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동네를 뒤흔든 살인 사건, 범인이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내 죄를 들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아파트 이웃 중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 경찰은 이웃 중 범인이 있다고 단언한다. 나머지 이웃 모두가 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는 상황이라면 과연 누구를, 무엇을 믿어야 할까. 불륜 상대인 요르겐이 죽은 후 주인공 리케에게 끝없는 난관이 이어진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털어놓아야 한다. 과연언제, 어디까지 진실을 말해야 할까.
자상하고 헌신적인 남편 오스먼드에게 요르겐과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웃과 딸에게는? 말하지 않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없나?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어떻게 진술해야 경찰이 가족들을 용의선상에서 배제할까? 그리고 요르겐이 죽어 있던 그날, 리케가 여분의 열쇠를 사용해 몰래 그 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다면? 평소 얕게 잠드는 편이었는데도 사건이 일어났던 밤에는 어떻게 그렇게 깊게 잠들었을까? 이웃 중 대체 누가 요르겐을 죽였을까? 여러 의문과 갈등만이 이어지는 가운데, 리케는 결국 진범의 정체를 알아낸다. 그렇지만 진실은 절대 그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불륜 사실을 공개할 것인지, 남편이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도록 둘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완벽하고 단란한 가정을 지켜낼 수는 없다. 이러한 극도의 불안 속에서 리케는 범인을 찾아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박적으로 이웃들을 의심한다. 사실 리케에게 이웃 중 누가 범인인지, 왜 요르겐을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이 어떻게 진실이 되느냐, 그것뿐이다.
“가급적 상황을 그럴 듯하게 얼버무”리고 “사실을 조금만 고쳐 쓰”면 “그 즉시 모순된 조건들 또한 진실이 될 수 있다”는 리케의 말은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진실조차 거짓이 되어버리는 지점 그리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혼란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뒤흔드는,
당신이 진실이라 믿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가장 위협적인 일 중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그가 내게 안전한 인물이라고 느끼는 와중에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어쩌면 그는 당신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소설은 그 물음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이 믿는 진실은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는, 그 진실이 거짓이 되어 당신을 혼란에 빠트리는 순간이 분명히 찾아온다. 그렇다면 그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심리학 박사라는 작가의 이력답게 《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는 진실에 관한 모순을 날카롭게 찌르는 심리 스릴러 소설이다. 죄책감과 수치심에 대한 설명은 독자가 인물들의 모순된 태도에 몰입하고 스스로를 대입하게 이끈다. 또한 독자들에게 두 감정이 인간의 태도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며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숨겨진 동기를 들춰보게 만든다. 불안감과 긴장감이 옥죄는 가운데 숨겨진 진실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한 쾌감이 밀려온다.
이외에도 작가는 리케의 내면과 행동을 집착적일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며, 헬레네 플루드 특유의 고요한 불안감을 이야기 끝까지 유지한다. 이러한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인해, 독자는 작품 내의 등장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심지어는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리케까지도. 혼란에 사로잡힌 리케가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사실일까? 편견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사실도 진실이 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이렇게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자 답변이 된다.
당신은 진실을 바라보고 있지만
결국, 절대로 진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혼란을 겪으며 점점 무너지는 리케의 모습은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연인에게서 무슨 모습을 보는지, 그것이 정말 그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에 오스먼드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답은 이렇다. 당신은 절대로 모든 진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볼 수 있는 진실은, 상대가 드러내기로 결정한 진실뿐이니까. 결국 “우리 모두에게 최선은 서로의 겉모습이 완전하고 진실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질문은 단순히 연인 간의 관계에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의미로 확장된다. 당신은 주위 모든 것을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종종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며, 나는 모든 진실을 간파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 사실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만은 때로 독이 된다. 진실은 늘 내가 의심하지 않는 것 속에, 내가 인지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곧, 그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이렇게 작가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온 것의 서늘한 이면을 고발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들은 비로소 “진실이라는 거짓”이 뜻하는 공포를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