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을 이기고 고흐풍의 그림을 훌륭하게 그린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은 그 의미를 모른다. 뇌신경세포와 시냅스,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 전기신호 등이 어우러져서 물질이 정신으로 전환하는 원리가 밝혀질 때까지 인공지능의 ‘의미를 모르는 기계적 수행’은 계속될 것이다. 인공지능에 단순한 낱말의 의미와 문법 체계만이 아니라 화쟁기호학 가운데 의미작용 부분을 활용하여 사물의 현상, 본질, 기능에 따라 은유와 환유를 연상하며 의미를 해석하는 알고리즘을 부여하면, 인공지능은 사물이나 마주치는 환경과 사건마다 자기 앞의 세계를 형성하고 이의 의미를 해석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01_“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닮은 것인가?” 중에서
이처럼 폴 에크먼이 분류한 기쁨, 슬픔, 놀라움, 두려움, 화남, 역겨움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은 인공지능이 쉽게 모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뉴로모픽 컴퓨팅을 활용하여 감정에 대한 전기신호와 화학물질 신호의 전달체계를 프로그래밍하고 이를 얼굴 근육과 체계적으로 연결시키면, ‘시원섭섭,’ ‘웃픔’, ‘쌤통’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까지 모방할 수 있을 것이다.
-04_“감정의 영역까지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가?” 중에서
예수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 공자의 인(仁)의 바탕은 모두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다. 공감이 없는 정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공감하는 인공지능을 만들려면, 거울신경세포체계와 의미 구성력을 프로그래밍한 것을 인공지능에 장착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제공하여 인공지능도 의미를 해석하며 실천하고, 타자, 특히 선하고 약한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 인간 또한 안드로이드가 성취할 수 없는 생명성과 인간성, 영성을 성취해야 한다.
-06_“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윤리적, 법적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중에서
이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국내총생산(GDP)이나 무역량보다 그 나라의 강과 숲에 얼마나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는지, 국력보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이 얼마나 미소를 짓고 있는지, 국부를 늘리기보다 얼마나 가난한 이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지, 기업 이윤을 늘리기보다 얼마나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자기실현으로서 노동을 하는지, 뛰어난 인재를 길러 내기보다 못난 놈들이 얼마나 자신의 숨은 능력을 드러내는지, 내기하고 겨루기보다 여러 인종과 종교와 이념을 가진 사람과 안드로이드가 함께 모여 얼마나 신나게 마당에서 노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를 경영하고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09_“대안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