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이론가
육기(陸機)는 ‘문학의 자각’을 보여준 시인 가운데 하나다. 그는 뛰어난 작가이자 날카로운 이론가다. 그가 쓴 문학 이론서 ≪문부(文賦)≫는 중국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문학 창작의 이론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글로 평가받는다. 당시의 현학(玄學)으로 인해 유행하던 철학적 개념들을 문학의 영역에 도입해 이론적으로 접근했으며, 자주 발생하는 오류와 대안, 이상적인 심미관, 상상력과 영감, 문체와 풍격 등 창작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했다. ≪문부≫는 “시는 감정을 따라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아름다워야 한다(詩緣情而綺靡)”라고 말함으로써 ‘아름다움’을 문학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속성으로 제시했다. 육기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사상이나 내용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언어와 문자의 형식적 아름다움이다. 유가(儒家)에서는 표현의 미감을 경시해 단순하고 투박한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지만, 육기는 유가 문학 사상의 제약을 넘어 심미성을 인정한 것이다. ≪문부≫에서 문학 창작의 가치와 즐거움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생명의 애상을 고민한 작가
육기가 가장 많이 고민하고 표현한 주제는 생명에 대한 애상이다. 생명에 대한 감상을 노래하는 것은 위진남북조 문학의 보편적인 현상인데 당시 전염병 창궐과 빈번한 전란 때문에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육기는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고가 담긴 시를 많이 지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도 상당히 다양했다. 예를 들어 〈달무리야(月重輪行)〉, 〈햇무리야(日重光行)〉, 〈짧은 노래(短歌行)〉 등의 작품은 인생의 짧음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슬퍼하고 한탄한다. 또 〈동탁이 도망치다(董桃行)〉, 〈해가 동쪽에서 서문으로 지다(順東西門行)〉 등의 시는 어차피 살다가 죽을 테니 후회 없이 신나게 삶을 즐기자는 생각이 드러난다. 또 〈만가(挽歌詩)〉에는 시인이 죽은 자의 입장이 되어 죽음을 바라본다. 이런 발상은 중국 시사에서 육기가 처음 시도한 것으로, 죽음에 대해 그의 생각이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준다.
숙명적 정서를 담아
육기의 많은 작품에는 ‘천도(天道)’, ‘인도(人道)’, ‘길흉화복(吉凶禍福)’ 등 숙명적 정서를 담은 개념이 많이 등장한다. 육기는 보수적인 유학을 계승하던 오(吳)나라의 학문적 배경에서 성장했기에 천상의 징조가 세상의 일을 예시한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신봉했다. 그래서 인생의 애환을 묘사하기 전에 먼저 별과 태양, 달과 바람 등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격식을 애용했다. 육기는 오나라 최고 명문가의 적자로 조국과 가문이 멸망한 상황에서 자신의 조국과 가문을 멸망시킨 진(晉)나라 황실을 섬겼다. 육기에게 좌절감, 분노, 복수심 등의 격정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청대의 문인 중에는 육기가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으면서 왜 시 속에 진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표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육기가 관념적인 서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수향(水鄕)의 선비
낙양(洛陽)은 육기가 성장한 남방과 자연환경도 다르고 문화적 환경도 달랐다. 그는 스스로를 항상 나그네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고 시에서도 인생을 나그네로 묘사했다. 육기는 스스로를 “수향(水鄕)의 선비”라고 묘사했는데, 오나라를 대표하는 자연을 물이라고 한다면 낙양을 대표하는 자연은 숲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별시를 보면 물가에서 형제들과 이별하고 숲길을 걸어가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물의 고장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의 시에서 숲은 이별과 슬픔과 공포를 상징하는 소재가 된다. 육기는 인생의 나그네가 되어 진지하게 인생과 운명을 고민했고, 그것을 관념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때로는 나그네의 슬픔을 읊기도 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안의 좁고 굽은 길(長安有狹邪行)〉 같은 작품은 나그네의 실존적 고뇌를 묘사했다. 항상 원칙을 견지하는 근엄한 유학자로 살아왔지만 실존의 순간 앞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가치관이 흔들리고 혼란스럽다. 누구보다 비극적이고 고독한 인생의 주인공이었기에 맞이해야 했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