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민은 만일 인류가 유럽의 역사적 특수성을 인식한다면, 유럽이 발전시킨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러한 자본주의 체제가 인류를 통합하기보다는 분열시켰다는 사실(현실자본주의)을 인식한다면 진정 보편적인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어 주변부 민중의 해방을 위한 역사적 대안, 즉 세계자본주의 체제와의 ‘절연(déconnexion)’을 제안한다. 이제 인류는 아민과 함께 새로운 논쟁에 돌입한다. 그 논쟁은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아민의 비판은 물론 그가 정초하려는 새로운 역사유물론에 대한 평가를 아우른다.
_“사미르 아민의 정치사상” 중에서
양극화는 현실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생성되고 유지된다. 체제 자체가 주변부의 발전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며, 자본주의적 발전이나 중심부 ‘따라잡기’를 궁극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아민은 유럽자본주의를 보편 모델로 상정한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주변부 역사 이론을 구축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평가하며, 따라서 현실자본주의 분석에 기초해 새로운 역사유물론을 정초할 것을 주문한다.
_“02 현실자본주의” 중에서
중심부 공납제 사회는 다량의 잉여를 추출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이데올로기 사회였던 반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유럽 본토 등 나머지 주변부 공납제 사회는 느슨하고 분권적인 이데올로기 사회에 불과했다. 따라서 중심부 공납제 사회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이행하는 데 효과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었지만, 주변부 공납제 사회는 그러한 이행을 재촉하는 상인(자본) 권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민은 ‘덜 발전한 공납제 사회’의 더 큰 유연성이 ‘더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재촉했다는 ‘불균등발전론’을 전개한다.
_“05 공납제” 중에서
무슬림 사회는 유럽의 문화주의적 해석을 모방해 19세기 ‘나흐다(Nahda)’라 불리는 ‘이슬람 르네상스’를 기획하며 근대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은 유럽중심주의가 선전해 온 ‘기원으로의 회귀’라는 문화주의적 선전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고, 그릇된 이해에 기반해 그 ‘기원’을 이슬람교(종교)로 대변되는 문화적 요소들로 가득 채웠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 문명(특히 ‘이성’)의 출현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던 고대 동방 문명은 ‘자힐리야(Jahiliya)’, 즉 불경의 시간으로 취급되어 재탄생(르네상스)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못했고, 종교(이슬람)의 반계몽주의적 흐름만 더욱 공고화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_“08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