짚어보고, 생태농업을 확산하기 위한 증거와 실천을 제시한 후, 생태농업이 주류 기구와 자본에 포섭되지 않기 위해 정치적 운동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먼저, 서장 ‘기로에 선 생태농업’에서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현재의 기업먹거리체계를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실마리를 생태농업이 제공함을 전제한 후, 최근 국제기구나 정부기관 등 주류 기구들에 의해 생태농업이 기업먹거리체계를 연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위기에 처해 있음을 밝힌다. 생태농업이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틈새시장 정도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1장 ‘생태농업의 원리’에서는 생태농업이 전 세계 농민과 선주민 등이 실천해온 전통적 토착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영농방식이며, 혼작이나 간작, 혼농임업, 경축순환, 피복작물 등을 활용해왔음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생태농업이 특정 농법이나 기술이 아닌, 지역의 생태계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원리’임을 명확히 한다.
제2장 ‘생태농업 사상의 역사와 현재’에서는 생태농업의 기초를 이루는 다양한 연구와 실천을 소개한다. 초창기의 농생태학은 생태학과 농학에 기반했으나 사회과학과 결합하면서 ‘생태농업운동’으로 정립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농민의 창의성과 주도성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또한 유기농업, 공정무역, 에코농업, 에코페미니즘 같은 대안농업의 아이디어를 생태농업과 비교하는데, 외부 농자재에 대한 의존도가 관행농업과 별반 다르지 않은 관행적 유기농업에는 매우 비판적인 반면, 에코페미니즘이 생태농업의 과정에서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제3장 ‘생태농업을 뒷받침하는 증거’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각국에서 이루어진 영농체계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생태농업이 고투입체계에 비해 생산성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점을 밝혔다. 이 장에서는 농민농업의 장점에 관해서도 다양한 사례로 조명하면서 생태농업에 기반한 영농 형태가 농업․농촌의 회복력을 높임을 보여준다. 이는 농업과 먹거리에 관련된 권력의 변화 없이는 먹거리의 생산 증가만으로 기아가 완화될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생태농업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제4장 ‘생태농업의 전파’에서는 이처럼 지속가능할 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유리한 생태농업을 어떻게 전파할 것인가를 다룬다. 저자들은 확산과 확충이라는 개념을 통해 생태농업의 전파를 위해서는 양적․지리적 확장과 공공정책이나 공적기관에 의한 지원의 제도화, 양쪽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생태농업의 전파를 가로막는 장벽을 지적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운동의 조직화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농민들의 자기조직화’가 이루어진 여러 사례를 통해 생태농업의 전파는 관행적 기술보급과 그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5장 ‘생태농업의 정치’에서는 기술중심적 생태농업운동이 아닌, 정치적 생태농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많은 주류 기구가 늦게나마 생태농업을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생태농업을 기술적 차원으로 협소하게 폄하하고 있으며, 생태농업이 가진 변혁적 잠재력에 주목하기보다는 기술적 선택지로 간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생태농업이 위협받고 있는데, 식량 위기와 기후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편으로 생태농업을 자본이 주도하는 체계 속에 편입하려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생태농업을 기술로 바라보기 이전에 원리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원리란 외부 투입재의 사용을 억제하고 대신 토양의 자연적인 비옥도, 타감작용이나 생물학적 조절과 같은 자연적인 과정을 이용해 농생태계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회복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두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농업이 주류 기구, 농식품기업에 의해 ‘포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본은 자신의 생산조건을 일시적으로 재구조화하면서 강탈을 통한 만성적 과잉축적 위기의 극복이라는 해결책을 생태농업을 포획함으로써 찾으려 한다. 관행화된 유기농업이 그 예다.
이런 저자들의 주장이 우리 농업에도 의미 있게 울릴 수 있을까? 옮긴이는 경영자적 농업만이 아니라 농민농업도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농업 생산이 불가능한 한국의 상황에서 저자들이 소개한 생태농업이 우리 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생태농업은 원리이며 사회운동이어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한다. 최근에 스마트 농업, 푸드테크 등 자본과 더욱 깊숙이 결합한 영농기술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정책에 힘입어 세력의 확산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이 주도하는 농업이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