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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한 잎, 바람 한 칸


  • ISBN-13
    978-89-7973-628-1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도서출판 전망 / 도서출판 전망
  • 정가
    14,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7-1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백년어서원
  • 번역
    -
  • 메인주제어
    에세이, 문학에세이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에세이, 문학에세이 #종교 및 믿음 #경전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2 * 188 mm, 224 Page

책소개

글쓰기 공동체 〈백년어서원〉의 경전 읽기 모임에서는 3년 여의 긴 시간 동안 성경과 금강경, 중론, 유마경, 바가바드 기타, 카발라, 기독교 영성에 관한 책 그리고 우리 민족 사상인 풍류도 등을 함께 읽었다. 그러한 결실을 이번에 〈경전 한 잎, 바람 한 칸〉이라는 책으로 엮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왜곡된 종교는 인간을 억압하면서 물질적으로 기능적으로만 작동하고 있다. 종교성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은 더없이 비극적이다. 전지구적 위기 상황을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근원적 구원은 무엇일까. 경전 읽기와 글쓰기에 참여한 저자들은 우리가 영성을 회복하고 우리 안의 신비를 일깨우는 일이 유일한 미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경외, 그 수심守心과 수심修心을 위하여


 

김수우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살계를 받은 까닭은

우리는 원복의 존재입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삶

유마거사의 사랑법


 

이수경

경전의 불꽃

공동 이익을 위하여

진리의 보편성과 차이들의 횡단


 

임영매

여인들이 있었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진미현

내 안의 경전을 만나러 가다

지혜를 따라가면


 

황미정

나를 깨워 세상과 소통하는 경전 읽기

인류는 아인 소프(Ain, Sop-神)를 향하고 있다


 

황선화

성경을 읽는다

어디에 있느냐

나는 왜 기독교인이 되지 못했을까

본문인용

지극함을 기억하다


 

베란다에 방치되었던 낡은 화분에서 잎눈이 돋았다. 그 깨알 같은 초록의 지극함. 흙의 가슴과 뿌리의 간절함이 끌어올린 저 초록눈. 사소한 일상은 그러한 신비로 구성되어 있다. 지극한 상태는 어떤 것일까. 지극함은 가장 낮은 순간의 가장 낮은 자세가 아닐까. 황량한 고원을 딛는 주름살 깊은 티벳 할머니의 오체투지처럼 말이다. 가장 낮은 이마와 가장 절실한 무릎에서 피어나는 꽃.

마음이 혼란할 때마다 떠오르는 풍경이 몇 있다. 제일 먼저 서부아프리카의 항구도시 누아디부에서 만난 장면이다. 열심히 모래를 푸던 공사장 모슬렘 인부가 일순 삽을 놓고 몇 걸음 물러나 기도를 시작한다. 또 하나, 세상에서 제일 높다는 파키스탄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리면서, 어느 고원 기슭에 잠시 버스가 멈추었을 때 차에서 내린 한 사람이 저만치 모퉁이를 찾아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 그때 그 기도는 종교적 관행이 아니라, 어떤 경외였다.

척박한 곳에 태어나면 인간이 제일 먼저 무엇을 배우게 될까. 내겐 오래된 질문이었는데, 거기서 깨달았다. 그것은 지극함, 곧 신을 경외하는 법이다. 인도를 여행하던 중 이슬람 사원을 자주 찾았는데, 수염이 긴 노인이 성전 한 모서리에서 작은 햇살에 기대어 코란을 읽는 모습은 언제나 내게 삶의 숭엄함을 회복시킨다. 또한 중국 카슈카르의 일요시장에서 냉차를 파는 소년이 수레 밑으로 책을 읽던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런가하면 흰 달빛으로 눈길을 밟고 새벽기도를 가던 시어머니의 발걸음도 있다. 하나같이 삶의 지극한 풍경들이다.

내게 주어진 생의 틈들. 그 안에서 이러한 지극한 자세를 명상하는 것은 내 삶을 항상 겸허하고 청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내게 스민 의문은 ‘이 지극함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였다. 지극함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에 닿아 있는 걸까. 무엇에 지극해야 하며, 어떻게 지극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지극함의 방향성이 궁금해졌을 때 경전 읽기를 시작했다. 이젠 결국 모든 지극함이 관계의 문제에 닿아있음을 이해한다. 지극하다는 것은 자신을 가장 극진한 곳, 거미줄의 한 교차로에 내려놓은 일이다. 간절하면 지극해진다.

중요한 건 방향이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신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타자와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가 지극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동식물을 비롯한 무기물까지 연결된다. 어떻게 지극해야 하는가. 극진하다는 것은 정성을 다하는 자세를 말한다.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 정성은 하심下心에서 비롯된다. 마음을 바닥으로 낮추는 일이 바로 지극함이 아닐까. 지극함은 오래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다. 至誠感天지성감천이나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은 하늘을 움직이는 기다림과 지극의 힘을 보여준다. 그 지극함에서 보리심菩提心이 싹튼다.

