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티의 탐구를 향해 정진하는
사유의 향연이 펼쳐지다
중세와 근현대를 잇는 결정적인 문제작!
근대의 문을 연 철학적 에세이를
르네상스 철학의 맥락에서 새롭게 읽다
인류의 세계관이 재정립되는 혼란의 시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근대 철학의 시작을 알린 총성과도 같은 책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새 시대를 연 이 저작은 중세와 근대의 급작스런 단절을 상징해왔지만, 데카르트 또한 수많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영향 아래 사유했음이 분명하다. 그를 이전 시대와 단절시켜 읽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옮긴이 이재훈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르네상스 철학과의 연관 안에서 《방법서설》을 읽음으로써 오늘날 다시금 그의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휴머니즘의 정당성이라는 관점으로 새롭게 설명해낸다.
권위를 담보한 중세 신학자들은 불완전한 인간이 스스로 진리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탐구한 진리의 뿌리와 결실은 모두 인간의 지성과 문화, 이성에서 비롯한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한편 신에서 인간으로 초점을 옮겼다고 평가받는 데카르트는 인간중심주의의 폐해를 내포하는 시작점으로도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옮긴이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이 확대되는 오늘날,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제안하는 수많은 ‘나’ 속 무한의 휴머니티를 더욱 생생하게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것이야말로 역사로서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다. 독자들은 새롭게 출간하는 《방법서설》을 통해 인간의 고유성에 주목했던 데카르트의 사유를 명징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1. 르네상스 철학의 계보에서 바라본 데카르트
─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휴머니스트 전통의 재발견
─ 근대 철학을 꽃피운 역사적 토양을 낱낱이 분석하다
《방법서설》의 진정한 새로움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산에서 시작한다는 데 있다. 1571년 최초로 자기 자신을 글의 소재로 쓰기 시작한 몽테뉴의 《에세》, 1601년 최초로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출간된 샤롱의 《지혜에 대하여》, 1620년 새로운 과학을 탐구한 베이컨의 《신기관》까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 정신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명맥을 이었고 마침내 이 책에서 형이상학의 형태로 종합되어 새 시대의 서막을 올렸다.
우주, 신의 무한성, 기술, 회의주의, 세계의 가독성, 자연의 빛, 지혜, 제일철학……. 데카르트 철학의 주요 키워드이자 근대 철학의 주제이기도 한 이 단어들은 르네상스 철학자들의 사유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진리를 찾기 위해 모든 선입견에서 자유로운 철학을 기획한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자신의 사유를 전개했다. 이때 학교와 책에서 배워온 모든 것을 버리고, 의심하고, 그것에 질문을 던진 그의 시도는 허공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편견과 관습으로 가득 찬 정신보다 오히려 무지한 자가 진리를 더 성공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는 발상은 쿠자누스와 몽테뉴 등 이전의 사상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휴머니스트판 《방법서설》은 데카르트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르네상스에서부터 근대 철학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본다. 근대의 여명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에 앞서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선도해온 선행자들을 충실히 따랐다. 독자들은 데카르트가 철학에 던진 폭발적인 사유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학문적 토양에 담긴 가치를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건대, 많은 행운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어떤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 길들은 나를 어떤 고찰과 준칙으로 이끌었고, 이로부터 나는 방법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 방법을 통해 나는 지식을 단계적으로 증가시키고 인식을 내 정신의 평범함과 삶의 짧은 기간이 도달하도록 허락한 최고의 높은 정도까지 점차로 높일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 방법을 통해 아주 많은 결실을 이미 얻었다. 그 결과 나는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자만하기보다는 불신하려 항상 노력하고, 철학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 모든 사람의 다양한 행동과 계획 중에 헛되고 무익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리 탐구에서 이미 성취했다고 생각한 발전에 크게 만족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순수하게 인간적인 일들 가운데 확고하게 좋고 중요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선택한 것이라 감히 생각할 정도로 미래에 대한 큰 희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1부〉 중에서
2. 데카르트에 관한 오해를 종식시키다
─ 진리를 담은 수많은 ‘나’ 속 무한의 휴머니티 탐구
─ 인간은 자연이 아닌 오로지 의지에 대해서만 지배자일 수 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자연은 그 자체로 해석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갈릴레이와 몽테뉴, 데카르트를 거치면서 인간은 자연을 신적 언어가 아니라 논리적 언어로 쓰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쌓기 시작했다. 데카르트는 가장 먼저 탐색한 책들의 세계에서 수도 없이 많은 모순과 대립을 발견하고는 진리를 찾기 위해 “세계라는 커다란 책”(27쪽)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법서설》의 유명한 결론에 이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81쪽)
