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떻게 할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밖에서 멈춰 있으면 초조하고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아스팔트에서 종종거리며 제자리걸음이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진정이 된다.
고스모는 간신히 숨이 가라앉은 듯, 몸을 일으켜서 약간 차분해진 모습으로 말했다.
“미안. 이제 괜찮아.”
“……우리, 이제 갈 데가 없어. 어떡할래? 도대체 어쩌면 좋겠냐고.”
전부 이 녀석 때문이다. 이 녀석을 동정해서 집에 따라갔다가 이렇게 됐다. 그때 무시했다면 이런 무서운 술래잡기에 휘말리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때 단호하게 이 녀석을 뿌리치기만 했더라면……. _6~7쪽
태양을 등지고 선 탓에 고스모 아빠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괴물 같은 남자라고 해도 벌건 대낮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아들 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를 리는 없다. 도모키는 스스로 그렇게 타이르면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눌렀다.
“친구는 인사도 잘하는구나.”
팔이 쑥 뻗어 와서 흠칫했다. 다행히 머리를 툭툭 치기만 했다.
“너희는 인사나 제대로 하고 다니냐? 어?”
그는 도모키의 모자에 손을 올린 채 아들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전히 표정은 어두워서 알 수 없지만 눈만은 번득이며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_30~31쪽
그때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도모키는 소리의 정체에 홀린 듯, 그리고 역시 그 정체를 알아내려고 나아가는 고스모에게 홀린 듯 따라갔다.
소리는 마당에서 들렸다.
둘은 식당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당에 있는 남자를 가만히 엿보았다.
좁은 마당에서 웃통을 벗고 삽을 휘두르고 있다. 삽을 내리꽂았다가 꺼내서 떠낸 흙을 옆으로 내던지며 뭔가 내뱉듯 중얼거린다.
서걱, 서걱, 젠장. 서걱, 서걱, 젠장. 죽여버릴 거야.
똑똑히 들렸다.
아직 도모키한테는 도망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저 인간은 왜 구멍을 팔까. 그걸 확인하지 않고서는 무서워 견딜 수 없다. _62~63쪽
방 안이 온통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옷장 서랍과 책상부터 시작해 파일 캐비닛, 뭘 넣어뒀는지도 잊고 있던 골판지 상자까지 홀라당 뒤집어져 마치 도둑이 든 것 같은 꼴이었다.
이 녀석, 돌아왔었구나.
분노로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어제 일은 어쩔 수 없다. 그리 쉽게 용서할 생각은 없지만 분명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도망친 것도 공포심 때문이었으니까 ‘배신’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배신이다. 아빠가 일하는 동안 방을 뒤져 돈을 찾았다. 이건 ‘공포심’도 ‘경외심’도 흐릿해졌다는 증거다. 그런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더 흠씬 두들겨 패서 주입시켜야 한다. _140~141쪽
“역시 경찰한테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우리 동네가 싫으면 어디 다른 경찰서도 좋고. 그 인간이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안 돼.”
고스모는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반대했다.
“왜! 그러면 이제 어쩔 건데! 우리 집에 가도 부모님한테 설명해야 해. 돈까지 훔쳐서 외박했는데 설명해야 집에 들어가지. 그러면 어차피 경찰 불러야 해. 네가 집에 안 돌아가면 그 인간은 분명히 우리 집에 찾아올 테니까 나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휘말리게 된다고!” _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