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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밭 사람들, 그 후 20년

커피의 쓴맛이 시작되는 곳의 삶에 대하여


  • ISBN-13
    978-89-7682-879-8 (0380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그린비출판사 / (주)그린비출판사
  • 정가
    17,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0-21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림수진
  • 번역
    -
  • 메인주제어
    사회, 문화: 일반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사회, 문화: 일반 #커피 #노동 #라틴아메리카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10 mm, 312 Page

책소개

저자 림수진은 2001년부터 코스타리카 커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왔다. 『커피밭 사람들, 그 후 20년』은 2011년 출간됐었던 『커피밭 사람들』의 후속작으로서, 커피 생산의 최전선에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년 동안 이어진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저자는 커피 산업의 이면과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 책은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 그들의 삶이 녹아 있음을 상기시키며, 커피 생산의 사회적 측면을 고민하게 하는 감동적인 에세이다. 

목차

책머리에: 별일 아닌 듯 살아가는 커피밭 사람들, 그 후  7

 

프롤로그 | 오래전, 커피밭 사람들  19

몬타냐  19

커피밭 사람들  23

타라수  28

프레디 부부  36

페레스 셀레동  42

엘레나와 기예르모  45

그들의 이야기  47

 

제1부 | 도냐 베르타 이야기  51

타라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란  52

도냐 베르타의 마지막 봄  55

당부  58

커피 파이오니어  60

커피를 세상으로 실어 내는 일  65

도냐 베르타의 산호세  67

타라수에 서늘한 비가 내리면  69

도냐 베르타의 파라다이스  72

플로리다에서 사 입던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도냐 베르타의 속마음  75

막내딸, 쟌시  79

돈 나랑호  82

금빛 발자취  85

 

제2부 | 로사 가족과 파니 선생  89

대서양 연안에서 온 가족  91

이들 가족에겐 추위가 문제였다  96

아버지 디모데  98

엄마 로사  99

제세니아  101

오라비들  104

가장 디모데의 구직  106

로사의 절규  109

제세니아, 아니 에릭카  114

파니 선생  118

그녀가 감수해야 했을 시선들  120

토요일 저녁, 타라수 성당 앞  124

그들만의 술집, 주가  132

파니 선생의 딸  136

 

제3부 | 엘레나 가족 이야기  143

어서 부활절이 되었으면  147

다시, 또 하나의 슬픔  150

기예르모를 가둔 집  152

엘레나의 가게  157

가장 기예르모의 한턱  163

‘사고당한 것이 천만다행이지’ 167

엘레나의 내공  170

희한한 셈법  173

이 가족의 엥겔지수  175

어느 해, 엘레나의 생일  178

살림의 법칙  185

모터 바이크 쇼의 VIP 191

이들 부부의 꿈  193

아들 저스틴  197

 

제4부 | 안토니아 이야기  201

세상의 끝, 푸에르토 히메네스  205

남편, 산티아고  210

가족들  214

디에고  217

세일링의 애인  220

프레디의 우물  223

프레디 소식  225

자신이 유령 같다고 했다  227

세일링의 가족  235

 

제5부 | 세일링 이야기  239

세일링의 용기  240

오빠, 디에고  243

아빠, 프레디  247

 

제6부 | 그 후 20년  251

안토니아 가족 2023년  251

엘레나 가족 2023년  272

도냐 베르타 가족 2023년  290

프레디 2023년  295

 

에필로그: 커피와 여전히 닿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삶  305

 

본문인용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유명해진 타라수는 그야말로 커피의 고장이었다. 소읍에 불과한 이곳 타라수에서 생산된 커피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게다가 오랜 시간 유럽과 일본이 거대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와중에, 이곳 커피가 우리나라까지 간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귀한 커피일수록 여느 첨가물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선 불문율이었는데 정작 이곳 타라수에서 한평생 커피와 함께한 사람들은 헝겊에 걸러 내린 커피에 늘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어 마셨다. 도냐 베르타 역시 늘 당신의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혹은 허름한 식당이라도 식탁 위에 반드시 설탕통을 둬야 하는 곳이 바로 코스타리카였다. 굳이 뜨겁지 않아도 괜찮았다. 헝겊 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부어 내리는 와중에 식기도 했지만 식사를 위해 커피를 미리 만들어 주전자에 담아 두었으니 어지간해서는 뜨겁기도 어려웠다. 