데카르트는 세계라는 책 속에서 진리가 아닌 다양성을 발견했고, 경험의 한계를 넘어 이를 연구하는 방식으로서의 진리, 즉 ‘나’를 발견했다. 주의할 점은 그가 발견한 ‘생각하는 나’는 전지전능한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계론적 자연관, 절대적인 이성, 이분법적 세계관 등 데카르트의 철학적인 업적과 세계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한 평은 오늘날에도 분분하다. 이는 결정적으로 《방법서설》 6부에 등장하는 “자연의 주인과 소유자처럼”(145쪽)이라는 표현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줄곧 인간의 이성은 유한하기에 자연을 완벽히 인식할 수 없으며,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도, 인간의 관점에 따라 진행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반복해서 우리가 오로지 의지와 사유에 대해서만 지배자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자연에 대한 존중 없이 오로지 인간의 실리를 위해서 자연을 이용하는 행위는 데카르트가 그토록 종식하고자 했던 절대성을 이성에 의탁하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데카르트는 신적인 이성을 말하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오해와 함께 발전해온 인간 문명은 과학기술을 신격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자연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의심의 여지 없이 첫 번째 선이자 이 삶의 모든 다른 선의 토대인 건강의 보존”(146쪽)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데카르트라는 이름을 면죄부처럼 내세우고 자연을 파괴적으로 이용해온 인간의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곧바로 나는 이처럼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길 원하는 동안에도 이것을 생각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 진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아주 견고하고 확실해서 회의주의자들의 매우 과장된 모든 가설도 이 진리를 흔들리게 할 수 없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나는 이것을 내가 찾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주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4부〉 중에서
“데카르트에 의하면, 유한한 인간 지성은 자연의 법칙 전부를 인식할 수 없으며,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관점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일 수 없다. 데카르트는 반복해서 우리는 오직 우리의 사유에 대해서만 지배자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자연의 기술적 사용은 자연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인식에 의존한다.” ─ 〈6부〉, 각주 5 중에서
3. 현대적인 번역으로 새롭게 만나는 휴머니스트 데카르트
─ 데카르트에 관한 최신 연구에 바탕을 둔 풍부한 주석
─ 인간중심성을 문제 삼는 시대에 휴머니티의 정당성을 다시 사유하다
옮긴이 이재훈은 오랫동안 《방법서설》을 통해 휴머니티의 원리를 새롭게 사유할 가능성을 연구해왔다. 이 책은 데카르트를 통해 인간을 사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그의 연구 결산이기도 하다.
《방법서설》의 4부는 신체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의 영혼, 5부는 단일체로서의 인간에 대해 서술한다. 인간에 대한 데카르트의 관심은 이후 저작들로까지 꾸준히 이어져 그의 〈여섯 번째 성찰〉에서 더욱 깊이 있게 다뤄지고, 《정념론》에서 그 열매를 맺는다. 옮긴이는 새롭게 번역한 《방법서설》을 통해 역사적인 맥락은 물론 데카르트 철학의 사상적 흐름, 나아가 오늘날의 휴머니티까지 고찰할 가능성을 발견해낸다. 이를 위해 원문을 세심하게 번역한 것은 물론, 옥스퍼드출판사의 2023년판 《정신지도규칙》과 2020년 개정된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세계의 가독성》 속 중세 기독교 역사 연구, 데카르트와 예의(civilité)를 연결지은 프레데리크 르롱의 2020년 저작 등 최신의 데카르트 연구서를 적극 참고해 풍부하고 깊이 있는 주석과 해제를 선보인다. 옮긴이는 최근까지 활발히 이루어진 연구를 충실하게 반영함으로써 400년이 넘는 철학의 거대한 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냈다.
데카르트가 정립하고자 했던 고유한 휴머니티는 르네상스 휴머니스트적 사유의 유산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에게 끊임없이 돌아오는 휴머니티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의 탈인간중심주의적 비판의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인간의 위치와 그 영향력이 문제시되는 현재, 독자들은 현대적인 번역으로 찾아온 《방법서설》을 통해 휴머니티의 정당성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다음의 중요한 철학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인간을 물질의 위력으로부터 파악해야 하는가? 인간은 자기 외부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개체인가? 아니면 데카르트처럼, 자연의 물질적 위력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외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거리, 즉 인간에게 고유한 휴머니티의 원리로부터 철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데카르트는 신학적 절대주의에 맞서 휴머니티에 대한 철학을 기획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한 휴머니티에 대한 철학은 몽테뉴와 샤롱의 휴머니티에 대한 사유와 마찬가지로, 인간중심주의와 무관하다. 《방법서설》은 데카르트의 철학적 기획이 르네상스 휴머니스트적 사유의 유산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기술적 절대주의에 맞서 휴머니티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은 오늘날 철학의 과제다. 데카르트의 물음들을 반복하고 변형하는 것은 휴머니티의 원리를 새롭게 사유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