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우주의 또 다른 이름
인간은 자연과 떨어져서 살아갈 수 없으며, 자연 안에서든 또는 밖에서든 자연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라는 명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처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이나 자연관이란 단어를 일상생활에서 흔히 언급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용어와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본래 ‘자연’이란 단어는 서양 고대에 우주 전체를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했지만, 현대에는 주로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이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의 폭이 축소되었음을 보여 준다.
우리의 삶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자연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자연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의 문제다. 자연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 그 영향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미치게 된다. 즉,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따라서 무분별한 자연의 파괴는 단지 자연의 파괴만이 아닌 인간 자신의 파괴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서, 그 무엇보다도 선행해야 할 우리의 과제는 자연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유비의 측면에서 본 자연관
콜링우드는 이 책에서 고대로부터 자신이 생존했던 20세기 초반까지의 자연관을 시대별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특히 ‘유비(analogy)’라는 측면에서 자연관을 이해한다. ① 고대는 ‘자연이라는 대우주’와 ‘인간이라는 소우주’의 유비이고, ② 르네상스는 ‘신의 작품인 자연’과 ‘인간의 작품인 기계’이며, ③ 현대는 ‘자연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자연 세계의 진행 과정’과 ‘역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인간사의 성쇠’의 유비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①과 ②의 시기는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영원불변하는 법칙을 만물의 운동 원리로서 인정했던 시기였던 반면에, ③의 시기는 만물이 변화와 발전을 지속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이해해서 한시적인 법칙만을 인정했던 시기, 즉 하나의 사물을 그 사물이게끔 하는 본질적인 요소를 거부했던 시기다.
인간과 자연
콜링우드의 분석에 따르면, 역사와의 유비에 기초한 20세기 초의 자연관의 특징은 자연 환경을 단순히 기계가 아니라 기능의 측면에서 이해한다는 점이며, 또한 인간과 자연은 상호 작용하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전체적인 목적, 즉 발전 과정의 지속이라는 목적을 지닌다는 점이다. 비록 생태 중심적 자연관은 생태계 전체의 목적이 발전 과정의 지속보다는 존재의 유지라고 보지만, 어쨌든 그 자연관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 즉 생태계 전체를 상호 의존적으로 기능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있다. 기존의 자연관은 인간의 주변에 대한 관찰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관점으로 확립되었던 반면에, 생태 중심적 자연관은 자연 환경 파괴와 같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연관의 모색이라는 점에서 다소 인위적인 색채가 짙은 관점이다.
올바른 자연관의 모색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올바른 자연관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자연관을 충분히 이해하고 숙고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무엇을 덧붙여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자연관이 지닌 장단점을 각각 지적하고 있으며, 그런 지적에 대한 충분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자연관을 모색할 토대를 갖게 된다.
콜링우드는 각각 성찰과 실험으로 특징지어지는 철학과 과학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며, 이 책에서 그는 철학도에게는 과학적 성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과학도에게는 실험적 지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자연 철학, 과학 철학, 또는 과학의 입문서로 이용할 수 있으며, 또한 더 뚜렷하고 체계적인 자연관이나 우주관을 모색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이 책은 이제이북스출판사에서 2004년 출간 후 절판되었던 《자연이라는 개념》을 옮긴이 유원기 교수가 20년 만에 원서와 대조해 전체를 새로 번역해서 초판의 오역을 바로잡고, 낡은 번역어를 고쳤으며 전문적인 주석과 자세한 해설을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