오래전, 코스타리카에서 생산된 고급 커피를 모조리 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자국민에게 고급 커피 마시는 것을 금했던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이곳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 커피는 섬세한 취향을 좇는 기호식품이라기보다는 음식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을 먹듯 그들은 식사 때마다 커피를 마셨고, 힘든 일을 하며 노동주를 마시듯 일 중간중간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는 매 순간 주전부리 간식을 챙기듯 커피를 마셨다. 휴식을 위해서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도 커피를 마셨다. (53~54쪽)

 

 

로사의 남편 디모데는 아무리 봐도 가족들을 이끌고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가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늘 머리가 아파 어두운 축사에 갇혀 지내는 아내 로사에 비해 허우대와 차림새가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매일 같이 커피 수확 작업을 마치고 나면, 늘 단벌 외출복을 차려 입고 다운타운으로 나섰다. 애석하게도 타라수의 서늘한 날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름옷이었지만, 해 질 무렵의 추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들 가족에겐 타라수의 추위를 견딜 만한 옷이 애초에 없었다.

신사복 바지와 반팔 남방셔츠를 단정히 차려 입고 나서는 그의 모습은 빛도 들지 않는 축사에 남겨진 가족들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커피밭 일이 끝나는 오후가 되면 아픈 아내를 대신하여 축사 안의 일을 돌보거나 하다못해 땔 감이라도 마련하면 좋으련만, 그는 늘 한 벌뿐인 신사복 바지와 반팔 셔츠를 차려 입고 서늘한 다운타운으로 길을 나섰다. 어쩌면 그때가 그의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무지 아버지의 인물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아들들은 그렇게 길을 나서는 아버지를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감히 그를 따라나서는 자식은 없었다. (98~99쪽)

 

 

‘세쌍둥이’라는 상호를 걸고 연 가게가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게가 망한 이유로 기예르모 가족의 입을 핑계 댔다. 그들이 먹어 치우는 것이 그들이 파는 것보다 많았다는 것이 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안다. 걷지 못해 고립된 기예르모를 위해 가게를 내고 일 년 남짓 그 가게를 운영했던 시절이 이 가족에 게는 또 한 번의 호시절이었다는 사실을.

가게를 하는 동안 엘레나가 내게 여러 번 한 말이 있다.

“몬타냐, 가게를 해 보니까 참 좋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게다가 우리가 다른 가게에서 사 먹어야 하는 돈보다 훨씬 싼 돈으로 같은 것들을 먹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많이 안 팔려도 괜찮아. 여기 이 가게에 있는 것들은 다 우리가 먹고 쓸 수 있는 것들이니까.”

참으로 희한한 셈법과 경영 방식이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 저녁을 먹다가 가장 기예르모가 가끔이지만 호기롭게 감자튀김 한 봉지라도 쏠 수 있었으니, 그리고 때론 팔려고 냉동고에 얼려 둔 닭도 꺼내서 요리해 먹을 수 있었으니 언젠가 이 가족들은 세쌍둥이 가게 시절을 분명히 아름다운 시간들로 기억할 것이다. 망한 것이 아니라 세쌍둥이 가게 덕분에 그들 삶 가운데 한 시절을 아주 풍요롭게 보낸 것이라고,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173~175쪽)

 

 

지난해처럼, 이번에도 좁은 방에 세일링과 누웠다. 그리고 지난해처럼, 이번에도 세일링이 나를 부르곤 혼잣말을 이어 갔다.

자신이 유령 같다고 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 미국으로 간 아버지로부터 소식이 끊기고 속병을 앓던 엄마가 다시 코스타리카로 내려간 후 그녀는 자기 혼자 친척 집을 이리저리 전전하며 살았다고 했다. 오빠 디에고는 멀리 떨어진 농장으로 일을 가 더 이상 집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 살아가던 중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찾아왔다고 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엄마가 보낸 브로커였다. 그날로 그 남자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낯선 남자를 따라나서는 어린 세일링을 친척 중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그들 중 누구도 세일링에게 옷가지 한 벌 챙겨 주지 않았다. 세일링은 빈 몸으로 그 남자를 따라나섰다. 아니, 남자의 손에 이끌려 나섰다. 그 시절 세일링에게는 따라나서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230~231쪽)

 

 

그러다 불쑥, 이곳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튀어나왔다. 내가 “우리 이 집 위에 이층 올려서 같이 살자”라고 뜬금없이 말하니 기예르모와 엘레나가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방법을 모색했다.

