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질투가 나서 인정하기 싫지만, ‘퀴어’라는 이 질척한 난장판에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싶다면 이 책은 더없이 유혹적인 초대장이 될 것이다.” - 오혜진(문학평론가)
오늘날 한국에서 ‘퀴어’란 무엇 혹은 누구를 뜻하는가?
퀴어 미술을 둘러싼 대담을 통해 펼쳐지는 퀴어의 영역과 범위
적어도 지금 한국의 문화예술계에서 ‘퀴어’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미술, 문학, 연극, 영화 등 장르를 막론하고 퀴어는 다양한 매체와 콘텐츠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서사 매체에 등장하는 허구의 ‘퀴어한’ 등장인물만을 뜻하지 않는다. ‘퀴어한’ 예술은 작가의 정체성으로서, 작품의 주제의식으로서, 서사의 주된 정서로서 점차 경계를 확장하며 그 역할과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혹은 여태껏 충분히 탐구되거나 논의되지 못한 퀴어 예술의 갖가지 면모가 이제야 광범위하게 발굴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본문에서 이야기하듯 오늘날 퀴어는 “일종의 유행”이 된 듯 보이거나 “과포화”된 듯 여겨지기도 한다.
『퀴어 미술 대담』은 퀴어를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어색하지 않게 언급할 수 있는 오늘날 한국에서 ‘퀴어’란 무엇(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대화의 장이다. 그간 국내 미술비평계에서 퀴어라는 주제로 꾸준히 비평하고 활동해온 두 저자, 이연숙과 남웅이 “현재, 서울에서, 비평가”로서 퀴어 미술의 정체와 주체를 탐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오혜진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두 저자는 “사태를 섣불리 봉합하지 않”으면서, 그간 미술 현장에서 각자 쌓아온 경험과 고민을 지렛대 삼아 퀴어 예술의 시공간을 구축해나간다.
국내의 작가와 작품, 전시 등 현장을 두루 톺아보는 두 저자의 대화에 귀 기울이다 보면 오늘날 한국에서 ‘퀴어’로 불리는 것 이면에 어떤 관점과 담론 들이 도사리는지 고민해볼 수 있을 테다. 또는 두 저자가 서문과 발문에서 이야기하듯 앞으로 우리가 ‘퀴어’와 더불어 ‘예술’ ‘성차’ ‘관계’ ‘대화’ ‘언어’ 등의 키워드를 어떻게 계속하여 끌고 나가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 수 있을지 물을 수도 있겠다. 두 저자가 번갈아 이야기하듯이, 이 대담에 내포된 무수한 질문이 독자에게로 이어지며 또 다른 대화의 장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여전히 퀴어라는 품이 넓은 단어가 가진 정치적인 힘을 활용하고 싶어요.”
각기 다른 영역에서 미술비평을 지속해온 두 저자가 펼치는 네 번의 대화
퀴어라는 이름 안에서 전개된 예술과 언어, 활동의 영역과 그 너머의 가능성들
총 4부로 구성된 『퀴어 미술 대담』은 각 부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는 키워드를 지표 삼아 대화를 이어 나간다. 때로 이 키워드는 ‘미술’ ‘비평’처럼 책 전체의 내용을 고루고루 일컬으며, ‘자긍심’ ‘부정성’처럼 현대 한국의 퀴어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정서들을 끌어온다. ‘하위문화’ ‘재현’ 등의 단어를 통해 퀴어 미술이 작동되는 방식을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보며, ‘공동체’나 ‘욕망’ 같은 키워드로 한국 퀴어(예술)의 현장을 짚어보기도 한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직접 대면한 두 저자는 그간 각자 작업한 ‘퀴어 비평’의 영역과 범위부터 살피고 대조한다. 대중문화·시각예술에 관한 비평과 함께 에세이·일기 등 사적인 글을 써온 이연숙(리타) 비평가와 미술비평과 인권운동을 함께하는 남웅 평론가의 내력은 공통점만큼이나 많은 차이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각 저자의 방법론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저자는 서로가 겪어온 길이 겹쳐지거나 분기되는 지점을 꼼꼼히 표시해가며, 현재 한국 퀴어 미술 씬scene의 형태와 구조를 그려본다. 대담에서도 몇 차례 언급되듯이 이 지도에는 많은 공백이 존재한다. 이 책은 그 공백을 지우거나 새로 메우는 대신, 그 빈 자리들이 어떤 맥락에서 탄생하는지 주시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같은 측량의 대화는 1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요?”라는 남웅 비평가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1부는 이연숙(리타), 남웅이라는 두 미술비평가가 어떻게 ‘퀴어 미술’이라는 질문을 꾸준히 이어왔는지 서로 끈질기게 묻고 답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는 두 저자의 개인적인 맥락을 짚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이연숙 비평가의 말처럼 “미술비평을 하기 위해 모두에게 알려진 루트―가령 어디 학과를 나와야 한다거나, 이런 조건이 명문화되어 있는 게” 아닌 한국사회에서, 각 개인이 어떠한 “구체적인 욕망”과 “‘어쩌다’의 경로”를 통해 “퀴어 판”에 접속하게 되었는지 따져 묻는 기록이기도 하다. 동아리 활동이나 연애 등 사적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서 미술비평을 택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단체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투쟁의 계보와 이를 지탱하는 문화 예술적인 기반을 접하면서 그 안에 “감기기도” 한다.
