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다소 어렵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의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 찼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다소 도전적이라는 의미에 조금 더 가까울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쉽고 빨리 읽히는 책보다는 우리에게 훨씬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최신의 과학기술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어서 과학과 기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할 만한 요소가 가득하다. 특히 생명공학, 로봇공학, 미래학, 과학철학, 의학과 같은 학문분야를 좋아하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11p)
가상세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현실과 달리 미남이나 미녀가 되어 살 수 있습니다. 놀이도 훨씬 재미있어집니다. 인간의 습성과 욕망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생각해봤을 때, 과연 불가능한 미래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요? 바깥세상에서 ‘모피어스’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서 진실을 알려준다면, 함선 속 좁아터진 곳에서 꿀꿀이죽이나 먹는 것이 현실이 될 겁니다. 〈매트릭스〉는 영화에 불과합니다. “기계의 지배를 받는 행복한 가상현실보다 비참하지만 우리 두 발로 걷는 세상에서 살아야 해” 하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세계가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해봅시다. 현실 세계로 가면 누더기를 입고 항상 굶주리며 언제 기계의 습격을 받아 비참하게 죽을지 모릅니다. 과연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선택할까요?
-21세기 과학 ‘최악’의 시나리오: 포스트 아포칼립스(70~71p)
인공지능이 세상의 환경으로부터 배워나가는 겁니다. 습득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이는 한 명의 아이가 커가는 과정인 겁니다. 인공지능의 도래를 두려워하고 있는데 인공지능은 이미 이 지점에 와 있는 거죠. 스티븐 호킹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개발은 인류의 멸망을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과학자들이 왜 이런 언급을 할까요? 그 이유는 인공지능이 벌써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간에 지금 우리가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로봇을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고 까불면 전기 플러그를 뽑아서 멈추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자의식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전기 콘센트를 뽑으려고 하면 로봇이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제는 감정을 가진 로봇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겁니다.
-과학과 휴머니즘의 해후(96쪽)
1인 1로봇 1조로 이루어진 팀이 지뢰를 제거합니다. 한 지뢰 제거 로봇은 72번 임무에 투입되어 그때마다 지뢰를 성공적으로 제거했습니다. 그런데 73번째 임무에 투입되었다가 실수로 부상을 입었어요. 그러니까 고장이 난 거죠. 그러자 같이 임무를 수행해왔던 파트너 병사가 울며불며 이 로봇을 살려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미국에서는 본격적으로 로봇의 윤리와 인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봇에게 자율성을 주려면 먼저 로봇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자율성을 부여하기가 힘들죠. 이 때문에 현재 학계는 옳고 그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AMA’라고 합니다. ‘인공적 도덕 행위자(Artificial Moral Agent)’의 약자인데, 이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연구하기 시작한 겁니다.
-안드로이드 하녀를 발로 차는 건 잔인한가?(135쪽)
우리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사물인터넷을 쓰지만, 실상은 사물인터넷의 정보를 독점한 이들이 감시탑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뜻입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바로 이 파놉티콘을 예로 들며 권력행사 방식이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권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것이며,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이 말의 주체를 현대 기업들에게 그대로 적용해봅시다. 오싹하지 않습니까? 정보혁명의 미래에 우리 인간이 자유와 해방을 맞이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편리하게 하는 기기와 시스템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문명의 이기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진정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도청되고 감청됩니다. 첨단 도청장치를 사용하면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대화를 엿들을 수 있습니다. 첨단 장비가 아니더라도 도청이 가능한 특수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프린터, 에어컨, 세탁기를 이용한 도청입니다. 이런 생활·사무기기를 해킹하여 특수한 전자기장을 내뿜게 만든 후 0과 1로 신호를 보내게 합니다. 데이터 전송이 다소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 없이 정보를 빼내 올 수 있다는 점이 충격적입니다
-빅브라더와 리틀시스터의 감시탑(178~179쪽)
미국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해봤습니다. 아이를 똑똑하게 하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게 정당하냐는 질문에 예상 외로 많은 부모들이 부정적으로 답했습니다. 무려 83%의 부모들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어떤 유전자가 똑똑한 것에 관련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여서 현실적인 답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심각한 질병의 위험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적절하다는 의견이 46%나 나왔습니다. 생명공학이 더욱 발전하여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진다면 똑똑해지는 것보다 건강 요소에서 시작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이가 심각한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전병에 관계된 유전자를 편집하는 걸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부모는 더 건강한 아이를 원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 유전자 편집을 어떻게 어디까지 할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전공학의 저울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사이에서(257쪽)
에너지독립이라고 말하니까 어렵게 느껴지나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에너지독립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부터 독립을 하는 겁니다. 에너지 소비를 대폭 줄이고, 태양광발전으로 에너지 공급을 하기 시작하자는 게 주된 논리입니다.
저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학문이라는 것은 땅에 뿌리를 내려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너지 문제와 원자력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 발전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이것이 말과 글에만 그치게 된다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말을 하고 글을 읽는 행위 자체로만 만족하는 것이 첫 번째 문제고, 그 행위를 하면서 미리 절망해버리는 것이 두 번째 문제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바로 실천입니다. 작은 단위에서도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이 바로 에너지독립입니다.
-원자력에 대한 집착과 에너지독립(291쪽)
21세기 과학의 최고 시나리오가 뭘까요? 바로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살아남기입니다. 모든 생명은 멸종합니다. 어떻게 무한히 살겠어요? 하지만 앞으로 130만 년은 더 버텨야 마땅한 인류가 문명이 시작된 지 1만 년 만에 사라져야 하다니 억울하지요? 그러니 앞으로 몇 만 년이라도 버텨보자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생태학적으로 보자면 각기 다른 생태계와 모여 사는 거예요. 어려운 게 아니라 우리 삶을 조금만 바꾸면 가능합니다.
인류 생존의 힌트는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바로 자연사박물관에서입니다. 여기서 자연사의 전제는 ‘실패한 생명’입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멸종한 생명들이 있습니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고 배우고 후대에 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시간을 거쳤는지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21세기 과학 ‘최선’의 시나리오: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살아남기(326쪽)
유토피아가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디스토피아가 끔찍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압니다.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부의 평균이 떨어지더라도 둘 다 적당히 부족하지 않은 삶을 택하는 것과 디스토피아는 절대 사양이며 어떻게 해서든 유토피아에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한쪽을 이미 선택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인구는 늘어나고, 자원은 줄어들고, 값비싼 기술은 독점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세계는 부와 욕망을 무절제하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수치화하여 일정한 기준 이상을 충족하는 곳이 유토피아라고 한다면, 현실 세계는 이미 소수의 유토피아와 다수의 디스토피아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디스토피아를 몰아내야 합니다. 한때 소수에게 집중된 과학의 혜택을 모두가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의 최전선으로 과학과 과학자가 나서야 합니다.
-에필로그(3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