엘레나의 집은 날이 더운 이곳 페레스 셀레동에서 큰 준비 없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별도의 현관 없이 통으로 벽을 세우고 그 안에 공간을 나눠 마루, 부엌, 방 두 개 그리고 화장실을 두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집을 짓는다. 큰돈 들이지 않고 지을 수 있는 집이다. 중천장은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함석을 얹으면 끝. 그래서 안전상의 이유로 모든 집에 이층을 올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데, 다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층을 올리는 것이 허용된다고 했다. 김이 샜다. “그럼 안 되는 거야?”라고 묻자 기예르모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즉답을 내놨다. “우리가 몬타냐 너를 입양하면 돼. 정신줄이 한 오라기 정도 빠진 딸로 입양하면 되는 거야.”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286~288쪽)

서평

그때 그 커피 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커피밭 사람들이 돌아왔다! ‘몬타냐’와 함께 

 

2001년, 박사학위 청구 논문을 쓰려고 어떤 소속도, 아는 사람도 없는 코스타리카로 혈혈단신 떠난 이가 있다. 바로 ‘몬타냐’ 림수진! (몬타냐는 저자가 코스타리카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산’을 뜻하는데, 이 이름에 얽힌 웃지 못할 사연은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변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우여곡절 끝에 코스타리카 하고도 타라수라는 낯선 곳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커피밭 사람들’. 그러고 나서 그는 『커피밭 사람들』(2011)이라는 책을 통해 거대이론이나 통계 저 바깥으로 까마득히 밀려나 있던 커피밭 사람들의 굴곡 많은 삶과 엘레나, 기예르모, 프레디, 안토니아…라는 이름들을 세상으로 불러냈다. 

 

숙련도는 고사하고 체력조차 받쳐 주지 않는 ‘불량노동자 몬타냐’였던 림수진. 그는 통계나 설문, 이론을 전혀 차용하지 않은 논문을 써 보겠다는 야심(!)에 차 무작정 커피밭으로 뛰어들어 커피밭을 삶의 근거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꼈다. 그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동안 자신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몹시 불안해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을 믿으며, 설령 망하더라도 잃을 게 별로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망해 봐야 기껏 2~3년 정도 인생길을 에둘러 가는 거야. 죽지 않고 살면 돼. 죽지 않고 살아 낸다면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야’라고 생각하며 커피밭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나갔다. 

 

 

코스타리카 커피밭의 불량노동자 몬타냐,

그가 기록한 커피밭 사람들의 20년 삶의 궤적!

 

처음에 림수진은 짧으면 1년, 길어야 2년이면 자신이 계획했던 일이 마무리될 거라 여겼다. 커피밭 사람들이 자신에게 선뜻 손 내밀어 주었을 때도 그는 그들의 삶을 살짝 엿보고 빠져나오려는 얄팍한 계산을 했다. ‘논문 쓸 만큼의 자료가 얼추 모이면 다시 여기 올 일이 없을 거야!’ 그러나 림수진은 그들의 이야기를 논문에 싣지 못했다. 논문에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모여 『커피밭 사람들』이 나왔다. 그리고 20년 넘게 커피밭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세상의 막장이라 불릴 만한 커피밭에서 림수진, 아니 몬타냐는 일을 잘하지도, 몸이 여물지도 못한 불량노동자였다. 그런 몬타냐를 위해 커피밭 사람들은 소박하나마 자신들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음식과 잠자리는 물론 자신들의 삶까지. 그리고 불량노동자 몬타냐가 해고될까 봐 수시로 전전긍긍 자기 일처럼 걱정했다. 림수진은 그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는 잠시만 있다가 돌아갈 사람이야. 내가 돌아갈 곳은 이곳 커피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요롭고 깨끗하고 안전한 곳이야. 이 고단한 삶은 잠시 잠깐의 각본에 의한 것이야”라고 그들에게 쉽게 고백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신뢰가 쌓였을 때 몇 번 사실대로 얘기했지만 그들은 도통 몬타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의 마음에 빚이 쌓였다. 그들에게 좋은 밥 한 끼를 대접할 기회를 엿봤지만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들은 떠돌이였다. 정들만 하면 헤어지기 일쑤였다. 힘들게 다시 만나더라도 금세 헤어져야 했다.

 

그래서 림수진은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더하여 세상이 그들을 좀 알아줬으면 해서, 그리하여 커피가 이토록 극진한 대접을 받는 세상에서 그들의 삶도 그랬으면 해서,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나가다 보면 세상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친절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커피에 대한 온갖 글이 넘쳐 나지만 

커피 따는 사람들 이야기는 여전히 드문 세상 

 

그런데 웬걸 갈수록 빚이 늘었다. 아무 때고 불쑥 찾아드는 몬타냐를 그때 그 커피밭 사람들이 한결같이 받아 주었다. 한없이 시린 삶을 살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몬타냐를 걱정하고 위로해 준다. 빚 갚자고 시작한 일인데 그들과 만날수록 빚이 는다. 그래서 림수진은 고백한다. 기왕 20년을 만나 왔으니 죽을 때까지 그들을 만나야 할 것 같다고. 신이 자신에게 허락하는 시간까지, 그리고 신이 그들에게 허락하는 그 시간까지. 