지극함, 하면 어머니라는 존재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생명을 낳고 기르는 지극함 그 자체이다. 티벳 불교에서 만난 칠종인과법은 어머니를 관계의 핵심, 지극함의 핵심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마도 우주 속에 있는 가장 큰 지극함이며 보리심일 것이다. 보리심은 타자를 위해, 깨달음의 경지를 지향하는 태도를 말한다. 어머니는 보리심을 위한 칠종인과법의 뿌리였다. 이 칠종인과를 인지한 것은 이 시대의 스승 달라이라마의 친견 법문에서였다.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의 󰡔입보리행론󰡕 열린 법문이 있다는 소식에, 기독교인이지만 친견이 영광이다 싶어 모든 조건을 감행해서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7세기 인도 불교학자 샨띠데바가 저술한 이 책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보리심에 대해 설한 것 중 이보다 더 뛰어난 논서는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입보리행론󰡕은 수많은 불교 논서 가운데서도 보리심에 대해 소상하게 논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한 마디로 동네 할아버지처럼 소탈한 어른이었다.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는 부연이 굳이 필요 없는 인자하고 자유로운 표정 앞에서 ‘지극’을 배웠다.

티베트 불교는 보리심이 모든 수행의 동기이다. 성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해탈로 이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항상 이타를 기억하라”. 하루 여덟 시간, 닷새 내내 달라이라마가 강조한 지혜는 이타심이었다. 이타야말로 자타 모두를 위한 궁극적인 지혜라는 것이다. 달라이라마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이 세상 마지막 장소에 핀 꽃밭 같았다. 그 이타행을 진심으로 갖출 수 있을까. 수행방식 두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수많은 생을 윤회하는 동안 모든 중생이 전생에 한 번 이상은 나의 어머니였던 적이 있음을 상기하는 ‘七種因果’의 관찰법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남을 바꾸어 보는 ‘自他相換’의 관찰법이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훈련이기도 했다.


 


 

칠종인과법, 우리는 서로에게 어머니였으니


 

깊이는 높이를 만든다. 산은 골짜기를 지니고 있다. 바다는 섬을 만든다. 모든 존재는 수직과 수평을 흔들며 아름다운 춤을 춘다. 작은 돌멩이에게서 둥구나무에게서, 새와 물고기에서 무한히 뻗어나가면 나는 변화한다. 나는, 그리고 너는, 그렇게 우리는 얼마나 광대한 존재였던가. 거기서 나만의 빛나는 사랑도, 나만의 서러운 고통과 분노도 피고지는 물방울에 불과하다. 무한히 뻗어가는 상하좌우가 없는, 빈부귀천이 없는 촘촘한 그물망. 그 아득한 공간. 거기서 나는 수십억 년을 벋어왔고, 수십 억 년 미래와 연결된다.

칠종인과법은 그 아득한 인연을 헤아리고 기억하고 예지하는 일이다. 아집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어머니로 인식한다. 수억 겁에 걸쳐 윤회하는 동안 모든 중생이 전생에 한 번쯤 자신의 어머니였으며 미래 그 언젠가 자신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점을 헤아리는 것이다. 먼저 평등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친밀한 존재인 어머니로 인식하면, 그 은혜를 떠올리게 되고,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자애와 자비를 갖게 되고, 다음엔 고통을 대신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 다음엔 행복을 기원하는 진정한 사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누구일까. 그의 태를 빌어 우리는 이 별에 도착한다. 첫 울음을 터뜨리며 가장 먼저 만나는 얼굴. 그의 헌신이 없으면 성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이름은 삶을 회복시켜주는 힘이 있다. 칠종인과에 대한 관찰은 제일 먼저 지모知母에서 출발한다. 뼈가 자라고 마음이 자라는 모든 순간을 데우던 그 체온을 아는 까닭에 어머니는 성장한 후에도 그리움이 된다. 그리움 자체로 우리는 종종 울컥해지지 않는가.

그리고 어머니의 은혜를 기억하고[念恩], 전생에 어머니였던 모든 중생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하고[報恩], 행복을 비는 자비심을 닦고[修慈], 모두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는 연민을 닦으며[修悲], 자비심과 연민을 더욱 강화强化시킨 다음에, 결국 최선은 내가 부처가 되어 그들을 제도하리라는 믿음에서 보리심을 발한다. 한때 어머니였던 모든 중생을 위해 보살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전의 평등심은 자아와 타자를 관觀하면서 집착, 애착, 반발을 그만두기 위한 단순한 평등심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어머니였다고 인식 후의 평등심은 더 적극적이고, 큰 심연을 만나는 일이다. 자애와 연민이라는 자비심은 보살뿐 아니라 성문과 독각에게도 있다. 그러나 성문과 독각의 자비심은 ‘구덩이에 빠진 외아들을 보고 비통해하는 것’에 비유된다. 보리심을 발한 보살은 ‘구덩이에 뛰어 들어 외아들을 건져내는 아버지’이다. 이 보리심이 결여되어 있으면, 아무리 공空의 이치에 통달한다고 해도 대승에 이르지 못한다. ‘보리심 없이’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것은 교만한 염원이라고 쫑카빠는 말한다. 어머니라는 지극함이 중요하다. 지극할 때 사람의 퉁소 소리가 아닌, 땅의 퉁소 소리가 아닌, 하늘의 퉁소 소리(장자, 〈제물론〉)를 듣는 것이다.

