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살리고, 죽은 자를 끌어올리고, 기억을 까뒤집는
시인 캐슬린 제이미의 고요한 몸부림
“우리는 모두 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지만, 지난날로 돌아갈 수도 없다.” - 책 속에서
자연 글쓰기, 시와 산문의 경계, 고고학과 여행, 여성의 삶, 내부에 뜨거운 알맹이를 쥐고서 날카롭게 벼린 문장. 캐슬린 제이미의 글은 대개 이런 설명을 동반하며,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는 이번 신간 『표면으로 떠오르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노년으로 접어들며 그녀가 겪은 질병과 상실이 새롭게 조명되고, 거기서 비롯된 한층 초연해진 마음과 동시에 여전히 참을 수 없이 끔찍한 이 세계가 불러일으키는 분노 및 이해할 수 없음 사이에서 끈질기게 견디어 내는 한 여성의 고요한 영적 몸부림이 선연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표면으로 떠오르기』에서 저자는 알래스카, 티베트, 스코틀랜드 석기시대 유적지, 때론 자기 집 뒷마당을 여행한다. 보통의 여행자와는 다르게, 아주 오랫동안 그 장소에 머물며 단순히 ‘살아보는 것’을 넘어 돌멩이나 들풀처럼 ‘스며든다’는 점, 발굴팀에 합류하여 장화를 신고 곡괭이를 든 채 직접 유물을 파낸다는 점이 저자의 특기이자 본능이다. 그녀가 중국 샤허 현에 머물렀을 때는 심지어 중국을 핏빛 혼란에 빠뜨렸던 천안문 사태가 실시간으로 번지던 시기였다. 각각의 장소에서 만나는 놀라운 풍경, 평범한 사람들과의 기이한 대화, 낯선 문화, 예상치 못한 위기를 퍼즐 조각처럼 늘어놓은 다음 가만히 바라보면, 그 조각들은 곧 그녀가 써내려가는 활자를 거쳐 한 점의 태피스트리가 되어간다. 멀리서 보면 환하고 단순한 그림.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 때 우리는 아주 작게 수놓인, 붉고 까만 티끌을 목격한다.
그 티끌은,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잊은 적 없었던 것. 진흙 속에 파묻혀 있다가 거센 바람에 불현듯 드러나버린 것. 낡은 과거가 현재인 것. 의식의 세계를 날카롭게 뚫고 올라오는 무의식이다.
“어느 여름방학 때 할머니는 너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엄마가 가게에 가서 과자를 사먹으라고 삼남매를 내보냈고, 너는 신나게 집을 나섰다. 과자라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지만 그것은 핑계였다. 너는 집 모퉁이를 돌다 앰뷸런스를 보고 깨달았다. 구경꾼들 앞에서 구급대원들이 천에 덮인 할머니를 데리고 나왔다. 네 기억이 잘못됐을 것이다. 천으로 덮었을 리가? 할머니는 수면제 과용이지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죽었다. 할머니는 정신의 표면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전기경련 요법을 받았다. 그러면 어쨌건 한동안은 터널을 통해 심연 밖으로 끌려 올라왔다.” (본문)
그녀는 자기 주변에 놓인 것들에서 공통된 속성을 발견한다. 바로 ‘떠오르기(surfacing)’다. 이 수많은 ‘떠오르기’들은 하나같이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잊혔다고 생각한 것들이 살아 돌아와서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해 주고(「퀴나하크에서」), 생명을 되살려 주며(「지상으로 올라오기」), 때로는 병마를 이기는 기묘한 계시가 된다(「티베트의 개」). 여기서 그녀가 깨달은 것은 시간이 나선형이라는 사실. 모든 것이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다는 것. 물론 돌아온 그것이 처음과 같지는 않지만 언제나 그 지점이 우리의 바탕이고 토대라는 것. 거기서 새로운 힘이 생긴다는 것. 우리는 살기 위해 떠나고, 또 살기 위해 되돌아온다. 이 모험과 귀환의 여정에서 저자가 발견해낸 삶의 진실이, 이 책 『표면으로 떠오르기』에 오롯이 담겨 있다.
길 없는 곳에서 길을 찾아 나서는 시인의 발자취
가라앉는 시간과 장소를 지금 여기로 끌어올리다
마침내 표면으로 떠오르는 세계의 이면
“저자가 이따금 비틀거리는 것은
길 위의 돌멩이에 걸려서가 아니라 어쩌면 지구의,
또 어쩌면 우리 자신의 유한성 때문이지만
그러면서도 저자는 숲을 지나가는 새로운 길을 가리킨다.”
-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작가
한때 자연 글쓰기는 도피주의적이고 비정치적인 위안의 문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제이미의 경우 알래스카와 오크니제도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역사와 정치의 문제, 기후 위기로 인한 위협을, 중국-중국령 티베트 사이의 날선 긴장과 천안문 사태로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사유를, 노화의 한가운데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을 탐구한 사회적 관찰을 모두 『표면으로 떠오르기』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때론 엄격하게 정돈된 언어로, 때론 구두점도 없이 바람과 물처럼 그저 흐르는 언어로 기록되었다. 정형과 무정형, 논픽션과 픽션, 생물과 비생물을 오가며 저자가 엮은 한 권의 책은 그래서 자연 세계에 정답이란 없듯 이 글에도 닫힌 해석이 있을 수 없다는 걸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길은 얼마나 잃어야 잃는 건가?” 저자가 묻는다. 한 10분쯤 헤매면, 아니, 하루 종일 같은 곳만 맴돌면? 저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저자는 “너는 길을 잃지 않았다. 그냥 감상에 빠진 것일 뿐”이라 자답한다. 낭만적이지만 꽤 그럴 듯한 답이 아닌가? 당신이 어디에 얼마큼 서 있었든, 원래 있던 곳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사실 그건 길을 잃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도 알 수 없는 어떤 목적에 의해 그 자리에서, 그 시간만큼 감상과 기억과 명상에 빠져 있다. 독자들이 이 책 안에서 자유롭게 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 빛소굴 세계산문선, 세리프(serif)
세리프는 글자 획의 시작이나 끝부분에 있는 작은 돌기를 말합니다.
빛소굴 세리프는 작가 고유의 언어와 감성, 통찰을 아름답고 개성 있게 구현한 시적 산문을 소개합니다. 세리프의 산문들은 때로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은 채 비선형으로 뻗치기도 하고, 뜻밖의 소재를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일상에 균열을 내기도 합니다. 자유롭게 변주되는 언어의 향연, 이 아름다운 돌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