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고등학생이 보는
지정학 입문서!
지정학 이론을 따라가다 보면
한반도의 지정학도 보인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인기 많은 교과목 중 하나가 지정학이다. 이 책은 프랑스 고등학생을 위해 지정학 이론을 중심으로 지정학 역사를 소개한 지정학 입문서다. 저자 뱅상 피오레는 저서 《조세 피난처: 지정학적 문제들》로 ‘지정학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기도 한 지정학 전문가다. 지정학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다. 이 책은 지정학의 시작부터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다루고 있다. 지정학이란 어려운 주제를 그래픽 노블이란 형식에 담아 만만하고, 흥미롭게 알려 준다. 방대한 내용을 만화로 표현하다 보니 핵심만 추리고 짚어 주는 장점도 크다.
주권과 함께 등장한 지정학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건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다. 헤로도토스가 TV 프로그램 진행자로 등장해 손꼽히는 지정학 이론가들을 차례차례 소개한다. 자연스럽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지정학은 주권이란 개념이 등장한 19세 말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국의 땅을 넓힐 근거로 악용되곤 했다. 대표적인 세력이 나치다. 지정학은 영토 확장, 제국주의, 전쟁 등과 밀접해 아주 오랜 시간 학문으로서 의심을 받았고, 학교 교과목에서 삭제된 시절도 있다. 하지만 국가 간 분쟁과 전쟁은 끊이지 않으므로, 지금은 국제 정세를 분석하는 도구로 다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라벤스라움과 나치
이 책은 지정학은 무엇이고, 지정학 이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려 준다. 특히 손꼽히는 지정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쉽게 소개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가장 먼저 소개한 이는 지정학의 선구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라첼이다. 레벤스라움 개념을 주장한 사람이다. 라벤스라움Lebensraum은 독일어로 ‘생존을 위한 공간’이란 뜻이다. 그는 독일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스웨덴의 루돌프 쉘렌을 거쳐 독일의 카를 하우스호퍼로 이어진다. 하우스호퍼는 지정학 하면 나치를 떠올릴 만큼 나치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했던 인물이다. 나치의 침략을 부추겼고, 결국 2차 대전이 터지게 만든다.
시 파워와 심장 지대, 주변 지대
서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지정학은 발전했다. 해군 철학자로 불리는 앨프리드 머핸은 시 파워(sea power, 해상권) 개념을 만들어 시 파워야말로 더 넓은 땅을 지배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해상권을 쥐면 미국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뿐만 아니라 상품을 팔아 없앨 시장에도 접근할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 제국주의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머핸의 영향을 크게 받은 미국은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더는 개입하지 못하게 했으며, 식민지 건설도 금지시켰다.
영국의 해퍼드 매킨더가 시 파워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시 파워보다 ‘심장 지대’(heartland, 유라시아 북부와 내륙 지역 등)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심장 지대 이론의 주 타깃은 러시아였다. 당시 영국은 러시아와 아시아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심장 지대 이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아닌 중국이 주 타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세계를 지배할까 봐 우려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니콜라스 스파이크만은 심장 지대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주변 초승달 지대’(림랜드rimland)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림랜드는 대규모 인구, 풍부한 자원, 해안선의 활용 등으로 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열쇠가 되리란 분석이다. 스파이크만은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림랜드에 속한 한반도에서 터진 것이 한국전쟁이며, 미국이 림랜드를 지키려다 벌어진 전쟁이 베트남 전쟁이라고 분석한다.
《문명의 충돌》과 체스판 이론
1990년대 소련의 붕괴는 지정학 분야에서도 큰 전환점이 된다. 미국의 정치학 교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제 미국만 남았다며 미국의 자유주의 원칙들이 전 세계를 호령하게 됐다고 흥분했지만,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그의 스승 새뮤얼 헌팅턴은 다른 주장을 펼친다. 공산주의 종말이 이데올로기 갈등을 종식한 건 사실이지만, 그 대신 문화적 정체성을 일깨웠고, 그로 인해 다양한 문명이 각자 중요시하는 가치, 그중에서도 종교를 강요하기 위해 서로 갈등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은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힘을 얻는다.
헌팅턴 이후 현재까지 미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정학자는 조지프 나이다. 그는 ‘소프트파워’로 다른 국가를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프트파워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다. 조지프는 군사력이 아닌 이런 소프트파워로 다른 나라를 지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소련이 패망한 원인도 소프트파워가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한편에선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 이론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미국이 세계 1위를 고수하려면,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을 전략적으로 잘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최근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거대한 체스판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정학 이론 흐름만 봐도 지정학은 다른 나라 땅을 더 빼앗기 위해 골몰하는 와중에 발전한 학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대한 반성을 거쳐 현재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 간의 세력 투쟁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 중 하나다. 최소한 우리가 사는 곳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정학을 배워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