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을 첨예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개인과 가족의 노력과 계층 이동성으로 극복하려는 한국인의 노력은 역사적으로 구축된 것이다. 농경사회, 산업화, 정보화, 선진국 진입을 한 세기가 걸리지 않는 기간에 압축적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달성하는 동안 생겨난 습속, 일련의 ‘성공 방정식’이 있지만, 더는 빠르게 성장하지 않게 된 사회에서 탈락자가 늘어나는 것도 분명하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표현되는 ‘피크 코리아’의 사정은 이런 사회적 열망 구조가 덫에 갇혀 ‘독’이 될 수 있음을 너무나 잘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디톡스’가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인 잉그리드 로베인스가 제안하는 ‘부의 제한선’이라는 렌즈는 우리 안에 있는 독을 빼는 데 큰 도움을 준다.
- ‘추천의 글’ 중에서
한국은 엄격한 시장 규제와 평등주의적인 사회적 규범들로 불평등 수준도 낮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타의 부유한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경제가 발전하는 동안 폭넓은 복지 국가 제도를 마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질병과 실업 등에 대해 대가족이 보험의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의 또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은 재벌이 경제에서, 또한 정치에서 차지하는 역할입니다.
1990년대 초 한국에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도입되면서 시장을 통한 불평등이 증가했고, 이 대목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 재벌입니다. 또한 재분배 정책이 약하고, 강한 복지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보험 메커니즘으로 기능하던 대가족이 해체되면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경제적 기적’ 시기를 특징지었던 희망이 사람들 사이에서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사회 지표들을 보면, 한국은 부유한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고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이 중 70% 이상이 이민을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출산율은 [2022년 현재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 습니다.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나는 부의 극단적인 집중화와 관련된 윤리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고, 몇몇 내용을 학술 논문으로 발표했다. 다행히 이 주제는 학계에서 묻히지 않고 다른 학자들의 더 많은 연구로 이어졌다. 극단적인 부를 10년간 연구하고 논의한 뒤, 나는 분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아무도 슈퍼 부자가 아닌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부에는 상한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이것을 부의 제한주의(limitarianism)라고 부른다.
-‘서문’ 중에서
사회가 모든 이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적절하게 제공한다면 각 가구는 의료, 주거, 교육 등의 비용을 감당할 목적에서는 돈을 덜 벌고 덜 쌓아두어도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사회가 적절한 금융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면, 가령 노년, 실업, 질병, 장애를 대비한 사회보험이 있다면, 각 가구는 은퇴할 때, 일자리를 잃었을 때, 병에 걸렸을 때, 장애나 만성질환이 있는 아이를 키워야 할 때 등을 위해 큰돈을 떼어놓아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공공재가 제공되고 기본적인 위험에 금융적 대비가 제공되는 사회에서는 불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부를 많이 축적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제대로 기능하는 복지 제도와 사회보장 시스템이 있는 사회에서는 다른 곳보다 부유선이 훨씬 더 낮을 것이다. 사회 안전망이 잘 작동하면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쟁여두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장 얼마나 많은 것이 너무 많은 것인가’ 중에서
빈곤과 달리 불평등은 도구적으로만 중요하다. 즉 불평등은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나쁘다. 불평등은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가져오고, 그럼으로써 낙인을 일으키며 사회적 응집을 저해한다. 불평등은 권력의 남용을 가져오고 지배층이 정치 과정을 장악하게 하며, 이는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에게 득이 되는 불공정한 정책으로 이어진다. 불평등은 기회의 평등을 저해한다. 불평등은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친다.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불평등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구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 도구적인 문제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아지는 것은 아니다.
-‘2장 극단적 부는 불평등을 심화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빈곤에 묶어둔다’ 중에서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유해하게 창출된 부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과정으로 만들어진 부에 정당성이 없다는 것은 학문적 논의까지 하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명백할 테니 말이다. 정치철학자들은 불평등에 대해 도서관을 다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연구와 저술을 했지만, 부정한 돈에 대해서는 딱히 논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정한 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는 도덕적 논증씩이나 필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정한 돈은 나쁘다. 끝! 부정한 돈으로 거부가 된 사람들은 적어도 윤리적이지 않게 행동한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3장 극단적 부는 부정한 돈이다’ 중에서
부자와 슈퍼 부자를 묶어주는 공통점이 여기에 있다. 자본 또는 재산이 계속 커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모두가 이런 방식의 자본 증식에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기 돈이 ‘증식’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 또는 자신이 평균적인 노동자가 받는 수준을 월등하게 뛰어넘는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그 역시 용인 가능하지 않은 정도의 불평등을 생성하는 불공정한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배 계급의 모든 사람이 다보스맨들처럼 적극적으로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려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 모두 그러한 사람들이 놓은 길을 따라 자기 계층의 부를 증대해주는 규칙을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정도보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윤리적 제한선인 100만 유로보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다보스 계급이 세계의 정치를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끝없이 재구성하는 데서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다.