 

커피에 관한 글들이 쏟아지고 넘쳐 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커피의 역사부터 커피 재배법, 원두의 종류, 원두를 음료로 만드는 법, 실내 장식이 훌륭한 커피숍에 이르기까지 커피와 관련한 이야기는 무궁무진이다. 그런데 정작 커피 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거의 없는 듯하다. 수확한 커피를 음료로 마실 수 있게 되기까지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하고 숱한 공정을 거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글에 등장하는 커피밭 사람들은 커피를 둘러싼 모든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코스타리카 커피밭에서 림수진이 만났던 사람들. 누군가는 커피밭의 주인이었고 누군가는 커피밭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누군가는 코스타리카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고 누군가는 니카라과에서 코스타리카로 계절 이주해 커피를 따는 사람이었다. 파나마 북쪽 국경 산악지대에서 코스타리카로 이주해 온 사람도 있었다. 2001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속 사람들의 삶은 무척 다양하다. 한곳에 정주하여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불법 이주노동자로 각처를 떠도는 이들도 있다. 최근처럼 SNS가 활성화되기 전까지 그들을 찾는 일이란 그야말로 망망대해에서 낚싯대 하나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고기를 기다리는 일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헛되지만은 않았다. 기다림의 길목에서 또 다른 ‘커피밭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으로부터 이야기는 다시 가지를 쳤다. 

 

『커피밭 사람들』에 등장했던 이들 중 대부분은 이제 더 이상 커피밭에서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림수진이 커피밭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청산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들 다음 세대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는 계속 기록될 것이다.

 

 

우리의 삶과 커피밭 사람들의 삶은 

분명히 이어져 있다! 

 

지리학을 공부하고 지역 연구로 쓴 책이니 『커피밭 사람들, 그 후 20년』은 학술서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가진 한 연구자가 지난 24년간 커피밭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삶의 글이니, 대중서이기도 하다. 커피 혹은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지역 연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일이 우리 삶의 너무나 흔한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이 책은 커피의 이면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한 잔 커피 값을 100분위로 나누었을 때 가장 적은 파이를 가져가는 커피밭 사람들. 그들이 가져가는 몫은 소수점 아래, 0으로 숫자가 한참 이어진 뒤에 겨우 드러난다. 그러니 사실, 의미 없는 숫자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이유는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 그들의 삶이 눅진하게 녹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에서 유통까지 커피산업에 종사하는 이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통계나 거대이론이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커피밭 사람들’. 이 세상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은 분명 그들의 땀과 눈물, 웃음과 외로움을 같이 마시는 일이다. 

 

책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커피밭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대부분은 이제 더 이상 커피 따는 일을 하지 않지만, 그들의 오늘은 그들이 커피를 따던 오래전 그 시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정 거래’ 커피가 등장하고 ‘지속 가능한 커피’가 언급되지만 그런 장치나 이론은 이들의 삶에 미치지 못한다. 땅 한 평 갖지 못한 채 불법 이주자로 커피밭을 전전하는 이들은 세계 커피산업에서 보이지 않는, 아니 보이지 않아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세상에 그들의 존재를 좀 더 알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한 번이라도 더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림수진은 생각한다. 개인들의 이야기이지만 이 세상 커피밭에서 삶을 이어 가고 있는, 언젠가 삶을 이어 갔던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어 주면 고맙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 그들의 삶과 분명히 이어져 있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저자 : 림수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관광버스 운전수가 되길 간절히 꿈꾸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리학자가 되었다. 다행히, 맘에 든다. ‘지리학자라면, 나고 자란 곳으로부터 가장 멀리 가야 한다’라는 말에 힘입어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라틴아메리카로 건너왔다. 금방 돌아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에 살고 있다. 이곳저곳 떠돌다가 10여 년 전, 멕시코의 작은 시골 마을에 터를 잡았다. 이곳 멕시코에서 해가 뜨면 산책을 하고 낮에는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조용히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를 기록하며 살아간다. 2006년 이후 멕시코 콜리마주립대학교 Universidad de Colima 정치사회과학대학Facultad de Ciencias Politicasy Sociales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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