“퀴어라는 품이 넓은 단어”의 가능성과 힘을 탐구하며 미술비평으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두 저자가 참고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전의 기록이다. 여기서 ‘기록’은 기존의 퀴어 전시와 작품, 텍스트 들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쩌다 만나게 되었을까요?”라는 남웅 비평가의 질문에 ‘처음에는 국내의 퀴어 비평을 모은 선집을 만들고자 했다’는 이연숙 평론가의 답은 그들이 지금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자료들을 참조해왔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에서 두 저자가 번갈아 참조 및 논의하는 기존의 퀴어 비평들은 ‘퀴어’라는 용어가 함의한 의미만이 아니라 여성·퀴어 주체나 장애의·퀴어한 “몸”, 성적 일탈자(“변태”)의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왔다. 이들의 연구는 이연숙과 남웅이라는 현재의 두 ‘젊은’ 평자가 고민하는 바탕이 되어주는 동시에, 그간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거나 미처 짚지 못한 빈자리를 찾게도 만든다. 저자들이 여러 차례 언급하듯, 이때 만들어지는 계보는 기존의 전통과 족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장이 아니다. 이연숙 비평가의 말에 따르면 이 계보는 “수평적인” 그리고 “아주 지저분한 퀴어 예술의 계보” 그리고 “슬픔의, 눈물의 아카이브”에 더 가깝다. 또한 남웅 비평가의 말처럼 “파열과 불화가 생겨도 여기서 생겨야 한다”는 다짐 속에서 이어진 대화의 기록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커뮤니티 혹은 당사자로서 누가 우리 곁에 있는가”
공동체와 하위문화에서 자긍심과 부정성까지……
동시대 한국을 가로지르는 퀴어 문화의 정서와 예술의 기록
책의 1부가 각 저자의 맥락과 그들이 참고해온 ‘퀴어 미술 비평’의 계보를 참조해온 과정이었다면, 2부와 3부는 지금의 한국 미술 현장에서 퀴어가 어떻게 재현 또는 전승되는지 알아본다. 퀴어 미술뿐 아니라 퀴어 문화 전체에서 주요한 키워드인 ‘공동체’나 ‘자긍심’ 등의 키워드를 통해 현재 퀴어가 어떤 식으로 읽히는지(또는 읽히지 않는지) 묻고 답하는 대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2부 「#공동체 #하위문화 #액티비즘」에서는 극장, 클럽, SNS상의 ‘뒷계’(구 ‘트위터’인 ‘X’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뒷계정’을 뜻한다) 등 공동체를 구성하거나 표상하는 요소를 다룬다. 이러한 표상은 퀴어 미술의 배경이나 소재, 핵심적인 정서로 나타나곤 한다. 공동체는 이연숙 비평가의 말마따나 “미술(예술)과 활동의 경계” 그리고 “시각 문화-예술과 같은 하위 주체”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충분한 안전과 선택지를 보장받지 못하는 ‘퀴어 공동체’의 불안정성은 3부의 「#정서 #부정성 #자긍심」과 더불어 논의된다.