-‘4장 극단적 부는 민주주의를 잠식한다’ 중에서
부의 축적은 종종 부도덕하고 범죄적인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거의 모든 경우에 부자들과 슈퍼 부자들은 애초에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없었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일으킨 피해(탈세도 포함해서)에 대한 보상은 너무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나아가 극단적인 부의 집중은 여러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또한 더 많은 돈을 축적하고자 하는 그치지 않는 추구는 녹색 전환을 방해하고 기후 재앙을 가속화한다. 하지만 이들의 막대한 부는 좋은 쪽으로 작용할 잠재력도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를 사용하려 하는 개인들의 손에서 그 부를 떼어낸다면 우리는 녹색 전환의 속도를 대폭 높일 수 있을 것이다.
-‘5장 극단적 부는 지구를 불태운다’ 중에서
상속받은 재산을 자신이 마땅히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상속으로 무엇을 얼마나 갖게 되는지는 단순히 운으로 정해진다. 당신이 수백만 달러를 상속받는다면 이는 운 좋게 슈퍼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재산에 대해 당신에게 도덕적으로 자격이 있다고는 어떤 의미로도 말하기 어렵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하거나 태어난 장소와 시대를 선택할 수 없다. 철학자들은 많은 주제에서 의견이 다르지만 상속받은 재산이 가질 자격이 없는 재산이라는 데는 일반적으로 일치를 보인다. 상속받은 사람이 그 부에 대해 어떤 노력이나 의사결정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장 천만장자, 억만장자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중에서
슈퍼 부자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잉여 재산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은 아주 많다. 그리고 그 돈을 가져와도 슈퍼 부자들의 후생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유의미하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이 약간 감소한다 해도 다른 이들이 얻을 막대한 이익과 공공재 제공에서 나올 이득으로 상쇄되고도 남을 것이다.
-‘7장 그 돈으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중에서
대부분의 보수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큰 정부’를 반대한다. 정부가 우리 삶에 너무 많이 간섭하고 있으며 우리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부당하게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얼마나 많은 부를 합당하게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 앞에서 이야기한 논거들로 반박된다. 우리가 평화롭고 효과적으로 돈을 벌게 해주는 시장은 정부 덕분에 구성될 수 있고 기능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갖게 되는 부는 현시대의 타인들, 그리고 과거의 사람들이 전해준 지식과 공동의 인프라에 의존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지금의 우리 사회보다 집합적 후생이 더 크고 불평등은 더 작은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 정부는 이것을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메커니즘이다.
-‘8장 자선은 해답이 아니다’ 중에서
오늘날의 사회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온갖 속임수와 기술을 사용해 우리를 무한한 욕망을 가진 자기중심적 소비자로 만든다. 우리를 그러한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존재, 주변의 다른 이들이 비참함에 고통스러워해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꼭 이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상상력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주술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면, 부자와 슈퍼 부자들도 포함해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훨씬 더 나은 삶이 있다.
-‘9장 부자들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다’ 중에서
부의 제한주의가 실현된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 이득을 볼 사람들이 그 전환에서 돈과 권력을 잃게 될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일단 이것을 인식하고 우리 자신을 현 상태를 바꾸는 쪽에 두기로 하면, 그다음에는 그저 일을 나누어 맡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압도적으로 보이던 것이 전체적으로는 압도적이더라도 더 감당 가능하고 다루어볼 만한 일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관심 영역에서 행동할 지점을 찾고 거기에 노력을 쏟으면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기술과 관심사와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일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집합 행동이 가져다줄 수 있는 에너지와 기쁨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영속적인 우정이 생겨나는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10장 우리 앞에 놓인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