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일 누군가 이 땅에서 지옥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밤 1시나 2시경에 중병실을 찾아가라. 귀신과 생명이 벌이는 격투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불꽃이 눈앞을 스칠지 모른다.
-〈나병원 기록〉 중에서
2.
바로 그때였다. 내게 분만실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진통이었다.
“이봐 사카모토, 큰일 났어, 큰일 났다고. 아이가 태어나!”
(...)
환자들은 침대 위에 앉아서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은 듯 병실 전체가 잠잠해졌다. 땅이 울리면서 눈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보라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야나이의 얼굴을 보자 그도 극도로 쇠약해진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딱 부딪치자 그의 해골 같은 얼굴에 희미한 기쁨이 번졌다.
“야나이, 곧 태어날 거야.”
나는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크게 뜨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어날 거야. 그렇지?”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듯 힘없는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 숨은 무한한 감동이 내 가슴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죽어 가는 그의 생명이 태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새로운 생명을 향해 뿜어내는 불꽃을 또렷이 느꼈다.
“있잖아, 노무라. 생명은 말이야.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어.”
-〈눈보라의 첫울음〉 중에서
3.
밧줄을 걸기에 적당한 대들보가 눈에 띄었다. 그는 토끼장 위로 기어 올라가 손을 뻗어 보았다. 가슴이 이상하게 벅차올라 그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띠를 풀어 대들보에 걸었다. 두세 번 시험 삼아 당겨 보았으나 열 명이 한 번에 목을 매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했다. 여기에 목을 매고 뛰어내리기만 하면, 으음, 죽기가 생각보다 쉽군, 그럼 사서 고생할 필요가 뭐 있나, 여기까지 올라와도 아무렇지 않으니 이제 언제라도 확실히 죽을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을 놓았다. 그렇다면 그리 조급하게 서둘러 죽을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 우쓰는 다시 허리띠를 매고 아래로 내려왔다.
“우쓰 씨!”
마키 노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우쓰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진짜 매는 줄 알았어요.”
노인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쓰는 죄다 들켰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시험 삼아 한번 해 봤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시험 삼아서요? 어때요, 죽을 수 있겠습디까?”
“생각보다 쉽게 갈 수 있지 않나 싶더군요.”
“흐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생각에 잠기더니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생각입니까?”
라고 별안간 우쓰의 얼굴을 응시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마키 노인〉 중에서
4.
“오다 씨, 저 사람들은 이미 인간이 아닙니다. (...) 인간이 아니에요, 오다 씨. 절대로 인간이 아닙니다.”
사에키는 자기 생각의 핵심에 다가선 듯 약간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인간이 아니죠. 생명입니다. 생명 그 자체, 목숨 그 자체인 겁니다. 오다 씨, 제 말 이해가 가세요? 저 사람들의 ‘인간’은 이미 죽어 없어져 버렸어요. 다만 생명만이 꿈틀꿈틀 살아 숨 쉬고 있어요. 이 얼마나 굳세고 꿋꿋합니까? 누구나 나병에 걸리는 순간, 그 사람의 ‘인간’은 사라집니다. 죽어 버려요. 사회적 인간으로서 죽는 것만이 아닙니다. 절대 그런 천박한 죽음이 아니에요. 전쟁에서 불구가 된 병사가 아니라 폐인이라고요. 하지만 오다 씨, 우리는 불사조입니다. 새로운 사상, 새로운 눈을 가지는 순간, 완전히 나병 환자의 삶을 손에 넣는 순간, 다시 한번 인간으로서 되살아난다고요. 부활, 맞아요. 부활이에요. 꿈틀꿈틀 살아 숨 쉬는 생명이 육신을 획득하는 겁니다. 새로운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죠. 오다 씨, 당신은 지금 죽었어요. 죽었고말고요.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다. 당신의 고뇌와 절망,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봐요. 한번 죽은 과거의 인간을 찾아 헤매기 때문은 아닐까요?”
-〈생명의 초야〉 중에서