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불러낸 무대 위 작은 가게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잠든 기억을 깨운다.
10년, 21개 도시에서 사진가 송광찬이 찾은 ‘Small Store’ 포토스토리
가게는 온 세상이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에드워드 P. 존스가 그랬다. “슈퍼마켓에는 온 세상 사람이 물건을 사러 온다”고. (단편 〈가게〉 중에서.)
사진가 송광찬은 부모님이 생계를 위해 꾸려 오신 시장 한편의 작은 가게에서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장과 상가의 아이들은 으레 부모님의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변 상인이자 부모님 친구분들의 아이들과도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다. 가게가 있던 시장에서 친구들과 놀 때 맡았던 갖은 냄새가 컬러사진처럼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쇼핑몰의 유행으로 작은 가게들은 쇠락하며 세월 따라 그 빛이 바래는 것만 같다.
“나는 그런 변화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작은 가게들을 프레임 안에 담고 있다. 그리움이 불러낸 무대 위 작은 가게들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스몰 스토어’는 어두운 밤에 홀로 불을 밝힌 가게들을 촬영한 연작이다. 비가 온 뒤에는 가게에서 나오는 빛이 거리를 슬며시 비추어 분위기는 더욱 특별해진다. 이럴 때 거리는 무대가 되고 작은 가게는 모놀로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된다.
사진가의 섬세함으로, 어린 소년의 마음으로 마주보는 풍경
송광찬은 적외선 사진 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2010년대 초반부터 〈마주보다〉 시리즈에서 이 생소한 사진 기법으로 익숙한 서울 풍경을 작가만의 색감과 시선으로 표현해 주목받았다. 이 시리즈를 계기로 송광찬은 문화재청과 기업의 의뢰로 서울의 궁궐을 촬영한 연작 〈왕후의 시선〉 시리즈를 선보였다. 작가는 이들 작품을 중심으로 독일, 이탈리아, 미국, 일본 등지에 초청된다. 전시를 위한 여행에서 작가가 수첩에 글을 적듯이 무심히 거리 풍경을 담던 사진작가는 뷰파인더를 통해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경험을 한다. 어머니의 양품점이 있던 안성시장에서 어린 날 친구들과 놀 때 맡은 냄새가 선명히 되살아난 것 같았다. 이후 송광찬은 여행하며 만난 작은 가게를 카메라로 찍기, 아니 마주보기 시작했다.
‘스몰 스토어’는 작은 가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곳에서 우리 모두 각자의 기억을,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추억을 선명히 깨우는 과자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처럼.
송광찬의 작은 가게 사진을 보고 생각한 나의 작은 가게 이야기
이 사진집의 끝엔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세계적인 작가 황보름이 보내 온 작은 가게 이야기가 실렸다. 해외에서도 장편소설의 출간이 이어지며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인 황보름 작가에게 ‘스몰 스토어’ 연작을 보여드리고 의뢰한 글이다. 그는 이국의 어딘가에서 한국의 작가 작업실 근처 ‘작은 백반집’을 떠올렸다. 산책하다 발견한 “아늑한 빛을 내뿜는, 작은 백반집.” 작가는 이렇게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가게들이 단골손님은 있는지 생계를 어떻게 유지할지 혼자만의 넓은 오지랖을 발동하곤 한다. 작은 가게는 그렇게 “작고 예쁘고 아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