이 대담들에서 두 저자는 그간 대중적으로 가시화되지 못했으나 끊임없이 존재해온 퀴어 공동체와 여기 결부된 작가와 작품 들을 번갈아 살핀다. 리처드 케네디의 개인전 《리처드 케네디: 에이시-듀시》(2023)나 《이스트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2018)처럼 해외의 퀴어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가 한국과 어떻게 상응하는지 따지는 한편, 국내의 퀴어 작가와 공동체가 충분히 자생할 환경이 없는 맥락 또한 짚는다. 이처럼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왔던 퀴어 공동체의 모습은 다양한 작품과 프로젝트, 공간을 통해 드러난다. 과거 크루징cruising이 이루어지던 공간 중 하나인 바다극장을 기록한 홍민키 작가의 영상작품 〈낙원〉(2023), 퀴어 커뮤니티의 당사자가 주체로 등장하는 권아람 감독의 〈홈그라운드〉(2022)나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 채록이나 비평의 방식으로 퀴어 커뮤니티를 기록한 텍스트 등이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대담에서 이러한 전시와 작품, 프로젝트와 텍스트는 서로 연결되거나 비교되며 그 의의를 조명받는다.대담의 주제는 퀴어 예술과 비평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통상 “퀴퍼”로 불리는 ‘퀴어 퍼레이드’나 퀴어 공동체 내의 ‘약물’ 문제 등도 대화의 긴 주제가 된다. 가령 3부에서는 퀴어 퍼레이드에서 외치는 ‘프라이드pride’, 즉 자긍심이 어떻게 선언으로 이어지는지 탐구하며 그와 연결된 운동과 재현을 논의한다. 자긍심의 반대편에 있는 ‘부정성’이 어떻게 퀴어 공동체에서 핵심적인 정서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 부정성을 어떻게 “슬픔의, 눈물의 아카이브”로 기록할지 문답한다. 이 아카이브를 이루는 작품들, 즉 자긍심과 부정성에서 말미암은 회화·퍼포먼스·영상·설치 작품 등은 대담 속에서 각기 위치를 바꾸거나 서로의 맥락을 형성한다. HIV/AIDS 운동과 약물 의제에 관한 활동 또한 마찬가지다. 각자의 ‘퀴어 판’을 거쳐온 저자들의 대담에서 퀴어 미술이라는 현장은 정치와 정서, 신체와 감각을 두루 거치며 범위를 넓혀나간다.
“바득바득”과 “구구절절”의 비평론을 통해 드러내는 퀴어 미술의 장
해답 없는 질문을 이어가며 그려내는 ‘퀴어’의 재현과 욕망, 불화의 지도
그리고 대담이라는 표지 뒤로 이어지는 무수한 대화의 가능성
4부 「#재현 #욕망 #불화」은 앞서 말한 아카이브가 어떤 표상과 요소 들로 이루어지는지 살피는 동시에 이제까지의 퀴어 ‘재현물’이 어떤 욕망과 불화에 기초하는지 등을 다룬다. 저자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드러내는 퀴어 재현의 이미지부터, 《Bony》(2021)와 《Bench side》(2023)와 같은 전시에서 보이는 퀴어 표상까지 두루 돌아본다. 이러한 돌아봄의 과정은 결국 퀴어 예술을 무엇으로 엮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과 맞닿는다. 두 저자는 퀴어 미술의 장을 명확하게 분리하거나 통합하는 대신 “‘무엇을 참조하는가’ 묻는 것과 더불어 ‘무엇이 전승되거나 탈각되는가’를 묻는 일”에 집중한다. 이로 인해 저자들의 대담은 퀴어 미술을 한 가지 정의로 구분 짓는 대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만남과 관계(혹은 그 안에서의 갈등과 불화)를 꾸준히 주시하고 담아내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오혜진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바득바득”(남웅)과 “구구절절”(이연숙)의 비평론을 벼린 이들은 퀴어 미술의 땅을 한 지점으로 봉합하는 대신 더 큰 가능성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듯 보인다. 대담 속에서 넓힌 땅이 새로운 누군가가 대화를 나눌 수 자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퀴어’는 지금 한국의 문화예술계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무엇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퀴어 미술(예술)이라는 ‘무엇’을 구성하는 요소나 그 동력원은 여전히 충분히 논해지지 않았다. 이연숙과 남웅이라는 두 미술비평가의 대화는 그 요소와 동력원을 탐구하는 과정인 동시에, 퀴어 미술을 이루는 성질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이 “기념비”로 남기보다 “등산로 표식”처럼, “할 말”을 쏟아낼 성긴 틈새로 기능하길 바라는 저자들의 말 역시 이러한 확장의 의도로 볼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이들이 만든 틈새로 쏟아져나올 “할 말”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느 경로로 도착하게 될까? 『퀴어 미술 대담』을 통해 지금껏 다방향으로 펼쳐진 ‘퀴어’의 지도를 살피며, 앞으로 나타날 “할 말”의 모습과 경로를 함께 그릴 이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