칠종인과의 명상은 일곱 단계를 되뇌인다. ‘지모知母→ 염은念恩→ 보은報恩→ 수자修慈→ 수비修悲→ 강화强化→ 보리심菩提心’을 명상한다. 중생이 행복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무량한 자애와 연민(사무량심)은 성문과 독각에게도 있지만, 일체 중생의 고통을 없애고자 행동하는 결단은 대승이 아니고는 어렵다. 여기엔 용기가 절대적이다. 단순한 연민과 자기 자신이 진심으로 고통을 짊어져야겠다는 마음의 차이를 분별해야 한다. 이 마음이 자타상환법으로 나아갈 수 있음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살계를 받은 까닭은」-󰡔입보리행론󰡕의 그늘에서(김수우)

서평

질경이가 핀다. 질경이가 경전이다. 길고양이를 만났다. 길고양이가 경전이다. 가난한 동무와 마주친다. 그이가 경전이다. 햇살과 바람이 경전이고 지평선도 수평선도 경전이다. 경전 읽는 모임을 시작한지 3년. 몇 권 접하지 못했지만 작은 깨달음이 생겼다. 모든 경전이 지향하는 곳, 그 목적지가 자비라는 것이다. 성경과 금강경, 중론, 유마경, 바가바드 기타, 카발라, 기독교 영성에 관한 책 그리고 우리 민족 사상인 풍류도도 일별했지만 그 길은 하나였다. 생명 윤리라는 오솔길. 사랑도 자비도 연민도 그 길에 피어나는 꽃이었다.

존재에 대한 연민은 결국은 공감하는 능력에서 비롯한다. 끊임없는 공부와 실천은 결국 교감하려는 노력이다. 교감을 위해서는 영성이 중요하고, 영성 진화에는 마음을 지키는 일[守心]과 마음을 닦는 일[修心]이 우선이다. 인간과 세계, 시간과 공간, 영원성과 자유의 문제들에 관해 가장 깊이 연구하고, 수심守心과 수심修心을 보여주는 것이 경전이다. 모든 경전은 종교철학 이전에, 생명이라는 강렬한 윤리를 가지고 우리에게 질문하고 답한다. 그래서 어떤 경전이라도 인류에게는 위대한 스승이다. 또한 진정한 생명 지표가 된다.(…)

세상에 펼쳐진 모든 경전은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가. 어떤 고전보다도 아름답고 깊다. 아마 영혼을 향한 간절함이 넘치는 까닭이리라. 텅 비었으면서도 충만하고, 덧없으면서도 알차고 시간의 능선을 겸허하게 걷는 법. 그 견딤. 경전은 돌틈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배우는 일이었다. 생명의 최전선을 걷는 일 또한 거대한 경전이다. 경외와 경이를 향한, 수심守心과 수심修心의 결을 타고 우리들의 작은 감수성이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파동으로 흘러가길 기도한다.

―「경외, 그 수심守心과 수심修心을 위하여」, 김수우(시인), 들어가는 말 중

저자소개

저자 : 백년어서원
백년어서원은 부산 원도심 동광동에 자리한 푸른 여울입니다. ‘백년어’는 앞으로 백 년을 헤엄쳐갈 백 마리의 나무 물고기를 의미합니다. 충청도 산골 옛집을 헐어 나온 서까래와 기둥에서 태어난 물고기들, 그 지느러미로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있습니다.
‘百’은 물이 끓기 시작하는 온도이며, 한 세기를 넘어가는 단위이며, 언제나 받고 싶은 점수이기도 합니다. ‘百’의 우리말은 ‘온’입니다. 이는 ‘전부’, ‘모두’를 함축하고 있으니, 곧 온전함을 지향하는 자연수입니다. 이 기도 같은 ‘百’은 당신 속에서 오래 자라고 있던 자연 또는 자유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물고기가 표상하는 건 생명에 대한 연민과 깨어있는 영성으로 신석기 때부터 사용된 정신사의 아이콘입니다. 이는 시대를 거슬러 근원을 찾아가는 힘이기도 하며, 공존을 위한 감수성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십시일반 마음과 손길을 보태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기억하며 이제 백년어는 글쓰기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소박한 깃발을 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늬가 있는 문이고자 합니다. 긴 꿈을 꾸고자 합니다.

출판사소개

1992년 설립된 부산 소재 출판사.
* 시, 소설, 수필, 문학평론 등 문학 중심 서적 발간.
* 그 외 문화비평, 인문학, 번역서, 사진집 등 단행본 다수 발간.
* 1999년부터 시전문계간지 <신생> 발간(현재 통권 95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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